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인사권 확보만도 큰 수확”
  • 김동선 편집부국장 ()
  • 승인 1991.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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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元煥 초대 경찰청장

 1945년 미군정하에서 경무국으로 창설되었던 경찰은 한시도 정권의 시녀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었다. 그러나 비록 ‘형식적 독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경찰청 발족으로 경찰은 이제 독립의 첫발을 내디뎠다.

 초대 경찰청장 金元煥 치안총감은 46번째 경찰총수. 46년 경찰역사 속에서 46번째 경찰총수가 된 것이다. 바람 잘 날이 없는 자리여서 그런지 김청장은 질문에 시종 신중한 자세로 답변했다.

● 초대 경찰청장이라는 영예를 얻으셨는데 취임소감부터 듣고 싶습니다.
 지난 46년 동안 경찰의 숙원이었던 경찰청 발족과 더불어 초대청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습니다. 영예라기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 외부에서 보기에는 분명 영예인데, 이 인사를 놓고 언론에서는 TK라인 구축이라는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찰인사는 어디까지나 수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제 앞의 여덟분이 서울시경국장에서 치안본부장으로 승진했었고, 저 자신도 44대 서울시경국장을 지냈고, 경찰청 발족이라는 숙원사업이 해결되면서 수순에 의해 청장으로 온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시경국장을 대과없이 역임하면 경찰총수가 되는 것이 인사관례였습니다.

● 서울지방경찰청장도 TK 출신을 발탁했기 때문에 언론에서 비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능력별로 하다보니까 우연하게도 경북 출신이 발탁된 것 같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서울치안이 전국치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선 수도치안을 제대로 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여부가 참고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경찰역사가 46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기간에 경찰총수가 45명입니다. 1년을 간신히 채우고 물러난 셈입니다. 이는 경찰이 ‘권력의 시녀’였기 때문에 나온 현상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치안본부장 임기는 1년 정도라는 게 경찰사회의 붑문율 같은 것이었습니다. 조직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치안본부장이 2년 이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조직이 침체됩니다. 왜그러냐 하면, 올라와야 될 사람들이 있는데 치안본부장 해경대장 경찰대학장이 2년 이상 계속하면 조직이 완전히 침체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의 시녀니, 뭐 이런 것 하고는 상관없고 조직내에 자생적으로 생긴 하나의 룰입니다.

● 이번 경찰청 독립을 놓고 ‘형식적 독립’이라는 말이 나오는 데 앞으로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우선 우리가 내무부 보좌기관에서 독자적 집행기관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예산이라든지 인사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겁니다. 일부에서는 수사권 독립도 안되고 인사도 내무부장관이 경무관급 인사를 다 하는데 형식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일시에 모든 걸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조직의 발전을 꾀해야 한다고 봅니다.

● 그런데 내용적으로는 치안은 내무부에, 작전은 군에, 경호 경비는 청와대 경호실에, 수사는 검찰에 묶여 지휘 감독을 받는 처지에 있어 과거와 달라진 게 거의 없지 않습니까?
 과거에 외압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제가 지난 1년2개월 동안 서울시경국장 생활을 했습니다만, 그 와중에서 검찰과 관계된 일도 있었고 안기부와 관계된 경우도 있었고 또 경호관계도 있었지만, 누구로부터도 외압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예를들면 강경대군 노제 때, 서울시청에서 노제를 지내겠다 해서 안 된다니까 그러면 양보해서 서울역에서 노제를 지내겠다고 합디다. 그때 서울역에서 1시간 정도 하겠다는데 봐줄 수도 있는 것 아니냐, 또 일부에서는 안 된다, 이렇게 갑론을박이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시경국장에게 허용해라 또는 하지 말라, 이런주장 못 했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시경국장이 판단해서 결정할 문제입니다. 서울역에서 하면 오히려 서울시청에서 노제를 치르는 것보다 더 교통혼잡을 초래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판단은 시경국장이 했습니다. 그래서 공덕동로터리에서 노제를 지내라, 그것도 안 되면 고수부지나 여의도광장에서 하라고 제가 통보했습니다. 경찰이 외부로부터 큰 간섭을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 이런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환갑 나이의 경찰이, 자식 나이의 젊은 검사가 수사기록을 일일이 검토하며 호통칠 때에는 당장 사표 쓰고 싶은 심정이라는 얘기 말입니다. 혹시 이런 경험 없습니까?
 수사를 좀 하긴 했습니다만 저는 그런 경험을 못했습니다. 일부에서 그런 얘기가 없지 않습니다. 이것은 형사소송법에서 수사의 주체가 검사이기 때문에 법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수사의 주체는 검사고 보조기관이 경찰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검사가 아무런 이유없이 기각시킨다든지 하는 일은 없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질 때는 우리나라 언론이 가만 있겠습니까.

