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세 다리, 물에 빠진 민생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2.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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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부실공사, 정부-방치’ 부조리 여전 … 교통·생필품난, 국민만 피해



 91년 3월 경기도 하남시 팔당대교, 92년 7월 30일 경남 남해 창선대교, 그리고 지난 7월31일 서울 개화동과 고양시 사이의 신행주대교, 완공한지 얼마 되지 않거나 완공을 눈앞에  둔 다리들이 잇따라 붕괴되었다.

 신행주대교가 무너진 지 5일째인 지난 4일 벽산건설은 각 일간지에 사과광고를 게재했다. 내용은 신행주대교의 붕괴사고로 서울시민과 고양 · 일산지역 주민에게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벽산건설의 사과는 진실성이 없어보인다. 광고문의 대부분은 “콘크리트 사장재 공법이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받는 것”이며 “심혈을 기울여 건실한 시공에 주력해왔다”는 회사측 변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신행주대교 붕괴로 일산과 고양 등 신도시 입주 주민은 극심한 교통난을 겪게 됐다. 건설부 도로건설과에 따르면 정부는 이 지역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 신행주대교를 편도 3차선으로 만든 뒤 기존의 행주대교까지 확장할 예정이었다. 행주대교(왕복 2차선)를 통과하는 자동차의 평균 속도는 도심의 교통체증 지역과 비슷한 수준인 시속 10km. 통과차량은 하루 평균 1만2천8백대에 이른다. 기존의 행주대교보다 3배의 차량을 소화시킬 수 있어 신행주대교의 완공에 기대를 걸었던 이곳 주민은 벌써부터 최악의 교통난을 상상하며 크게 실망하고 있다.

 창선대교 붕괴사고를 만난 경남 남해 창선도 주민도 마찬가지이다. 이 지역 주민은 다리가 끊어져 당장 육지와의 왕래에 불편을 겪고 있으며, 그 여파로 벌써부터 생활필수품 조달이 어려운 실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다리에 설치했던 전화 케이블이 끊어져 외부와의 통신도 두절된 상태이다. 지난 2일 새벽 육지로 가기위해 바닷가로 나온 50대의 한주민은 “30분이면 들어가던 곳이 2시간 이상 걸리게 됐다. 앞날이 걱정이다”라고 푸념했다. 이 주민은 또한 “바로 복구된다지만 정부의 말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완공을 불과 5개월 앞둔 신행주대교가 무너진 것은 지난 7월 31일 오후 6시 59분경이다. 사고는 공사중인 다리 중간 구간의 상판이 밑으로 푹 꺼지면서 일어났다. 강북쪽 상판이 도미노식으로 밀리자 힘을 견디지 못한 교각 10개가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이 과정에서 콘크리트 사장(교각 대신 상판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설치하는 구조물)에 의해 상판과 연결될 30m 높이의 주탑 한개가 젓가락이 부러지듯 반토막이 났다. 인부 16명이 모두 퇴근한 후여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번 사고로 회사측은 약 50억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문제는 한 건설회사의 피해액이 아니다. 국가적 손실과 시민의 안전이 걸린 대형사고가 왜 계속해서 일어나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지목되는 부분은 시공 회사의 부실공사이다. 신행주대교의 경우 벽산측은 “부실공사였더라면 상판을 다리 가운데로 밀어넣는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라며 사고 원인은 “이미 설치해놨거나 상판 위에 올려놨던 1백17t짜리 콘크리트 사장 8개와 각종 장비의 무게를 교각이 견디지 못한 탓”으로 돌린다. 특히 무너진 교각에 대해서는 “완성한 지 4년이 흘렀지만 그동안 아무런 문제도 발생한 적이 없다”며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사고 직후 “장마철 내내 돈만 퍼붓는 공사를 했다”고 밝힌 벽산측 한 직원의 말에서 다리 공사가 부실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회사측은 다리의 완공 날짜를 일산 신도시 입주시기에 맞추기 위해 공기단축을 서둘렀다가 다시 12월로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신도시 아파트 건설 때처럼 공기에 쫓겨 부실공사를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벽산측이 다리 공사에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고 밝힌 콘크리트 사장 공법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잘 쓰지 않는 공법으로 알려져 있다. 시공경험도 없는 신공법을 무리하게 공사에 적용해 결함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올 만하다.

 지난해 3월 붕괴한 경기도 하남시 팔당대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의 세금만 날린 채 공사가 중단돼 방치되고 있던 팔당대교의 경우, 지난 4월 공법을 달리해 공사를 재개했으나 교각에 균열이 생겨 또다시 작업을 중단했다. 부실공사의 증거가 곳곳에서 나타난 것이다. 다리가 붕괴될 당시 공사 진척률은 60% 이상이었으며 시공업체인 유원건설은 이사고로 33억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경기도 공영개발사업단 한강개발과 金範眞씨는 “대한토목학회에 의뢰한 안전진단 결과가 오는 8월 말경에나 나올 예정”이라며 “부실공사 여부는 아직 말할 수 없다”고 밝힌다.

 최근 잇단 대형사고가 보여준 또 하나의 문제점은 국민의 비싼 세금을 쏟아붓는 대형공사에 대한 정부의 감리감독과 안전점검이 소홀하다는 것이다. 신행주대교 붕괴사고의 경우 지난 5월 서울지방국토관리청에서 안전점검을 실시했지만 당시 아무런 결함도 찾아내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벽산의 한 관계자는 “교량 남쪽 주탑에 연결되는 가교 부분만 점검했을 뿐 전체적인 검사는 실시하지 않았다”고 밝혀 당시의 안전점검이 형식적으로 이뤄진 듯한 인상을 주었다. 감독관청인 건설부는 사고 발생 다음날 으레 그래왔듯이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로 조사단을 구성해 원인 조사에 나섰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경남 남해 창선대교 붕괴사고는 안전관리상의 문제점을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완공된 지 불과 12년 만에 내려앉은 이 다리는 지난 6월 이곳 주민들이 붕괴 위험성을 발견해 당국의 적절한 조처를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관할 기관인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다리가 무너져내린 30일에는 徐福伊씨(47)가 떨어져 죽고,  시외버스가 추락할 뻔 하는 등 대형참사의 문턱까지 갔었다.

 토목공사에는 항상 전문성이 따른다. 그러나 정부가 벌이는 대형 토목공사는 ‘민생 우선’이라는 상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제 정부는 잊어버린 상식을 되찾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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