전교조의 ‘참교육’뿌리 내리는가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2.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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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환경 개선에 한몫…합법성 획득이 과제



 서울 당산중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OMR카드비를 내지 않는다. OMR카드란 중고생들이 시험을 칠 때 쓰는 전산용지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해마다 그 비용을 따로 거두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올해부터 이 관계를 깬 사람들이 당산중학교 평교사들이다.

 “학생 평가 대금은 이미 납부금에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부당한 학부모 부담을 없애는 일도 참교육의 내용입니다. 이런 정신으로 교사들이 힘을 합해 학교당국과 협의한 결과 폐지 결정을 보았지요.” 이 학교 예산결산위원회에 평교사 대표로 참여하고 있는 권경순 교사의 설명이다.

 당산중학교 교사들의 참교육 실천 노력은 다른 잡부금의 폐해와 관행을 개선하는 데까지 이어지면서 학부모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모의고사를 한번 치를 때마다 학생 한명이 내는 비용 중 4백원쯤이 교사 회식비 명목으로 포함돼 있는데 교사들은 이 비용도 받지 않고 여러 잡부금과 함께 값을 낮춰 학부모 부담을 줄이기로 했다. 또 학생 수련회 때마다 학교측이 교사 1인당 7만원씩 건네주던 ‘뒷돈’도 결국 학부모 부담이라고 판단해 학생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당산중학교 말고도 전국 곳곳의 초중고교에서는 요즘 이처럼 ‘신선한 바람’이 일고 있다. 지난 89년 이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교육현장의 작은 변화에 대해 많은 교사들은 전교조의 영향이라고 지적한다. 많은 동료교사들이 교단에서 쫓겨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뿌린 ‘참교육의 씨앗’만큼은 틔워 내야 한다고 현직교사들의 ‘부채감’이 큰 작용을 했다는 것이다.

 1천5백여명의 집단 해적이라는 미증유의 상처를 남기며 출범한 전교조는 지난 3년 동안 정부의 지속적인 와해 기도와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국민적 논쟁의 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 찬반으로 엇갈리는 사회적 평가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러나 3년이라는 나이테는 전교조에 대한 사회적 쟁점이 일정하게 바뀌어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89년 대량해직 당시 ‘좌경용공’ ‘과격집단’등 이른바 공안정국에서 전교조에 덧씌웠던 반대논리는 이제 빛이 바랜 듯하다. 대신 교사의 결사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 것인가가 사회적 논의의 초점으로 자리 잡아가는 추세이다.

 아직도 전교조에 대한 평가는 양분되어 있지만 지난 3년간 교육계에서 일어난 변화의 상당부분이 전교조의 존재에서 직 · 간접으로 비롯한 것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그동안 전교조가 교육현장 구석구석에 짙은 명암을 드리우며 영향력을 행사해 온 증거들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교육부 · 교총도 전교조의 영향력 인정

 전교조에 다르면 현재 활동하고 있는 조합원 수는 해직교사 1천5백27명과 현직교사 1만4천2백87명을 합쳐 모두 1만5천8백14명이다. 이 중 대의원은 5백36명인데 81%에 해당하는 4백 35명이 현직교사이다. 여기에 매달 5천원에서 10만원까지 후원금을 내는 후원회원 3만1천3백78명으로 이들까지 합치면 실질적인 전교조 세력은 5만여명에 이른다.

 이처럼 많은 현직교사들의 호응 속에 전교조는 우리 교육의 여러 문제점을 과감히 지적해 개선하고자 노력해 왔다. 국민학교 교과전담제를 비롯해 교무실 환경 개선, 여러 가지 수당의 증액, 일 · 숙직제 폐지, 교원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 교육부의 여러 정책은 전교조가 요구한 사항을 상당 부분 수용한 것들이다. 교육부와 한국교총의 관계자들도 사석에서는 “불법단체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활동 중에는 주목할 점이 많다”고 털어놓는 실정이다.

 특히 전교조가 내세운 참교육에 대해 그동안 막연한 불안감을 가졌던 학부모들이 그들의 구체적인 실천 내용을 보면서 호의적인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도 큰 변화 중 하나이다. 학부모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여러 잡부금, 교복, 육성회비, 교과서 채택 등을 둘러싸고 고질화된 교육계의 비리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참교육 활동’의 모범사례로 거론되는 서울지역의 학교는 당산중 혜성여고 고려고 독산국민학교 등이다. 당산중학교와 독산국민학교 교사들은 학교측과 함께 인사위원회와 학교운영위원회를 결성해 평교사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여러 잡부금과 관련한 부정 · 비리의 소지를 없애나가는 점도 눈길을 끈다.

