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은 찬성 수입은 반대?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4.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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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문화 교류, 생산적 논의 필요

일본에 한국 가요 붐이 일기 시작하던 80년대 중반, 국내 한 일간지에실린 ‘부산에서 대전으로’라는 칼럼이 일본에서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칼럼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에서는 지금 한국 가요 붐이 일고 있다. 일전에는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유행하더니 요즈음에는 <대전 블루스>가 큰 인기라 한다. 이런 현상을 보면 일제의 잔영이 부산을 거쳐 대전까지 몰려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섬뜩한 느낌이 든다. <서울의 찬가>와 같은 노래가 유행해 그 촉수가 언제 서울에 상륙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칼럼의 논조는 한마디로 일본의 한국가요 붐은 상업적 동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치 내지는 문화적 음모에서 나온 ‘계산된 연출’이라는 것이다. 말을 바꾸면, 일본이 문화 침략을 위해 일부러 한국 가요 붐을 조장하고 있다는 식의 논조였다.

 이 칼럼이 일본에 소개되자 일본 언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같은 한국 가요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단순한 이유다. 한국식 엔카(演歌)가 일본인의 정서에도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엔카의 본고장이 한국이라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일본 하면 뭐든지 색안경을 끼고 보려는 한국 언론의 편협한 사고가 문제다.’

일본인 심금 올리는 ‘초일류’ 계은숙
 이같은 한·일 간의 공방은 실은 그때가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니었다. 일본 정부는 올 가을 한국에서 개최할 ‘일본 문화제’를 맞두고 최근 일본 문화에 대한 개방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일본 외무성과 그 산하 단체인 국제교류기금에 따르면, 일본의 현대공예전과 디자인전 그리고 극단 ‘시키(四季)’에 의한 뮤지컬 공연이 일본 문화제의 주요 행사가 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가부키(歌舞枝)와 같은 전통 연극도 상연할 예정으로 있다.

 그들은 한국의 가요나 영화·비디오는 별 제한없이 일본에 반입되고 있는데, 반대로 일본 문화의 한국 반입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서비스 거래의 자유화 추세에 역행하는 처사라는 논리도 들고 나온다. 입만 벙긋하면 양국 간의 무역 역조 시정을 거론하는 한국이, 문화 거래의 역조를 시정하자는 일본의 주장은 아예 들은 척도 않고 있다는 불만이다.

 이렇듯 보는 시각에 따라 일본의 한국 가요 붐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한국 쪽에서 보면 문화 침략을 위한 계산된 연출일 수도 있고, 일본 쪽에서 보면 어디까지나 자연발생적인 대중 현상이다. 그렇다면 사실은 어떠한가 또 한국 가요 붐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일본의 공영 방송인 NHK는 수많은 간판프로를 갖고 있다. 해마다 섣달 그를 저녁에 방영하고 있는 ‘가요 홍백전’도 그 중의 하나다. 매년 평균 시청률이 50%대를 내려간 적이 없다는 사실이 그 인기도를 증명한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이 프로를 ‘국민적 인기 프로’라고도 부른다. 따라서 이 프로에 출연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예를 들어 신인 가수가 이 프로에 선발되면 출연료가 몇배로 뛰어오르고, 인기 가수가 이 선발에서 누락되면 사양 가수라는 낙인이 찍힌다.

 이 인기 프로에 연속 6년째 출연하고 있는 외국인 가수가 한 명 있다. 바로 계은숙이다. 한국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존재지만 일본에서는 초일류 가수다. 쥐어짤 듯한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가 일본인의 심금을 울린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러나 계은숙이 한국 가요붐을 연출한 주인공은 결코 아니다. 그의 히트곡을 들춰 보면 한국 노래가 아니고 모두 일본 노래이기 때문이다.

