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공산당 “화이트 칼라도 대변”
  • 김호균 (정치경제학 박사?前 본 주재 통신원) ()
  • 승인 1991.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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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위 ‘인도?민주적 사회주의’ 강령 채택…국제공산주의 운동 깃발 내려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통과된 ‘인도적?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강령은 70년 이상 세계사의 한몫을 차지해온 소련을 중심으로 한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폐막을 공식 확인하는 절차였다. 이 강령은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이 된 후 폐기하거나 수정한 대로 되어 있다.

공산당이 모든 법에 초월적이던 원칙을 법치주의로 대체한 것, 합법적 활동과 비합법적 활동의 병존원칙을 합법적 활동원칙으로 대체한 것, 공산당만이 유일했던 영도원칙을 다당제로 대체한 것,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한 것, 국가소유 중심을 다양한 소유형태로 대체한 것 등이 그것이다.

소련 공산당 지도이념으로서의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이제 공식 폐기되었고 마르크스의 사상은 진보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사상의 한 조류로 상대화되었으며, 다른‘인도적 사상’에 대해서도 문호가 개방되었다. 아울러 레닌의 신경제정책을 다시 강조한 것이 보수파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는 것이었다면, 10월혁명의 필연성을 확인하고 전면적인 사유화를 거부한 것은 급진개혁파에 대한 차이를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중.소 이념분쟁 이후 무너지기 시작
이번 고르바초프의 연설에서 특히 주목할것은 공산당이 노동계급의 전위당임을 포기하고 ‘모든 노동자의 당’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한 점이다. 이러한 전환은 무엇보다도 노동계급으로 통칭되던 육체노동자의 수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이미 줄어들고 있고 소련에서도 경제가 발전할수록 줄어들 것이라는 시대 상황에 비추어볼 때 불가피한 것이다. 줄어드는 육체노동자뿐만 아니라 늘어나는 두뇌노동자들도 포함되는 ‘모든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만이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한 상황이 소련 공산당의 변신을 강요했다고 할 수 있다.

국제공산주의 운동은 지난 세기에 마르크스의 이론적 지도 아래 유럽 차원에서 시작된 ‘국제노동자협회’의 운동을 계승한 것이었다. 제2인터네셔널과 제3인터네셔널을 거친 국제공산주의 운동은 60년대 중?소이념분쟁 이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소련과 중국의 노선 차이는 그후 급기야 에티오피아 앙골라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등의 내전에서 서로 다른 편을 지원하는 적대관계로까지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80년대까지 국제공산주의 운동에서 종주국 자리를 유지해왔다.

전세계에 걸쳐 1백여개에 이르는 공산당은 70년대초와 80년대초에 각각 <국제공산주의 운동론>을 펴내기도 했고 <평화와 사회주의의 제문제>라는 월간지를 90년 중반까지 발행해왔다. 국제공산주의 운동은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공통 이데올로기 기반으로 삼으면서도 소련?동유럽의 사회주의 건설, 선진 자본주의 나라의 반독점 투쟁, 제3세계의 민족해방투쟁 등 ‘세 조류’로 구분되었다. 이중 선진 자본주의 나라 공산당들이 추구해온 반독점 투쟁이 성공한 사례는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70년대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을 폐기한 서구 공산당들은 이제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소련의 지원을 받아온 제3세계의 민족해방운동도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부의 실권, 아프리카 마르크스 레닌주의 정당들의 실권 등으로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중심임을 자부하던 ‘사회주의 세계 체제’도 몰락함으로써 ‘세 조류’는 모두 사라진 셈이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 모델은 ‘전략적 패배’를 겪었다. ‘완전히 새롭게 바뀔’사회주의관은 기본적으로 개별 국가를 무대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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