 혜성여고는 평교사들의 주장으로 교복선정위원회를 구성해 학부모들의 불만 사항이던 교복가격을 낮췄고, 경쟁입찰로 비리의 소지를 없앴다. 또 고려고교는 우리 사학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돼온 ‘교직 금품거래’의 소지를 평교사들이 나서서 말끔히 없앴다.

 “서울지역 사립 중고등학교 교사로 채용되려면 2천만원은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한 비밀로 되어 있는 현실에서 고려고교의 그 같은 노력은 값지다고 평가받는다.

 “사학의 인사권은 재단에 있다는 학교측 생각을 바꾸기가 어려웠습니다만 평교사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지난해부터 금품거래 소지를 없앴지요. 각 과목별로 평교사들이 모여 신규임용 응모자들을 선정해 명단을 올리면 그 중에서 교장선생님이 임명하는 절차를 밟았습니다.” 고려고교 윤희찬 교사의 말이다.

 몇몇 학교의 눈에 띄는 모범사례 뒤에는 공통적으로 전교조의 노력이 숨어있다. 전교조 조합원으로 있는 현직교사들은 방과 후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논의를 거듭하면서 이 같은 결과를 이끌어낸 것이다.

 그러나 전교조의 3년이 교육현장에서 발한 빛은 그만한 그림자도 수반했다. 이는 전교조에 대한 정부의 방침이 전혀 변하지 않는 데서 비롯한 것이다. 현행 풍토에서 사립학교 재단과 국공립학교 교장단은 전교조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교육부가 이들에 대해 재정지원 삭감 · 문책인사 등을 무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에게 ‘비교육적인 행위’로 지탄받을 만한 일부 재단과 교장의 행동이 가끔 돌출 한다. 지난 5월5일에도 서울교대에서 열린 전교조 주최 어린이날 행사에 참가한 교사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여러 국민학교에서 교사를 제자들과 대질시키고 그 장면을 비디오에 담는 등 비교육적 행위를 해 말썽을 빚은 바 있다. 6월에는 서울 ㅇ국민학교 김모교사가 전교조신문을 교사들에게 돌렸다고 해서 교장에게 폭행 당해 전치 4주의 상처를 입고 입원한 일도 있었다. 많은 학교에서 아직도 풍물놀이 같은 민속활동이 ‘불순교육’으로 취급받는 실정이다.

 교육현장에 깊이 팬 이 같은 불신의 골은 비록 전교조 교사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함께 해결해야 할 숙제임에 틀림없다. 이와 관련해 전교조 송원재 대변인(전 여의도고교사)은 “전교조에 대한 평가는 결국 학부모와 현직교사, 학생들이 내릴 것이다. 당국에서 조장했던 좌경 이념교육은 왜곡된 것이었음이 증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은 최근 법원이 내린 몇몇 판결로 뒷받침되고 있다. 전교조 창립 직전인 89년 5월22일과 23일에 잇따라 ‘북침설 유포’ ‘좌경교육’ 같은 죄목으로 두 명의 전교조 결성 추진 교사가 구속됐다. 서울 인덕공고 조태훈 교사와 경북 영주시 동산여중 이수찬 교사가 그들이다. 당시 이 사건은 날마다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전교조 결성 반대 여론을 만드는데 톡톡히 ‘한몫’을 했다.

 

전교조에 대한 여로 갈수록 좋아져

 그러나 두 사건은 최근 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북침설과 관련됐던 조태훈교사는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을 억지로 꿰맞춰 전교조에 피해를 입히려는 세력에 이용됐다. 정부와 일부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어쨌든 전교조의 활동이 교육현장에 미치는 파장은 이제 부인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반 국민의 전교조에 대한 인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와 야당, 교육전문가 집단, 전교조 등에서 국민을 상대로 각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전교조 허용 의견이 65~90%선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파업권을 제외한 노동2권만의 보장을 전제로한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해 전교조는 앞으로 당국과의 대화를 통해 그동안 고수 해왔던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을 포기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의 대응은 89년 전교조 결성 당시의 ‘단호함’에서 한치도 물러설 기미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7월 들어서는 현직교사들의 ‘해직교사 복직 서명운동’을 중징계하기로 결정해 제2의 대량해직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보기 드물게 재단측과 해직교사들의 합리적 대화를 통해 앙금을 풀고 복직의 길을 텄던 단국대부속고등학교에 대해서도 교육부는 즉각 ‘감사’라는 칼을 빼들어 복직철회를 유도하고 있다(보조기사 참조).

 결국 스스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집요한 탄압을 받고 있는 전교조는 해직교사 원상복직과 교육개혁 등의 문제가 정권의 성격과 밀접하게 연관된 정치적 사안이라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정부와의 직접 충돌은 피하고 대화를 요구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넓혀간다는 복안이다. 아울러 각 당 대통령후보들과의 면담을 통해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모색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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