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정치 막는 제도개혁 절실하다”
  • 정리.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1.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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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의회 선거가 끝나자 ‘금권선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14대 총선에서도 금권선거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선거구제 변경이라는 미묘한 정치사안을 놓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의 정치현실에서 바람직한 선거제도는 과연 어떤 것인지, OOO<시사저널>편집고문과 OOO민자당의원이 대담을 나누었다.

박권상 고문 :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점부터 이야기하지요, 대구에 지역구를 가진 민자당의 한 중진의원이 말하기를, 이런 제도로 가면 다음 총선에서 여당 후보는 30억~40억원, 야당동 20억원은 써야 될 것 같다는 말을 하더군요. 자기는 돈도 있고 기반도 약하지 않지만 그런 선거는 안하겠다는 것이 그 의원의 말이었습니다. 대구 출신이고 민자당 소속의 고위간부이면 금상첨화인데,그런 인사가 돈 걱정을 할 정도이니 금권선거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 이상 금권선거가 용납되어서는 안됩니다. 또 하나는 국민화합의 차원에서도 선거제도는 개선되어야만 합니다. 정치가 잘못된 근본적인 원인이 잘못된 선거제도에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남재희 의원 : 정치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정말 걱정입니다. 제가 선거를 네번 치러 봤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 네번 선거 치르면서 느낀 점입니다.

: 선거에서 돈 쓰는 것이 인정의 표시인지 부패인지 미풍양속인지 도무지 구분이 안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소선거구제를 하다보니 지역사회는 갈기갈기 찢어졌고, 현대판 매관매직이 심해진 겁니다. 선거 때만 돈쓰는 것이 아닙니다. 당선된 후에도 선거구 기반을 유지하려고 4년 내내 돈을 들여야 합니다.

: 지난 광역의회 선거에서의 돈 씀씀이에대해 한마디 하겠습니다. 지자제가 실시되기 전에 선거로 뽑힌 사람은 대통령 한 사람하고 국회의원 2백99명밖에 없었어요. 많은 야망가들이 정계에 진출할 길이 없어 욕구불만이 누적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공교롭게도 지자제가 없었던 지나 30년간은 부동산가격이 엄청나게 폭등한 시기입니다. 이 두가지 현상이 공교롭게 맞아떨어지는 바람에 지난 광역의회 선거에서 사상 유례없는 돈이 풀리게 된 겁니다. 금권선거는 정치현상으로 보면 이해가 안갑니다. 사회학적으로 관찰해야지요.

: 우리나라에서는 정치 코스트(비용)가 너무 비싼 게 사실이에요. 영국의 경우 1인1구 기준으로 5백만~6백만원이면 충분합니다. 기껏해야 7백만~8백만원을 넘지 않습니다. 5백여명의 자원봉사자가 가가호호 이 잡듯이 유권자를 뒤지고 다니는데도 후보자가 샌드위치 하나 주는 법이 없어요. 선거제도를 고치지 않는 한 공자나 소크라테스가 우리나라에서 정치한다 해도 훌륭하다는 소리 듣기 힘듭니다.

: 돈 얘기 하나만 더 하지요. 기초?광역의회 선거에 제조업으로 돈 번 사람은 별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조업은 자본주의의 건전한 주력부대입니다. 비교적 합리적으로 재산을 모은 사람들이지요. 부동산으로 불로소득을 얻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 점잖게 말해 불로소득이지요. 긍정적이고 중립적인 표현입니다. 본질적으로는 부정부패에 절어 있는 사회입니다. 정치인 언론인 관료들도 그런 사회구조에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도를 고쳐야 합니다. 선거판이나 정치판을 보세요. 담배 한갑, 점심 한 그릇이 필수적입니다. 점심 한그릇 못 사면서 정치하느냐고 공격합니다.

: 제도 얘기를 하기 전에 금권선거의 배경에 대해 한가지만 더 이야기하고 넘어가지요. 우리나라는 현재 이상주의의 퇴조기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과거에는 민주 대 독재라는 구도에서 나름대로 이상주의가 통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이 없어졌어요. 정치신조에 대한 이상주의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야당도 돈이많이 드는 선거를 치르게 되었지요. 앞으로는 새로운 이상주의가 싹트리라고 봅니다.

: 현행 1인 1구의 상대적 다수제도하에서는 사표가 너무 많습니다. 가령 한 선거구에서 10명이 출마했을 경우 극단적인 경우에는 11%만 득표해도 당선됩니다. 또 죽기 아니면 살기식으로 선거운동을 하기 때문에 편가르기가 됩니다. 엄청난 돈이 드는것은 물론이구요. 돈에 의한, 돈을 위한, 돈의 정치가 되는 겁니다.

: 어떤 대안이 좋다고 보세요?