● 선진국처럼 경찰이 검찰과 함께 수사권을 갖거나, 아니면 수사권은 경찰이 전적으로 행사하고 검찰은 피의자 공소권만을 갖는 그야말로 경찰의 독립시대는 언제나 실현될 수 있을까요?
 그것을 우리가 아주 희망적으로 생각합니다. 외국의 예를 보면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런 방법으로 운용이 되고 있고, 가까운 일본에서도 그런 식으로 합니다. 그 문제는 우리가 청으로 독립하면서 연구를 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경찰도 자질 향상에 힘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언제라도 딱 꼬집어 얘기하기는 곤란한 문제입니다.

● 그런데 경찰이 수사권을 확보하면 ‘인권 사각지대’를 양산할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있습니다. 예컨대 ‘시기상조론’이 있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여러 가지를 종합해서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문제이지 당장에 언제 해야 된다는 식으로 논의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경찰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나아가서 경찰대 출신이 요직에 배치가 되고, 사법고시 출신들을 특채해서 서울의 각 경찰서에만 이라도 수사과장이나 형사과장 정도는 이들이 맡는, 뭐 이런 식으로 우리 스스로 많이 정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체 교육도 많이 해서 자질이 향상되어야 그런 얘기 할 수 있는 겁니다.

● 역으로 해석하면 46년 동안 다른 부문은 자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경찰은 자질에 문제가 있으니까 자질향상 이후에 수사권을 확보하는 식으로 순서를 잡는다는 얘기입니까?
 아니죠. 수사권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우리가 발전적으로 검토해나가야지 당장에 어떤 걸 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렵고, 내부적으로도 우리가 갖춰야 할 것은 궤도에 올려놔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 수사권 독립은 경찰발전의 필수적 통과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그렇죠. 앞으로 언젠가 해야 될 일이죠.

● 경찰에서 좀 앞당기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경찰이 노력한다고 해서 지금 당장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점진적으로 모든 것을 갖춰나가면서 추진해야 합니다.

● 범죄와의 전쟁은 어떻게 됐습니까?
 상당히 줄기를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강력범의 발생률이 12.4% 감소되고 검거율은 9.4% 향상됐습니다. 그리고 잘 아시겠지만 7월 이후에 떼강도 전문강도단이 격감하고 있습니다. 조직폭력배에게 맞았다는 말은 이제 없습니다. 거의 소탕됐습니다. 그리고 거물급 20명을 수배해서 다 잡았습니다. 앞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계속해서 선포 1주년이 되는 10월13일에 가면 엄청난 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바캉스철이라 빈집이 많고 노출이 심해서 성범죄가 많습니다. 그래서 방범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경우 주간에는 20개 중대, 야간에는 30개 중대가 골목골목을 누비고 있고 순찰차도 3부제로 계속 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치안상태는 매우 좋습니다.

● 현행 당·비번제가 2부제죠. 제가 일선 경찰들에게 들어보니까 2부제는 인간의 한계를 무시한 처사라고 불평하던데요
 2부제도 못 했을 때를 생각해야 합니다. 항상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해야지, 앞으로는 3부제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서울, 그리고 6개 도시라도 3부제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금년도 인력보충 계획도 상당히 확대해서 실시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멀지 않은 장래에 3부제를 실시할 겁니다.

