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大는 섬 문화의 항구다”
  • 목포·성우제 기자 ()
  • 승인 1992.08.1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설 ‘도서문화연구소’ 서남해 섬 ‘현장 연구’ 앞장 《島嶼文化》로 성과 축적


 “민족문화는 추상적으로 허공에 떠있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화의 총체이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민족적인 것이고, 또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따라서 한 지역의 특수한 삶의 양식은 우리 민족의 보편적 삶의 양식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지난 7월24일~25일 전남 목포대에서 열린 ‘92년 하계 한국역사민속학회 학술심포지엄’에서 이 학회의 전신재 회장(한림대 교수 · 국문학)은 인사말을 통해 위와 같이 밝혔다. ‘호남지역의 민중생활과 의식’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학술대회는 ‘가장 지역적인 것’의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을 새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 춘천 대전 안동 등 전국에서 모여든 2백여 연구자들과 학회 회원들이 참여한 이번 학술심포지엄은 호남 지역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정리 발표한 데 그 의의가 있지만,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소장 이해준 교수 · 사학)에서 주관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도서문화연구소는 ‘가장 지역적인 것’을 탐사하고 연구 보존하는 전국에서 유일한 대학 부설 ‘섬 연구소’이기 때문이다. 지리적 조건을 고려하여 서남해안의 섬과 임해지역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 연구소는 올해로 11년째 ‘철저한 현장조사’를 바탕으로 연구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11년간의 연구 성과는 9집까지 발간된 《島嶼文化》연구집과 2집까지 나온 ‘자료총서’에 축적되어 있다. 목포대 교수 11명과 연구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연구진은 하나의 섬에 구비문학 언어학 역사학 고고학 인류학 민속학 사회학 건축학 등의 ‘현미경’을 들이대고 매년 종합 연구보고서를 작성한다. 여기에서는 방언 민요 문화유적 촌락구조 등 섬과 관련된 모든 문화가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아래 도표 참조).

 현장 연구는 매년 6월말 여름방학에 이루어진다. 우선 지역을 선정하고 각 분야마다 하나의 조사반을 구성하는데, 교수 1명당 학생 3~4명이 보조 연구원으로 참여한다. 올해에는 6월22일부터 26일까지 완도군 소안도를 조사지역으로 잡았다. 이번에도 여느 해와 다름없이 40여명의 연구조사단이 함께 활동을 했다. 조사활동에 참여한 나승만 교수(국문학)는 “섬은 전통문화를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소안도에서는 뱃노래 같은 민요보다 소작쟁의가 활발했던 일제시대의 항일투쟁가들을 채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연구방법이 다양해지는데, 특이한 일은 지원 학생이 크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 연구소의 곽유석 연구원은 “사학과 국문과 인류학과 건축과 등 각 분야 학과 학생들이 참가 신청을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 인원을 최소한으로 줄였다”면서 “현장에서 공부를 한 학생들은 국립민속박물관이나 이 지역 박물관 같은 곳에 취직해 연구 조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서 발간과 세미나 개최 왜에 이 연구소에서 하는 중요한 작업은 민요 설화 풍물등 사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들을 채록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카세트 테이프 8백여개와 비디오 테이프 2백여개가 서남해안 섬들의 문화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80세 이상의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면 우리 문화를 되살릴 길이 ‘원천봉쇄’되기 때문에 채록작업은 전통옷 어업기구 등의 채집작업과 함께 그 어느 것보다 중요시되고 있다.

 

 ‘법정’ 지정 못 받아 연구비 절대 부족

 채집 채록 발굴 실측 고문서해석 면담 등을 통해 이뤄지는 이 연구 조사활동의 성과는 우리 문화계와 행정기관에 골고루 퍼진다. 관련 학술단체에서는 이 조사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척시키고, 행정기관에서는 임해 · 도서 개발의 기초자료로 삼는다는 것이다. 매년 1천2백권씩 발간되는 《島嶼文化》는 이 때문에 발간되자마자 동이 나버리는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목포대 배종무 총장에 따르면, 82년 연구조사를 시작할 때는 젊은 교수들이 주머니 돈을 털어 경비를 충당했다. 연구 성과가 대내외적으로 인정을 받고, 지난해 목포대에서 최우수 연구소로 평가받으면서 연구소의 1년예산은 1천5백만원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조사를 하고 연구집을 발간하면 한푼도 남지 않는다. 국립대학인 목포대에서 최우수 연구소로 평가된 이 연구소가 국고 지원을 받지 못하고 매년 예산을 목말라하는 이유는 교육부로부터 아직까지 ‘법정연구소’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10년 전부터 해마다 교육부에 신청서를 냈으나 번번히 밀려나고 말았다. 정부 방침이 첨단과학을 집중 육성하는 것이어서 인문사회계열인 이 연구소가 자연히 지원의 ‘사각지대’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도서문화연구소는 2000년을 준비하고 있다. 서남해안의 섬연구가 마무리돼가면 그 노하우를 가지고 울릉도 등 전국의 섬을 비교 조사해볼 작정이다. 또 지금은 미국 하와이와 일본 오키나와 등과 책자만 교환하고 있는데, 기회가 닿으면 공동 비교연구도 해볼 참이다.

 도서문화연구소에는 일본인 객원 연구원이 한명 와 있다. 메이지대학 박사과정 여학생 야스다 히로미씨는 3년 계획으로 작년에 와서 연구 작업을 함께하고 있다. 그는 일본 문부성 장학금으로 목포에 왔다. 이에 대해 이 연구소의 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나라 민속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큰돈을 투자하는 일본 정부의 속셈은 뻔하다. 파견 연구원들을 일종의 ‘첨병’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공부하러 오겠다는데 못 오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