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저널리즘위한 실험과 도전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1994.03.1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음악.공연 전문지 《객석》 창간 10돌 / 평론.실내악.국악 발전에 공헌

“사람의 겉을 다스리는 것은 禮이고 사람의 안을 다스리는 것은 樂이라 한 공자의 가르침과 우리 음악.공연 문화와의 조화를 함께 살펴보고 싶다.”10년전《객석》 창간호를 내면서 崔元榮 대표이사는 이와 같이 창간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공연 예술지라 할《객석》의 출현은 당시 문화예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여성지가 주도하던 선정주의와 상업주의의 물결 속에서 '길게 잡아 5년 이상 버텨낼 수 없을 것'이라 전망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이같은 우려는 그보다 훨씬 더 큰 환영과 호응 속에서 사라지고《객석》은 최근 통권 제 1백21호를 내놓고 탄생 10돌을 맞았다.

 지난 60년대 독일 남단 도나우에슁겐 현대음악제에서 13분짜리 관현악곡(禮樂)을 초연함으로써 세계적인 작곡가로 떠오른 윤이상 기사는《객석》 창간호(84년 3월)의 가장 중요한 목록이었다. 동베를린 사건 이후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 일조차 금기시되던 분위기에서 윤이상 특집을 내는 것은 무모한 일에 가까웠으나《객석》 취재진은 베를린에 타전을 시도했다. '음의 도교주의자, 윤이상의 음악 세계'라는 제하의 이 대형 특집은 곧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한 음악 평론가는 "한국 지식인 사회 내부에 잠복하고 있던 윤이상에 대한 집단적 죄책감은 이 특집 기사에 대한 갈채를 통해 어느 정도 상쇄되었다"라고 토로할 정도였다.

 이후 음악 활동에 관한 한 윤이상은 더 이상 언론의 기피 인물이 아니었으니《객석》은 윤이상을 해금시킨 최초의 언론인 셈이다. 그가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 첫 작품의 제목인<예악>이《객석》의 창간 이념이 된 것은 우연한 일이었으나, 그것은《객석》이 그 뒤로 이 땅에서 음악 예술 저널리즘을 성취하기 위해 지나가야 할 필연의 길목이기도 했다.

'금지된 곡' 연재하다 원고 압수 당하기도
 윤이상의 음악 세계를 정면으로 부각했을 뿐 아니라 한국 최초로 '중공' 음악 기행문을 게재함으로써 창간호부터 권위주의 정권의 관리 대상이 되기 시작했으나,《객석》은 그 이듬해에도 <북한 예술> <소련 음악> 등을 연속적으로 터뜨렸다. 금지된 것에 대한 탐구와 도전은《객석》의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이인해 《객석》 편집이사는 "원고를 압수당해 연재가 중단된 일도 많았으나 최소한 공연예술 분야만이라도 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였다"라고 회상한다. 

 이씨는 "객석이 보는 잡지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시원한 변형 국배판 판형과 올컬러 무대 사진을 공급한 《객석》의 서비스 정신은 상업적전략으로서도 성공했다 특히 무대 현장의 절정감을 포착한 대형 사진은 독자뿐 아니라 무대인들의 찬탄을 불러일으켰고《객석》이 펼치는 지상무대는 '오르고 싶은 또 다른' 무대로서 권위를행사했다. 인물 사진이나 간간히 싣던 다른 매체들이 공연사진으로 화보를 장식하기 시작한 것은 이와 같은 반응을 확인 한 뒤의 일이다.

 객석10년을 결산할 때 가장 두드러진 업적은 예술 평론 정착과 실내악 운동, 그리고 한국전통음악 시리즈 세가지라 할 수 있다.《객석》은 창간1주년을 기념하여 당시로서는 파격인천만원을 내걸고 음악?공연평론을 모집했다. 음악평론가 박용구씨는, 기록성과 비판성을 통해 음악 저널리즘을 정착시키고 평론 인력을 선발하여 현장에 투입한 일을 높이 평가하면서, 특히 무용과 연극분야의 평론은 국내 유일의 창구라고 말한다.

'예음상' 통해 평론가 31명 배출
 10회째 이어지고 있는'객석예술평론상'(92년부터 '예음상')을 통해 등단한 평론가는 서양음악.국악.연극.무용 네 부문에 걸쳐 모두 31명이다. 이 중 윤중강(국악) 이병옥(무용) 이장적(음악) 김미도(연주) 문애령(무용) 등은 한국 평단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하는 신진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객석》창간과 동시에 전개한 실내악 운동은 해마다 설악산에서 열리는 예음클럽의 휴양지 페스티벌과 2백석 규모의 콘서트 전용 홀인 예음흘 개관, 실내악 콩쿠르 개최, 실내악 연주 부문과 창작 부문의 수상자를 내는 예음상 제정을 통해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러나《객석》이 풀어야 할 숙제는 많다. 이인해 이사는 그것을 "대중성과의 건강한 화해또는 타협"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그것을 지난 10년간 '표지와의전쟁'을 통해 체험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우리에게 알려진 스타는 대부분 이미 정상에서 내려선 사람들이라고 전제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중요한 음악?공연예술가들을 발굴하여 소개하는 일을 계속하겠다"라고 말한다.

 '동양의 예술은 무진장한 정신과 직관에 의한 신비와 힘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객석》은이를 재발견하고 개척하는 사명을 고무해주고 풍요한 밑거름이 되어주기를 빕니다.《객석》이 예술잡지로 영속하길 바라며 베를린에서 보내온 윤이상씨의 10주년 축하 메시지역시 성년을 준비하는《객석》의 또 다른 지향점을 제시하는 것 같다.
                                                                      金賢淑 차장대우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