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과외선생 ‘청소년 입장可’
  • 이성남 차장대우 ()
  • 승인 1991.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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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영화 활개 … 소비자운동으로 일소해야

 외국의 성인용 폭력영화가 잔혹장면 일부 삭제로 한국에서 청소년 영화가 될 수 있는가. 여름방학을 맞아 서울 YMCA와 공연윤리위원회는 청소년 영화 심의기능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전을 올해도 재연하고 있다. 심판대에 오른 영화는 <양들의 침묵> <터미네이터 2> <엘리게이터 2> <스톤콜드> <다크의 그림자를 죽여라> 등이다. 이 영화들에 대한 양 단체의 의견은 상반되고 있다(70쪽 표 참조).

 공륜의 지난 7월16일 ‘중고생들의 외국영화 관람에 대한 설명자료’를 통해 이 영화들이 공상과학 오락물 또는 권선징악의 수사물로 “완성도가 뛰어날 뿐 아니라 청소년들이 관람해도 무리가 없는 작품”으로 판단 되었으며, 부분적으로 과도한 폭력장면은 순화시켜 “무차별 폭력·살상 일변도의 폭력장면 등은 거의 정화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YMCA는 “부분 삭제등의 방법으로 순화했다”는 공륜측 주장에 맞서 영화작품에서 폭력·외설의 문제들을 하나씩의 장면으로 선별하려는 태도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폭력문화 조장하는 폭력영화
 지난해에도 <로보캅 2> 등 미국 성인영화를 중학생 입장가로 판정했던 공륜의 심의 기능에 YMCA가 문제를 제기해 사회여론을 환기시킨 바 있다. YMCA는 7월 23일 <터미네이터 2>의 자체 시사회를 마련, 문화부 장관·체육청소년부 장관을 비롯해 청소년단체 여성단체 종교단체 등 사회 각계의 대표 50여명을 초청해 ‘폭력영화 환경’ 퇴치에 각 시민단체가 연대하여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YMCA 이승정 간사는 “지난해의 문제 제기가 한 시민단체의 감시기능 차원이었다면, 올해는 개선되지 않은 폭력문화 환경의 극복을 위해 영화소비의 주체인 시민과 공동으로 대응하겠다”고 설명, 영화소비자 운동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4천5백원짜리 문화상품이 청소년의 정서에 유해한지를 가려야겠다는 데 이번 운동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25일에는 YMCA 주최로 ‘청소년의 폭력영화 노출,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참석자들은 폭력영화를 오락으로 즐길 수 있는 성인들과 달리,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반복되는 폭력영화 관람이 각인시켜 주는 것은 다르다는 점에 뜻을 모았다. 따라서 이같은 폭력영화가 공륜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성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우수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청소년들에게 전편에 걸쳐 계속되는 폭력장면이 뇌리 속에 뿌리박혀 어느 순간 모방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우려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 신상언씨는 폭력 비디오를 흉내내서 택시 강도를 하다 경찰서에 붙잡혀온 두 고등학생의 경우를 예시 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폭력물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김준호 교수(덕성여대·사회학)는 80년대들어 급증한 강도·강간범죄 중에서 청소년이 저지르는 비율이 각각 75%, 65%를 차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국의 폭력문화와 폭력영화의 연관성을 조감했다. 한두개의 폭력영화 때문에 사회가 폭력화되고, 폭력영화 때문에 청소년이 폭력범죄를 저지른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폭력사회가 폭력영화를 불러오고 마침내 거대한 폭력문화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인간교육 실현을 위한 학부모연대 공동대표 전풍자씨도 “음란 비디오는 몰래 보고 폭력물은 공개적으로 보는” 풍조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된 폭력에의 둔감 현상을 지적했다. 입시 교육의 억압환경에서 정서순화의 기회가 차단된 청소년들이 폭력영화를 통해서 고통을 해소하려는 것은 부정적인 영향을 야기시키므로 “국가적 차원에서 폭력영화로부터 청소년들을 구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강사인 김찬호씨는 “우리 사회가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학급신문하나 만드는 것은 철저히 감시 통제하면서도 이들을 가장 만만한 소비 대상의 전략지대로 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같은 지적은 공륜이 불황에 처한 한국 영화계의 현황을 전제로 “어떤 작품이 부분적 제한을 당하더라도 청소년 관람가로 판정받기 원하는” 현실을 감안해 심의 과정에서 “가급적 수입한 회사의 의견을 수렴하려 했다”고 밝힌 데 근거한 것으로, 공륜과 영화수입사간의 결탁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을 불러 일으킨 부분이다. 이에 대해 공륜 영화심의위원인 금창태씨는 영화업자의 요청에 부응해 심의기준을 낮춘 것처럼 인식되는 것은 ‘오해’라고 해명하고, 공륜 또한 청소년들을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환경에서 보호하고 그들의 정서를 순화시켜나가는 데 심의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터미네이터 2>도 공륜 심의 과정에서 여섯 군데를 삭제했다”고 한 그의 설명은 토론자들로부터 반박을 받았다. <서울신문> 이중한 논설위원은 논란의 핵심은 공륜은 삭제한 여섯 장면이 아니라 ‘중학생 관람가’로 판정, 상영되고 있는 나머지 폭력 장면임을 주지시켰다.

