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희망 건다”
  • 모스크바·김창진 통신원 ()
  • 승인 199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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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강사에서 기독교인 된 페트로브나씨


 

오늘날의 러시아는 소련공산당의 몰락과 연방 해체라는 잔해 위에서 굳게 닫혔던 러시아 정교회의 문이 다시 열렸고 서방에서 파견된 목사·선교사들에 의한 개신기독교 선교열풍도 받고 있다. 이같은 변화의 와중에 서있는 사람 가운데 한사람인 고려인 배 리쟈 페트로브나씨(56). ‘자본주의 독일의 사회적 하부구조’라는 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그는 2년 전까지 모스크바 자동차도로대학의 정치경제학 교원으로 일했다. 지금 배 리쟈 페트로브나의 공식 직함은 회원 1백50명 가량의 ‘여성고려인협회’ 회장. 그리고 모스크바 ‘아르바트교회’ 섭외 · 홍보 담당 서기이다. <편집자>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으로 학위를 받았다고 들었는데 대학에서는 무엇을 가르쳤나.

 역시 자본주의 경제학과 사회주의경제학을 가르쳤다.

 

과거에 비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 당신이 가르쳐온 것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을 것 같은데.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도 해외 잡지를 보았으며, 학생들에게 내가 가르치는 것만이 옳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당시에도 나는 이 지구상에 ‘순수한 자본주의’란 존재하지 않으며, 소련의 사회주의제도 또한 마르크스가 구상한 바에 도달하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본주의제도를 모두 나쁜 것으로 치부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아직도 빈부격차와 사회적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소하는 데 문제가 있는 체제이지만, 과학기술혁명을 통한 사회의 진보적 변화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이 나라에서 그동안 진정한 사회주의체제가 세워지지 못한 원인을 무엇으로 보는가.

 마르크스나 레닌의 구상과 실천을 그 다음 지도자들이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데 중요한 원인이 있다고 본다. 특히 스탈린은 이미 국내의 반혁명세력이 제압된 상황인데 불필요한 억압정책과 강제조치를 취함으로써 소련의 민주주의를 말살했다. 고르바초프의 주도 아래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었었을 때 나는 그가 내세운 사회 개방과 민주주의 수용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너무나 많은 것을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함으로써 결국 실패했다. 그동안 유지되어온 사회의 중심축이 붕괴되고서는 아무것도 제대로 추진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이 나라가 망한 것은 그동안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설교하는 목사들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앞으로 예수만 믿으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도 하고…

 예수를 안믿어서 이 나라가 망했다? 글쎄, 그 부분에 대해서 솔직히 아직 나는 의문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거 소련 당국이 개방적인 종교정책을 실시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치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에서 양자가 서로를 보완하면서 좀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교회와 국가, 더군다나 유물론을 그 철학적 · 이념적 정당성의 기초로 삼는 사회주의 국가체제와 그같은 인식을 부정하는 교회가 그렇게 쉽사리 융화될 수 있었을까. 혁명 이전 시대에 있었던 교회의 부정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었을 테고….

 그런 면이 있다. 구 시대의 교회는 확실히 가만히 앉아서 인민이 노동한 대가를 향유했다. 그러나 나는 교회와 사회주의 국가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와 성경은 모두 인간의 선한 생활과 노동의 귀중함, 상호우애의 가치를 지적하는 휴머니즘적 성격을 가졌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같이 교회에 나오는 러시아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그들은 왜 러시아정교회에 나가지 않고 개신교회에 나가는가.

 우리 교회에 나오는 러시아인들은 대개 과거에도 신을 믿었던 노인들이다. 교회가 문을 닫았다고 해도 그런 사람들은 조금씩 있었다.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 사람들은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 하나로 버티면서 살아간다. 그런 희망도 없이 어떻게 살겠는가. 다른 이유는 아마도 우리 교회 선교사가 세련되게 설교를 한다는 점, 즉 공산당과 과거 이 나라의 모든 것을 직설적으로 욕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 흡인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교회에서 매달 연금생활자나 학생들에게 생활보조금을 주고 가까운 곳에 정교회가 없다는 것 등이 또다른 이유일 것이다.

 

 90년 이래 올 초까지 북한과 남한을 골고루 두번씩 방문했다고 들었는데 두 지역에 대한 비교적인 인상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보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나는 김일성 주석에 대한 숭배에 비판적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교육 · 의료 등 사회보장이 아주 훌륭했다. 평양 또한 잘 정돈된 깨끗한 도시였고 갖가지 시설도 잘 돼 있었다. 물론 생활형편은 남한보다 확실히 못했다. 남한은 물질적으로 잘 살고 있었지만 서울에 대한 인상은 썩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같이 간 사람들 중에서는 통일이 되면 통일조국의 수도로 평양이 낫지 않겠느냐 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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