70년대 말 이성애가 터 닦아
 9년전 그를 일본으로 스카우트한 ‘도시바(東芝) EMI’ 레코드사 관계자에 따르면, 계은숙은 이 레코드사의 상품 전략에 따라 발탁한 가수에 지나지 않는다. 즉 이 레코드사에 소속된 엔카 가수가 절대 부족하던 터에 한 작곡가가 소개해 그를 집중 양성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말을 바꾸면 요즘의 계은숙 붐은 상업적 동기에서 출발한 단순한 대중 현상이다. 나아가 계은숙이 단숨에 인기 가수로 비약하게 된 데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70년대 후반 일본을 찾았던 한국 사람이라면 가수 이성애의 인기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그 역시 국내에서는 별다른 히트곡 없이 신천지 일본의 가요계에 도전했던 사람이다. 때문에 한국에서보다는 일본에서 더 인기를 얻었던 가수다.
 그의 최대 히트곡은 <가슴 아프게>. 남 진이 불렀던 노래를 일본식으로 바꿔 취입한 것이 히트한 것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노래보다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나 <노란 셔츠><이별>과 같은 한국 가요를 불렀다.

 이 때 일본의 레코드 회사가 내건 선전 문구가 엔카의 원류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엔카의 본고장이 한국이냐 일본이냐 하는 논의는 둘째치더라도 그 전략은 크게 맞아떨어졌다. 식민 통치 때 한반도에서 살았던 일본인들에게 복고 붐을 일으키면서.
  가수 이성애의 활약으로 한국의 대중 가요가 가라오케 술집이나 유선 방송을 통해 거리에서 유행하자 일본의 레코드 회사들은 다투어 조용필이나 패티김과 같은 본고장 가수를 찾게 되었다.

 그 붐의 절정은 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때다. 이때는 일본인들의 관심이 한국의 대중 가요뿐만 아니라 한국 음식이나 풍속, 판소리와 같은 전통 문화로까지 확산되었던 시기다.

도쿄 번화가엔 한국 냄새 물씬
 또 이 때를 전후해서 일본에서 태어나거나 자란 재일교포가 아닌 이른바 ‘신 한국인’이 대거 일본에 몰려들면서 한국의 각종 대중 문화도 함께 상륙하기 시작했다. 도쿄 번화가 신주쿠나 아카사카의 거리는 이젠 코리안 타운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한국적인 냄새를 풍기는 거리로 변해가고 있다.

 한국의 대중 가요는 항상 그러한 붐의 선두에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예를 들어 89년의 NHK ‘가요 흥백전’에는 패티김 조용필 계은숙 김연자 둥 4명의 한국수가 한꺼번에 출장해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일본에 진출했던 가수가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가수 남 진은 자기가 부른 <가슴 아프게>가 일본의 가라오케 술집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는 데도 일본 진출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남 진과 쌍벽을 이뤘던 나훈아도 마찬가지다. 나훈아가 일본 가요계에 처음 데뷔한 것은 9년 전 일이다. 그러나 한국 제일의 엔카 가수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래서 나훈아는 오는 4월에 <망각의 비>라는 노래로 다시 일본 가요계에 도전한다는 소식이다.

 제2의 조용필이나 계은숙을 꿈꾸며 일본의 가요 시장을 두드리는 신인 가수들에게도 그 벽은 간단치 않았다. 80년대에 한국에서 CF 모델로 활약했던 정소희나 가수 양수경이 그렇다.

일본, 수입 근거로 문화시장 개방 요구
 또한 서울올림픽이 끝남과 등시에 일본에서 한국 붐이 시들해지면서 최근 들어 한국가수들의 활동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조용필의 일본 붐을 연출한 ‘CBS소니’라는 레코드회사 관계자는 “한국 가수들의 가창력은 일본의 아이돌 가수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뛰어나다. 그러나 한국 가수라고 아무나 성공한다는 보장은 있을 수 없다. 조용필이나 계은숙은 어디까지나 예외이다.”

 이렇게 보면 일본에서 분 한국 대중 가요 열풍은 일본 사회의 복고 현상과 서울올림픽 붐이 맞아떨어지면서 일어난 대중 현상이라는 풀이가 가장 타당할 것 같다. 물론 일본사회의 그러한 복고 현상이 식민 통치를 경험했던 한국 사람들에게는 크게 못마땅할 수도 있다. 또 일본측이 문화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하나의 근거로 이러한 가요 붐이 이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의 한국 가요 붐에 대한 논란도 발상을 전환해 보면 단순한 피해망상에 불과하다. 일본의 대중 문화에 대한 점진적 개방이 시대적 추세라고 한다면, 역으로 일본시장을 공략하는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일본 대중 문화에 대한 개방여부를 놓고 생산적 논의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 점이다.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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