 공연윤리위원회 심의위원 위촉 전담부서인 문화부의 서정배 영화진흥 과장은 “폭력 영화나 외설영화를 청소년으로부터 차단시켜야 한다는 입장은 명백하다”고 못박는다. 따라서 폭력영화는 수입되지도 상영되지도 말아야 함은 당연하지만, 논란중인 특정 영화가 폭력영화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판단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화 심의의 어려운 점은 조목조목 상세히 나열된 구체적인 심의 기준에 의거하여 칼로 자르듯 판단할 수 없고, 개인의 주관적 가치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심의위원조차도 ‘폭력성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 서과장은 공륜이 “심의의 기본 원칙과 함께 사회단체가 비난하는 문제를 주의 깊게 수용해주기를 희망한다”고 부연했다. 또 비판의 표적이 된 공륜의 등급 판정에 대해서는 “영화를 자르지 않고 보여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전제하고, 현행 심의 방법의 문제나 미비점은 의견수렴을 거쳐 계속 보완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심의 방법은 그 나라의 영화계 현실이나 사회 여건에 따라 정해질 수밖에 없다”고 못박고 장면삭제의 방법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식의 심의등급제로의 전환은 우리의 제반 실정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 심의등급제로 전환하려면 성인 전용 영화관 건립이 선행돼야 하며, 그렇게 될 때 성인 전용 영화관은 자칫 포르노 전용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폭력영화 해악에 대한 이론적 검증 필요
 문화부의 이같은 주장은 공륜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공륜 영화심의부 현경석 부장은 공륜이 마치 “청소년을 좀먹게 하는 악덕 결탁기관”으로 인식되는 사실에 유감을 표시하면서, “폭력성에 노출된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한 사회단체의 의견을 경청, 이 문제를 전문으로 논의하는 세미나의 개최 등을 고려중이다”라고 밝힌다. “잔혹 장면 삭제로 성인용 폭력영화가 청소년 영화가 될 수 있느냐”는 물음에는 “부분적으로 장면을 순화한다고 해서 성인용이 청소년 영화가 될 수는 없지만 그 내용이 훨씬 순화된다”고 답변했다.

 청소년 시기는 힘의 과시를 통해 자기를 확인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더욱이 “남학생들에게 가치있는 것은 폭력이고 여학생들에게 가치있는 것은 매력”인 우리 사회 풍조에서 남학생에게 폭력은 자칫 언어가 되고 미덕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이같은 상황에서 폭력영화가 청소년에게 끼칠 해악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성숙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와 해당 기관이 소모적인 공방전의 양상으로 치닫는 까닭은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폭력영화에 노출된 청소년 문제를 논의하자는 시민단체의 제안에 해당기관인 공륜이 ‘마이동풍’식 답변을 하기 때문이다. 공륜은 “영화 작품으로서의 우수성” 또는 “사회 전반의 구조와 맞물려 있는 심의 기준” 등을 내세움으로써 문제 제기의 근본 취지에 어긋나는 답변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영화의 폭력성이 청소년의 정서에 끼치는 영향을 객관적 통계자료로 제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제 출발점에 들어선 영화 소비자 운동이 성과를 거두고, 또 국민윤리의 표상을 설정하는 공공심의기관으로서의 자리매김을 위해서는 폭력영화의 해악에 대한 이론적 검증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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