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속 ‘주체의 탑’ 조총련 재편 몸부림
  • 도쿄. 채명석 객원편집위원 ()
  • 승인 1991.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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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 수교교섭으로 설자리 잃어…재산도 북한에 귀속될 듯

일본 도쿄의 한적한 주택가 후지미쬬. 약간 경사진 언덕배기를 한참 올라가면 콘크리트 요새와 같은 흰색 건물이 나타난다. 지난 86년에 새로 지었다는 지상 10층 지하 2층짜리 현대식 건물이다. 철제 정문의 왼쪽 벽에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중앙본부’라는 현판, 일부러 숨겨놓은 듯 작은 글씨다. 옥상에 나부끼는 북한국기, 5m가 넘는 담장, 그리고 담장에 붙어 있는 2대의 감시 카메라가 지나가는 행인들을 노려보고 있다.

‘천의 얼굴’을 갖고 있는 이 조총련 조직이 지금 대지진을 맞고 있다. 지난 36년간 공들여 쌓아온 일본 속의 ‘주체의 탑’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왜 그럴까.

지난 5월17일 나고야공항은 조총련 인파로 북적거렸다. 이날은 나고야?평양 간을 나는 첫 직항 전세기가 취항하는 날이었다. 주최자는 평양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금강산 국제관광회사의 박경윤 해외대표(56). 약1억엔을 들여 일본의 정?재?관계, 관광?보도 관계자, 그리고 조총련 관계자 등 95명을 북한에 무료로 초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첫 직항 전세기 취하을 적극 환영해야 할 조총련 관계자들이 의외로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 보도는 전했다. 전세기 취항에 조총련이 완전히 소외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북한과 일본을 직접 연결해온 것은 북한선적 만경봉호(약3천톤). 일본 니가타항을 매년 20회 이상 들락거리면서 여객?화물을 북한으로 실어나르고 있다. 조총련도 이 배를 이용해 이른바 ‘조국 방문단 사업’을 해왔다. 그러나 만경봉호가 노후화됨에 따라 지금 북한 청진항에서는 새로운 만경봉호 (약7천~8천톤)가 건조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취항예정일은 내년 4월15일 金日成 주석의 80회 생일날이다.

앞서의 보도에 따르면 조총련은 북한의 지시로 신 만경봉호의 건조자금 70억~80억엔 중 총35억엔을 부담하기로 되어 있으며, 그 모금활동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때에 첫 전세기가 취항한 것이다. 만약 북한?일본 직항편이 정기적으로 개설되면 조총련이 만경봉호로 실시하고 있는 ‘조국방문단 사업’은 자연히 빛을 잃고 만다. 따라서 조총련 내부에서는 이 전세기 취항을 크게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도 조총련 활동에 별다른 실적이 없는 박경윤 사장이 북한 당국의 대리인으로서  그 일을 주관한 데 대해 큰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단적인 예는 그동안 외교관계가 없는 북한과 일본의 중간에서 ‘주일 북한대사관’을 자임해오던 조총련의 위상이 크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한 조총련문제 전문가는 “북?일 국교정상화교섭이 진행되어 북한당국과 일본정부와의 직접 접촉이 을어남에 따라 조총련의 정치적 비중은 그만큼 격하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수교교섭이 매듭지어져 북한의 정식 대사관이 도쿄에 들어서는 날, 조좇련은 단순한 ‘친목단체’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라고 전망한다.

“단순 친목단체로 전락하게 될 것”
일본 법무성의 ‘재류외국인통계’에 따르면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재일교포는 약 68만명. 이중 민단에 국민등록을 하고 있는 교포가 약 46만명이다. 조총련이 직접 구성원 수를 공표한 적은 한번도 없지만 지난 89년 10월21일자 <아사히신문>은 “일본 공안당국의 추계로는 구성원은 6만명 이하, 그 영향 아래 있는 재일 조선인은 18만명이라는 주장과 25만명이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민단과 조총련의 전신은 해방을 맞이해 45년 10월 발족한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 그 뒤 49년 9월 좌익세력의 준동을 염려한 미군과 일본당국에 의해 강제 해산당했다가 민단세력과 갈라져 55년 5월 지금의 조총련을 결성했다.

