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둑’ 조춘자 주택정책이 키웠다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1.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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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투성이 주택조합법 악용…검찰 수표추적 안해

“시대가 인물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만 강남의 큰손으로 행세하며 사기행각을 일삼아온 조춘자씨(일명 조은주)는 우리 시대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사기꾼임에 틀립없는 것 같다. 조씨가 재개발 지역의 딱지를 사들여 서민들에게 이중삼중으로 팔아먹는 바늘도둑에서 조합주택 분양을 미끼로 수백억원을 챙기는 소도둑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닌 상업주의에 빠진 잡지, 서민에게 일확천금의 허황된 꿈을 심어주는 주택정책이었다.

7월26일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이 발표한 조씨에 대한 종합수사결과와 그동안 드러난 조씨의 행적을 보자.

다방?술집 종업원으로 전전
1945년 10월25일생, 우리 나이로 47세인 조씨는 대전의 명문인 ㄷ여중을 졸업하고 17세 때 가출해 다방 및 술집 종업원으로 전전했다. 조씨는 80년대 들어와 재개발 지역의 딱지를 사들여 되파는 일에 재미를 붙이면서 본격적으로 부동산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사기?배임 등의 혐의 22차례나 입건된 바 있다. 특히 85년에는 한장의 재개발 딱지를 여러 사람에게 팔다 입건돼 1년6개월의 실형을 살기도 했다. 언니 조순남씨의 진술에 따르면 조씨는 85년 언니인 조씨에게마저 딱지를 사주겠다고 속이고 1천8백만원을 갈취했다고 한다.

조씨가 조합주택에 눈을 돌린 것은 지난해 4월 서울시 구의동 소재 영화배우 신영균씨등 2명의 땅을 사들이면서부터이다. 조씨는 계약금만 치르고 조합원을 모집, 그들로부터 받은 돈으로 땅값을 지불한 뒤, 조합과 지주가 다시 정식계약을 맺게 하는 수법으로 중간에서 막대한 전매차익을 챙겼다.

조씨는 또 구의동 조합주택의 정원이 찼는데도 계속 조합원을 모집, 자금을 끌어들여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지난해 11월에는 주택공사로부터 서울 이태원 땅 1만7천여평을 낙찰받아 계약금만 치르고 조합원을 모집해 돈을 거둬들이다가 낙착이 취소되는 바람에 물의를 빚었으며, 올해 4월에는 민자당 가락동 연수원부지를 매입해 조합주택을 짓겠다며 조합원을 모집했다가 경찰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검찰의 집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조씨에게 속아 짓지도 않는 집의 권리증, 이른바 물딱지를 산 사람은 무려 3백61명으로 총 피해액은 2백61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조씨가 검찰에 구속되기 불과 3개월 전인 지난 4월 유력 일간지인 ㄷ일보와 ㅈ일보가 발행하는 여성지와 주간지를 비롯, 각 잡지에 집중적으로 소개된 조씨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 여성지들은 조씨가 강남의 큰손으로서 ‘급전’동원능력이 수억원이며 소유 부동산이 수천만평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또 조씨가 공주교대를 나왔으며 세무공무원 출신으로 정계의 유력인사와 끈을 맺고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피해자의 한사람인 ㄱ씨는 “그 여성지들은 조씨와 공법이다”라고까지 얘기한다. ㄱ씨는 조씨가 민자당 연수원 부지 사기와 관련해 경찰에 소환됐을 때 조씨에게 낸 약정금을 돌려받으려다가 여성지에 난 기사를 보고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고 한다. 언론이 인장하는 ‘거물’인 조씨가 아무려면 사기꾼일까 싶어서였다. 또 다른 피해자인 ㅇ씨는 여성지 기사를 보고 조씨에게 사정해 친지 한사람을 물딱지 조합원이 되게 했다면서 기막혀 한다.

실제로 구의지역과 강남의 복덕방들은 거의 빠짐없이 조씨의 기사가 실린 여성지들을 비치해놓고 피해자들을 유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조씨 자신도 조합가입을 망설이는 사람이 있으면 넌지시 자신의 기사가 실린 여성지를 보여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조씨가 알려진 것과는 달리 큰손이 아니라 빈손이며 사기를 치고 있다”는 소문이 부동산업계에 파다하게 펴진 뒤인 4월 이후에도 피해자가 1백명넘게 발생했다.

