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10월 28일 세상은 끝난다”
  • 김훈 편집위원 오민수기자 ()
  • 승인 1992.08.2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말 증후군




세계종말이 임박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지하교회에 모여 가슴을 쥐어뜯고 이마를 짓찧으며 땅위의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죄악들을 회개하고 있다. 슬프게 울부직는 청소년들은 학교와 가정이 제시하는 모든 가치를 내동댕이치고 ‘순교’를 절규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 어두운 지하에서 슬프고 긴 울음을 울고 있다. 그 음향은 온 세상에 들리되 아무도 그 내용을 듣지는 않는다. 세상을 경유하지 않고‘아버지께로 直送’되는 그 핫라인의 울음은 이 세계 속으로 편입되지 않는다.

이 울음은 세계의 변방을 겉돌고 헤멘다. 기력이 쇠진하는 새벽에 그들은 메마른 목소리로 ‘아버지’를 절규하고, 신음하고 경련한다. 뭍으로 건져올려져 ‘종말’을 기다리는 물고기처럼 그들은 뒤채이고 퍼덕거린다. “우리 찬양합시다”라고 그들 중의 한명이 쓰러져 흐느끼는 ‘죄인’들의 어깨를 부축하면, ‘죄인’들은 울음을 거두고 일어나 앉아 두 팔을 벌려 허공 속에 흔들며 임박한 주의 재림과 구원을 격렬하게 찬양한다. 찬양의 시간은 降神의 순간이다. 그들의 얼굴에서 죄의 어두움이 걷히고 그들은 구원을 약속받은 자의 희열을 절규한다. 그 至福의 믿음에 따르면, 주께서 공중에 재림하는 그 순간에 오직 惡으로써 지배원리를 삼고 헛되이도 흘러온 이 죄많은 문명과 역사의 시간은 물리적으로 종결되고, 준비된 영혼과 육신들은 주의 부축과 들어올림(휴거?携擧)의 은총을 입어, 순결한 신부의 몸으로 새롭게 태어나 신랑이신 주의 품안에서 영생한다. 그 두렵고도 기쁜 날은 금년 10월 28일이다. 입동을 며칠 앞두고 첫서리 내릴 무렵의 수요일이다. 이 절망과 환희의 병렬적 분출은 중세기 지하토굴속 카타콤 교회의 내부풍경이 아니라, 포스트모던 신학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1992년 한국 기독교 교회의 한 중요한 풍경이다.

시한부 종말론은 역사와 문명을 이루는 시간의 물리적 종결을 예언하고 신앙한다. 그 멸망과 부활의 ‘때’는 많은 참언들이 가리키는 묵시록적인 어느 ‘때’가 아니라, 인간의 달력과 시계 위에 현실적으로 찾아오는 어느날 몇시 몇분이다. 인간에게 경험되지 않은 낯선 시간의 입자들이 모여서 일련의 지속을 이루며 흘러가고, 인간이 생 혹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그 지속 위에 실려서 생성을 거듭하는 것이 아니라 종말론 속의 시간은 모래시계 속의 시간의 알맹이처럼 악한 역사의 개미허리를 흘러내린 후 아무런 의미도 건설하지 못하고 스스로 거덜나서 파멸한다. 시한부 종말론은 시간의 저러한 파멸과 멸절된 문명의 허공 위에 찬란히 나타나는 주의 재림과 준비된 인간의 승천을 믿는다. 그 신앙인들의 지상에서의 삶은 오직 파멸과 부활을 기다리는 준비 과정으로서만 의미가 있다.

1992년을 종말 시한으로 삼는 종말신앙을 지난 86년 미국인 선교사 펄시 콜레에 의하여 한국에 전파되었다. 펄시 콜레는 86년 5월 중순 한국 예루살렘교회 이초석 목사의 초청으로 방한하여 36일간 한국에 머물면서 시한부 종말론의 영적 선풍을 일으켰다. 펄시 콜레의 천국신비체험기인 《100가지 천국비밀》등 종말론 참언서들이 그 무렵 이장림 목사의 번역으로 출판되어 50만부 이상이 삽시간에 팔렸다. 펄시 콜레는 자신을 ‘현대의 엘리야’라고 불렀다. ‘엘리야’의 방한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뛰어난 웅변가였고, 능숙한 심령술사였다. 그는 묵시록적 상징이나 예언들을 현실 속에서 실현되는 것인가에 관한 인간들의 영원한 안타까움 속으로 그의 설교는 파고들었다. 그가 전파한 ‘휴거’는 사후의 영혼 부활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에 이루어지는 영혼과 육신의 동시 승천이었다. 펄시 콜레가 일으킨 종말과 휴거의 영적 선풍을 교회제도 속에서 조직화한 사람은 이장림 목사였다. 그는 “다가올 미래에 대비하라”는 말을 줄여서 ‘다미’라는 로고를 만들었고, 자신이 이끄는 교회를 ‘다미 선교회’라고 이름지었다.

열성 신도 약 2만명

중동에서 미국과 이라크 간의 전쟁이 터지자 시한부 종말론은 더욱 큰 현실적 예언의 능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그 전쟁이 성서가 예언하는 종말의 상황과 닮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서가 뭐라 하든 그 전쟁은 매우 훌륭한 종말론적 징후였다. 다미 선교회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본부를 두고 전국 각지와 해외에 모두 50여개의 지부 교회를 거느린 큰 교회로 성장했다.