: 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쉽게 말해 한 선거구에서 한 정당 또는 정당연합이 입후보자 명단을 내놓고 심판을 받는 겁니다. 정당의 실적?철학?성격과,정당이 내세운 개개 인물들의 능력이나 업적 등 양자를 종합평가해서 유권자가 투표하는 겁니다. 한 정당이 50%의 지지를 받았다면 명단에 따라 50%의 의석을 차지하는 방법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시?도단위가 좋을 듯 싶습니다. 규모가 큰 서울시같은 경우는 선거구를 몇 개로 쪼개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우선 국회의원들이 자기 선거구에 드는 돈 걱정을 안해도 되고, 정당지도자는 돈 끌어다가 다시 배분할 걱정거리도 없어집니다. 현재는 음으로 양으로 돈을 끌어대는 재간이 있어야 계보도 만들수 있고 당수도 할 수 있잖아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하면 그런현상이 사라지게 됩니다. 세대교체나 물갈이 아무리 해봐야 근원적으로 고쳐지지 않습니다.

: 그 제도의 문제점을 몇 가지 지적하지요. 우선 정당제도가 고도로 발전하고 당내 민주주의가 성숙한 상태를 가정해야만 그런 제도가 가능합니다. 첫째 돈이 안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허구입니다. 그런 논법대로라면 대통령선거에서는 돈이 안들어야 합니다. 전국에서 한명만 뽑으니까요. 그러나 대선에서도 돈이 듭니다. 둘째 소선거구제의 지역대표는 직접민주주의적인 요소가 있는데 그것을 없애면 다른 문제가 또 발생합니다.섯째 정당명부제만 할 경우 당 수뇌부의 독재 문제가 발생합니다. 미운 사람은 리스트에 넣지 않을 겁니다. 당수의 횡포는 말도 못할 겁니다. 넷째 무소속은 어떻게 합니까. 무소속이라는 숨통이라도 터놔야 정당도 횡포가 적어지는데, 무소속 출마를 근본적으로 막아놓으면 정당횡포가 가중됩니다.

박 : 소선거구제가 유권자와의 유대에 가깝다는 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러다보니 정실이 생기고 돈을 쓰게 됩니다. 원래의 뜻과 상치되잖습니까. 둘째 돈 쓰는 문제입니다. 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시?도조직을 통해 돈을 쓰고 선거운동하게 되면 돈 쓰는 차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정당별로 움직이는 것이 성거공영제로 가는 길이지요. 정당 지도자의 횡포도 예상됩니다. 정당제도가 발전한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겠지요. 그러나 명부식을 채택한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이 처음부터 정당제도가 성숙해서 명부제를 택한 것이 아닙니다. 시?도단위의 명부제가 이루어지면 시?도지부 자체가 명단을 만들어야 합니다. 서울에 있는 당수에게 명단 결정권이 있더라도 부산지역구의 명단에는 부산에 공헌한 사람을 되도록 많이 참여시켜야 표가 나옵니다. 현행 제도를 적당히 땜질해서 넘긴다면 세대교체나 정치발전은 백년하청입니다.

: 제도는 상대적입니다. 1백% 옳거나 1백% 그른 제도는 없습니다. 제 개인 의견으로는 국회의원 수를 지금보다 늘린다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수를 늘리면 비용만 더 듭니다. 현재의 3백명선은 유지하되, 현행 2백24개 선거구를 1백50개 정도로 줄이고 나머지 반은 비례대표제로 했으면 합니다. 문제는 전국비례대표제냐 명부식처럼 시?도 비례대표제냐 하는 것이지요. 저는 전국비례대표제가 좋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직할시가 너무 많고 제주도도 한 단위로 본다면 여러 정당에 의석을 나누는 데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또 직할시 합치는 등 블록방식을 택한다 할 때 새로운 지역주의를 탄생시킬 우려도 있습니다. 한가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전국비례대표는 소선거구의 득표수로 정하는 것이 아니고 정당투표를 따로 했으면 합니다. 물론 제 개인 의견입니다. 또 한사람이 지역구후보와 전국구후보에 동시에 등록할 수 있는 길을 텄으면 합니다. 호남의 민자당 지역구후보나 영남의 신민당 지역구후보가 지역구에 낙선되고서도 전국구로 당선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아 지역편차를 완화하자는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 같은 것입니다.

: 동시 등록방식은 편법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봅니다. 명부제를 도입하면 지역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 현행 선거운동 방법도 재검토해야 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내놓은 방안이 비교적 좋다고 봅니다. 선거구제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고 선거운동 방법만 얘기했는데 개인연설회 허용이나 신문 방송을 통한 홍보제도 같은 것은 바람직하다고 봐요. 문제는 호별 방문의 길을 텄다는 겁니다. 그만큼 유권자와의 접촉 기회가 많아져 좋긴 하지만, 거꾸로 보면 매표의 기회를 주는 셈이거든요. 호별방문은 당분간 금지시켰으면 합니다.

: 선거법도 법이에요.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법을 만들 때 다수 국민이 납득할 수 있고 실행 가능한 법을 만들고, 만들었으면 준수해야 합니다. 소선거구제를 그냥 둔다하더라도 선거법 집행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선거법을 위반했으면 당선 무효시키고 영원히 입후보할 수 없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합동연설회 없애는 것은 찬성입니다. 박수부대를 없애는 것이지요. 호별방문도 허용해야 합니다. 탈법으로 돈봉투 돌린다고 칩시다. 적발되면 당선 무효시키면 돼요. 정부의 의지가 있으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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