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경규제’엔 끝이 없다
  • 박중환 기획특집부장대우 ()
  • 승인 1991.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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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포경위원회 회의는 강대국의 힘이 지배하는 냉엄한 국제정치 현장이다. 36개 회원국가 중 포경반대 국가는 15~20개국. 이들 국가의 면면을 보면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스위스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으로 입김이 센 서방 강국들이다.

 지난 82년 7월 영국에서 열린 제34차 국제포경회의는 이들의 주도 아래 상업포경의 전면금지안을 채택했다. 에스키모들의 생계용과 고래자원 조사용을 제외하고는 85~89년까지 고래를 잡지 못하게 한 것이다. 한국은 86년 조사용으로 극소수의 포경이라도 허가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더구나 한국이 고래를 계속 잡을 경우, 한국 수산물을 수입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수입 쿼터제헌을 미국이 들고 나왔다. 한국은 수출시장인 미국의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정부는 포경업계의 전업을 위해 보상하는 한편 모든 포경선을 폐선토록 했다.

북양 오징어잡이도 금지될 판
 장생포항에 등록취소된 채 6년째 묶여 있는 녹슨 포경선이 그것들이다. 대물림을 받아 이곳에서 고래고기 음식점을 하고 있는 할매집 주인 金命昊(43)씨는 “90년부터 부분적으로나마 풀릴 줄 알았는데 감감 무소식”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장생포항은 활기를 잃은 채 4곳의 고래고기집이 명맥만 잇고 있다. 이 식당들은 간간이 그물에 걸려든 작은 고래의 고기를 팔고 있다. 이런 탓에 경매값이 1㎏에 1만5천~2만5천원 정도로 쇠고기보다 훨씬 비싸다. 그나마 요즘에는 더욱 귀해졌다.

 국제포경위원회는 82년 채택된 ‘89년까지’라는 자귀는 그 후부터 풀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때까지 ‘포괄적 조사’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이런 해석을 근거로 금지기간을 연장하는 새로운 결의안을 내는 한편, 그동안 규제에서 제외됐던 돌고래 등 소형 고래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고래를 작살 총을 쏘아 처참하게 죽여서는 안되며 인간적인 방법으로 포획해야 한다고 제안, 고통없이 죽일 수 있는 포획방법을 찾기로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5월 아이슬랜드에서 열린 제43차 회의는, 고래는 물론 바다새들이 어선의 그물에 걸리는 것을 막기 위해 유자망 어업도 규제해야 한다는 안이 제시됐다. 이 안이 결의되면 북양에서의 오징어 조업이 사실상 묶이게 돼 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한국 수석대표인 河星煥 국립 수산진흥원장은 “사사건건 투표로 의결하는 국제포경위원회 회의는 주요 의제의 의결정족수를 회원국의 4분의 3(27개국)으로 높게 규정, 포경 반대국의 주도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설명했다.

 강대국 정치인들은 환경단체의 압력과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포경 반대에 더욱 앞장서고 있다.

 환경단체들의 극성은 테러까지 불사한다. 지난 86년 아이슬랜드 레이캬비크에선 ‘바다의 감시견’이라는 과격 환경 단체가 포경선을 침몰시키기도 했다. 또 이들은 회원과 어린이들을 동원, 포경국가에 비난편지 보내기를 벌인다. 이런 극성에 민주주의를 하는 서방국가 정치인들은 환경문제에 관한 한 ‘무조건 지지’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89년 제41차 국제포경회의가 미국에서 열렸을 때, 부시 미국 대통령이 특사까지 보내 “고래는 귀중한 자연환경자원”이라고 치켜세운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정치적  제스처이다.

 그러나 일본은 88년 4만마리의 작은 고래를 잡았다. 이 때문에 ‘야만국’이란 비난을 받았으나, 미국 수산물을 수입하는 엔화의 위력으로 버티며 돌고래 등을 잡고 있다. 더욱이 지난 5월 회의에서는 그들의 조사자료를 제시하며 남빙양과 북대서양에서의 밍크고래잡이를 허용해달라고 주장했고, 위원회를 탈퇴하겠다며 배짱을 내밀기도 했다. 국력은 바다속 깊숙이까지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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