조총련 세력이 크게 기지개를 켜게 된 것은 59년 12월 재일교포들을 북송선에 태원 귀국시킨 이후부터다. 이른바 ‘지상의 낙원’을 찾아 귀국길에 나선 재일교포는 작년까지 9만3천여명에 이르고 있으며, 조총련은 이들이 귀국시 기부한 재산으로 wodlfyvh 사회에 ‘주체사상’을 넓혀갔다. 그러다가 金正日 서기의 권력승계, 88서울올림픽, 동유럽의 붕괴 등으로 조총련세력은 크게 위축돼 현재 그 영향권에 남아 있는 재일교포수는 일반적으로 12만~15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정부는 71년부터 ‘조선(북한)적’교포들에게도 북한을 방문하고 일본에 재입국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에 따라 조총련은 지난 79년8월부터 ‘단기 조국방문단 사업’을 적극 추천해왔으며, 71년부터 작년말까지 북한을 다녀온 조총련계 교포는 9만여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조총련계 교포의 이른바 ‘조국방문’이 늘어남에 따라 “재일동포들은 공화국을 마음의 기둥으로, 행복의 요람으로 간주하고 있다”(조총련 홍보책자 <총련>)는 ‘유일신앙’이 크게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 단적인 예가 북한방문이 허용된 71년 이후 영주 귀국자가 격감한 사실이다. 71년 1천3백18명, 72년 1천3명, 73년 7백4명, 그리고 84년 30명을 끝으로 이후 영주귀국자는 1~2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대다수 조총련문제 전문가들은 이러한 과거의 동요와 이탈이 지금 진행중인 북?일 수교교섭의 영향에 비하면 ‘작은 산사태’에 불과하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다시 말하면 북?일 수교교섭은 조총련사회 전체를 직격하는 ‘거대한 허리케인’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수교교섭은 조총련재산 인출 위한 것”
이들은 북한이 일본과 국교정상화 교섭을 서두르고 있는 본심은 이른바 ‘50억달러의 배상금’보다는 조총련사회의 총재산 20조엔 (약 1천4백억달러)을 합법적으로 인출해가기 위한 데 있다고 주장한다. 작년 10월 전직 조총련 간부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제3의 재일교포 조직 ‘재일본한국조선인민주통일연맹’의 초대의장 이광씨(62)의 주장이 바로 그렇다.

그는 조총련 사회의 공유재산(각종 부동산과 금융기관의 예금 등)이 약 10조엔, 일반 개인의 사유재산이 약 10조엔으로 모두 20조엔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사유재산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일본과 국교가 수립되면 조총련의 공유재산 10조엔을 당연히 직접 관리하려고 할 것이며, “북한정권에 무조건 복종”을 강령으로 내걸고 있는 조총련으 입지로 봐서 그 지시를 거역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의장은 또 북한은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10조엔에 달하는 조총련사회의 사유재산에도 손을 대려 할 것으로 본다. 북한이 63년 10월 제정한 국적법은 “그 거주지에는 관계없이 정치적 및 법적 보호를 받는다”고 해외교포의 지위를 규정하고 있다. 또 72년 10월에 공포된 사회주의헌법에는 “해외에있는 모든 조선공민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 공화국의 법적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돼 있다. 이의장은 이러한 법규정에 따라 북한은 수교교섭이 완결된 후 조총련사회에 ‘보호의 대가’를 요구해올 것으로 본다. 그 형태는 조세형식?특별입법형식 등 온갖 편법이 모두 동원될 것이며, 이를 거부하는 조총련계 교포들은 북한의 국내법을 적용해 범죄자로 낙인찍을 것으로 내다본다. 현재 북한이 형법을 다시 고치려 하고 있는 의도도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한 지난번 수교교섭에서 북한측이 요구했던 ‘재일조선인의 법적 지위향상’9항목은 조총련사회에 대한 선심공세에 불과할 뿐, ‘조선(북한)적’교포들에게 향후 국적을 선택할 자유를 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또 일본체류권의 보장, 병역의무의 면제, 강제퇴거문제 등 교포들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에 대해 북한의 태도가 아직 명백하지는 DSKG다. 이 때문에 북?일 수교교섭이 무르익어가면 갈수록 조총련사회의 동요도 함께 부풀어오를 것이며, 막상 수교교섭이 매듭지어질 무렵에는 상당수가 북한국적을 이탈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난 89년 10월 이른바 ‘사회당 빠징코 의혹사건’이 열기를 더해가고 있을 때 일본공안조사청 간부는 국회답변에서 조총련을 ‘위험한 단체’라고 규정했다. “치안정세에 따라 금후 다시 파괴활동에 나설 위험성이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치안상 큰 주목이 필요한 단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총련은 일본의 극좌세력을 단속하기 위해 제정된 파괴방지법 적용 단체로 지정돼 늘 감시를 받고 있는 ‘치안의 대상’이라는 얘기다.

조총련도 <총련>이라는 책자에서 자신들의 성격을 스스로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첫째 공화국정부의 모든 로선과 정책의 기초인 주체사상을 가지조직의 지도리념, 모든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하고 있는 공화국 해외공민단체, 둘째 각계각층을 망라한 대중단체, 셋쌔 조국통일과 권리옹호를 위하여 활동하는 단체.

북한도 조총련의 충성을 강요하기 위해 67년 11월 제4기 최고인민회의에서 한덕수 의장을 비롯한 7명을 대의원으로 선출한 이래 각종 훈장?표창으로 조총련을 옭아매고 있다. 또 조총련에는 ‘학습조’로 불리는 3천여명의 열렬한 북한 노동당 당원이 있어 이들이 조직내부를 철권으로 장악하고 있다.

한편 작년 조총련이 발간한 <총련>이라는 책자에 실려 있는 발간사의 한 대목을 인용해보자. “오늘 총련을 둘러싼 사업환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동포들의 직업구성도 바뀌어져 2?3세들이 애국운동의 주인으로 활동무대에 등장하고 있다.” 바로 그렇다. 세대교체에 의해서도 ‘주체의 탑’은 무너질 수 있다. 또 남북통일 환경, 북한내 체제변화에 따라서도 철권조직을 자랑하는 조총련이 ‘사상의 누각’으로 변할 수 있다.

조총련 결성이래 36년간, 해방 이후 46년간 꿈에도 그리던 공화국(북한)의 대사관. 바로 그 꿈이 실현되기 직전에 조총련은 오히려 악몽에서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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