● 경찰청 발족과 함께 경찰 윤리헌장을 발표했지요. 친절한 경찰, 의로운 경찰, 공정한 경찰, 근면한 경찰, 깨끗한 경찰로 되어 있던데, 이대로만 되면 경찰은 정말 ‘민중의 지팡이’로 손색이 없을텐데요.
 그렇습니다. 5개항의 윤리헌장을 발표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는 화합과 단결 속에 항상 규범을 지키며 검소하게 생활하는 깨끗한 경찰이다”라는 항목이 중요합니다.

● 깨끗한 경찰을 강조하셨는데 지금과 같은 처우나 근무조건, 내부환경이 개선 안 된 채 가능하겠습니까?
 처우는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야지 일시에 그렇게 할 수 없는 겁니다. 처우라 하는 것은 이게 그렇습니다. 각론적으로 보면 경제기획원이나 총무처도 다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국가공무원제도 운영이라는 총론에 갖다놓으면, 경찰 올려주면 군 올려줘야 하고 교도관 올려주고 뭐 올려주고 뭐 올려주고. 그래서 지난해 경감 이하 7만원 올려주는 데 엄청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 재임기간에 가장 역점을 둘 사업은 어떤 것입니까?
 우선 경찰의 존립목적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 두번째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있습니다. 그것을 시국치안이라고 하기도 하고 민생치안이라 하기도 합니다. 우리 관서에 써놨습니다만 봉사와 질서, 이 두가지입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민생치안쪽에 더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청이 발족하면서, 과거에는 1개국이 관장하던 것을 이제는 7개국 중 3개국이 민생치안과 관계된 부서입니다.

● 지난 5월시위 때 하루 몇시간이나 주무셨습니까?
 4월26일 강경대군사건이 발생해서 6월29일 명동성당시위가 끝났습니다. 그게 63일입니다. 그야말로 밥맛이 없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지금 제 몸무게가 약 5㎏ 줄었습니다. 결코 강경대군사건을 잘했다는 게 아닙니다. 조직을 관리하다보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현장에 나가보니까 학생들의 주장이나 언론의 비판이 다 맞는 얘기더라 이겁니다. 그래서 빨리 진상 밝히는 것만이 경찰이 사는 것이다. 돌아와서 관계부장과 과장을 불러 내일 아침 10시까지 진상을 밝히라고 지시했습니다. 새벽 4시에 네사람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새벽 6시에 쇠파이프하고 각목 2개씩을 찾았습니다. 6시30분에 기자회견을 갖고 완전히 진상을 밝혔습니다. 모든 국민에게 알렸고 국회에 가서도 야당의원들조차 저에게 시비하지 않았습니다. 이 기간을 거치면서 엄청난 시련과 고통도 받았지만, 시위문화의 큰 물줄기를 잡았다는 것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어떤 시민도 화염병을 싫어하고 동시에 최루가스도 아주 싫어합니다. 그래서 화염병도 없고 최루탄도 없는 그런 시위문화를…, 그래서 최루탄 사용도 가능하면 줄이라고 지시해놓고 있습니다.

● 그러면 올 가을에는 화염병도 없고 최루탄도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십니까?
 그렇치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물줄기를 잡아놨으니까 앞으로는 적어지는 방향으로 갈 겁니다. 서울시민들 참 무섭고 현명한 분들입니다. 예를 들어 김귀정양 장례식 때, 성균관대에서 대학로 종로 을지로 퇴계로 무학여고, 그런 식으로 1시에 시작해서 밤 12시30분에 끝났습니다. 이때 도로가 다 마비됐는데 서울시민들이 다 참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제가 종로에서 장을병 성균관대 총장하고 담판 안 했습니까. 그날 장례행렬이 갈 동안 돌 화염병 하나 없었습니다. 최루탄도 하나 없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시민들의 격려전화가 쏟아졌습니다. 정말 당신 잘했다고, 굉장히 많이 왔습니다. 그 정도로 시민의식이 성숙되어 있습니다. 그 대신 최루탄 잘못 쏴놓으면 밤새도록 시경국장실에 전화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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