피해자의 한사람인 ㅁ씨의 경우를 보자.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ㅁ씨는 89년 사업자금이 달려 44평형 고충아파트를 1억2천만원에 팔아 그 중 4천만원을 사업자금으로 썼다. 그런데 그 와중에 집값이 다락같이 올라버려 남은 돈으로는 작은 아파트도 만져 볼 수 없게 됐다. 울며 겨자먹기로 그동안 전세를 살았는데 복덕방 업자의 꾐에 빠져 조씨의 물딱지를 사고 말았다. ㅁ씨는 부동산 업자에게 프리미엄 2천2백만원, 조씨에게 토지대금과 계약금으로 7천7백90만원, 또 3년 무주택인 남의 명의를 사는 데 1천만원 등 모두 1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은 상태이다.

ㅁ씨는 “사업을 하지 않았으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5억원 정도의 재산가가 돼 있었을 텐데, 사업체를 살려보려다 알거지가 되게 생겼다”면서 “이런 현실에서 어떤 사업자가 제조업에 매달리겠느냐”고 말한다. 검찰도 그렇고 부동산업계에서도 조춘자씨의 사기행각을 우리나라 주택정책의 맹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조춘자씨가 추진한 구의1차아파트 정조합원 가운데는 투기를 목적으로 남의 명의로 계약한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4백18명분 가운데 60명분은 조춘자씨가 남의 명의를 빌려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검찰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4백18명의 조합원 가운데 2명이 생활보호대상자로 밝혀져 피해자들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가 하면 검찰은 피해자 가운데에서도 투기를 목적으로 투자한 사람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기도 하다. 피해자들이 검찰에 신고할 때 실명으로 해야 할지 명의를 빌린 사람의 이름으로 해야 할지 몰라 허중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또 조춘자씨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신고 피해자 중 31명은 ‘가짜’ 영수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어떤 수를 써서라도 주택조합에 가입만 하면 앉아서 1억원정도는 챙길 수 있는 모순 덩어리의 현행 주택조합법이 대형 사기 사건을 부르고, 거기에다 가지치기 소형 사기사건까지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피해자의 대다수는 하루아침에 수십년 동안 모은 전재산을 날려버린 사람들이다. 8년 동안 중동에서 일해 모은 돈을“조춘자에게 고스란히 갖다 바쳤다”는 40대의 기능공은 “몇날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웠는지 모른다. 이러다가는 지레 죽겠다는 생각에서 잊어버리려고 해보았지만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말한다. 또 “조춘자가 사기꾼이었다”는 말을 듣고 그대로 기절해버린 50대 아주머니와, “남편이 망설이는 것을 강권해 딱지를 샀는데 돈은 둘째고 가정이 깨지게 됐다”며 망연자실해하는 40대 주부 등 딱한 사연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피해자들은 현재 조춘자씨가 운영하던 서울 서초동 서일빌딩 3층 정암산업 사무실에서 농성을 하면서 대책위를 구성하고 변호사를 물색하는 등 피해보상을 받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조씨 사건에서 현재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은 조씨가 도대체 3백억원에 가까운 돈을 어디다 썼을까 하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조씨가 갈취한 돈의 상당 부분을 빼돌렸으며, 또 그중 일부는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씨가 민자당연수원 사건으로 여론의 화살을 받고있을 때 경찰이 간단히 조사만 하고 풀어준것만 봐도 뻔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1년 생활비 6억. 보석 구입에 10억 써
그러나 검찰의 수사결과를 보면 조씨가 은닉한 재산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조씨가 일을 벌이던 지난해 2월경부터 지난 12일 구속될 당시까지 조씨가 각종 사업과 생활비 등에 지출한 액수는 2백73억2천만원으로 오히려 피해액수를 능가한다. 특히 조씨는 지난 1년 동안 매달 5천만원씩 6억원의 생활비를 썼으며, 보석류를 구입하는데 10억원, 벤츠 푸조 그랜저 소나타 등 4대의 승용차를 사는 데 1억4천만원이나 지불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씨 본인은 검찰에서 피해자들에게 늦어도 1심 선고공판이 열리기 전까지는 전액 변제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여유’를 보이고 있으나,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조씨의 재산은 부동산 등 98억원에 불과한 반면 피해자에게 변제해야 할 2백66억원 등 총부채는 3백50억원에 달하는 실정이다.

검찰은 이같은 조사결과를 토대로 이번사건을 ‘허영심에 들뜬 정신 나간 여자의 소행’으로 결론 짓고 곧 조씨를 기소할 방침이나 검찰의 수사에 미진한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조씨에게 고액권의 수표를 넘겨줬고 수표번호를 기록해놓았다. 피해자들이 조씨에게 수표를 건네준 것은 불과 3~4개월 사이므로 수표번호를 추적하면 정치자금 유입 여부 등 이번 사건의 진상은 좀더 분명하게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의 대답은 “추적할 일손이 모자란다” “사회?경제적 물의를 빚을 수 있다”등 애매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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