기독교 정통 교단이나 정부 당국에서 공식적으로 조사한 결과는 아직 없지만 시한부 종말론을 신앙하는 교회는 ‘다미’ 계열 이외에도 범 다미 계열과 독립된 시한부 종말론 교회들을 합쳐서 전국에 2백 50여개소인 것으로 추정된다. (종교문제연구소 탁명환 소장 집계). 10만명 정도가 이 종말신앙의 영향권 속에 있고 그중 2만명 정도가 열성 신도이며, 종말신앙에 따라 그 ‘두렵고 기쁜날’을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하여 지상에서의 삶과 미래를 포기한 사람들은 5천명 정도인 것으로 종교문제연구소는 집계하고 있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부산의 주한열군(18)은 제대로 학교를 다녔으면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이다. 아버지 주우성씨(45)는 오랫동안 영업용 택시를 운정하다가 퇴직금이 쌓이자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택시로 바꾸었다. 두칸짜리 사글세방의 한칸이 주한열군의 공부방이다. 이 좁고 어두운 방 속에서 주한열군은 그야말로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중학교시절 주한열군의 성적은 전교에서 5등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그의 책상 밑에는 학년이 바뀔 때마다 받아온 우등상장 개근상장 선행표창장 수학경시대회최우수상장 들이 쓰레기처럼 널려있다.

언제부터인가 부모도 모르게 종말론 교회인 부산성화선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주한열군은 작년부터는 아예 학업과 가정을 포기하고 교회에서 살았다. 열흘씩 철야금식기도를 하고 나서 어쩌다가 집에 들어올 때는 피골이 상접하고 몸을 가누지 못했다. 주한열군은 지난 7월 초 가출해서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어머니 전용해씨(58)에 따르면 주한열군은 “학교가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가야 살 길이 있다. 이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라며 가출을 통고하고 집을 뛰쳐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아버지 주우성씨는 아들이 숨어있을만한 곳을 뒤지고 다니다가 이제는 지치고 더 이상 가볼 곳도 없어서 단념한 상태다.

10대들 ‘순교자’되려고 가출

주한열군은 가출하면서 교회에다 <92 북한 순교자 예치엘>이라는 결의문을 유서처럼 남겨놓았다. 북한에 가서 휴거의 진리를 전파하다가 죽겠다는 결의였다. 주군과 함께 가출한 ‘순교자’들은 ‘아프리카 순교자’ ‘남한 순교자’등 7~8명이다. 그들이 작성한 순교자 명단에는 주로 10대들로 20여명이 선발되어 있었다. 어머니 전용해씨는 “그토록 모범적이고 성실한 녀석의 마음 속에 부모와 학교를 싹 내버릴 만큼 무서운 절망감이 들어앉아 있었고, 부모된 자들이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몸서리가 쳐진다”고 말했다.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부산의 배모양은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이 교회에서 먹고 자고 살다가 부모에게 이끌려나와 강제로 격리되었다. 배양은 유복하게 자랐다. 콩쿠르에서 늘 입선하는 피아노 솜씨로 교회와 결혼식장의 피아노 반주를 도맡아 주위의 귀여움을 받았고, 첫사랑이 시작되려 하고 있음을 부모들은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던 배양이 어느날 부산 지하철 객차 안에서 전자악기를 요란하게 연주하며 ‘휴거’를 전파하다가 열무원 사무실로 끌려갔다. 부모들은 이때서야 딸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았다고 한다. 설득의 말은 애초부터 먹혀들지 않았다. “어머니, 저를 핍박하시는군요. 믿음은 핍박 속에서 더 굳어지는 것입니다”라고 배양은 울부짖는 어머니에게 대답했다고 한다.

부산 지역에서의 종말론 가출자들은 드러난 사례만도 30여건이 넘었다. 주로 재학중인 청소년들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귀가했지만 대부분은 휴거일이 가까와 올수록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들고 있다. 부모들은 종말론 가출자들의 명단을 작성해 서로 정보를 교환 하며 종적을 추적하는 한편, 30여명이 연명해 부산 금정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에 나선 금정경찰서는 불법감금, 폭행, 사기, 약취유인 등 다방면에 걸쳐 교회주변을 검색했다. 그러나 아무런 혐의도 성립되지 않았다. 참고인으로 불려온 가출 학생들은 모두 자유의사에 따른 신앙행위이며 교회로부터 의사에 반한 감금은 당한 일이 없다고 진술했다. 형사대는 제주도까지 이들을 추적해 은신처를 확인했다. 그러나 자유로운 신앙행위라는 외양을 유지하고 있는 한 강제로 끌어다 부모에게 데려다줄 수는 없었다고 한다.

부산 금정경찰서 조사계장 김봉규 경감은 “심지어 그들의 언동에 북한 운운하는 대목이 있어서 대공용의점까지 수사했으나 모두 무혐의로 종결되었다. 그들은 경찰이 조사에 착수한 사실 자체를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핍박이라고 믿고 있었다. 학교나 가정이나 사회가 제시하는 가치들을 그들은 철저하게 불신하고 있었다. 경찰이 형법을 앞세워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모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주한열군의 아버지 주우성씨는 “아들을 교회에서 끌어내느라고 신도들과 엉켜 몸싸움을 벌일 때 출동한 경찰은 종교의 자유라며 팔짱끼고 보고만 있었다. 경찰은 왜 인륜의 편에 서지 못하는가”라며 흥분했다.

다미 선교회 전남 영암지부에는 목사도 전도사도 없다. 신도는 30명,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거나 20세 전후 청년이다. 다미 선교회 서울본부에서 보내온 이장림씨의 설교 VTR테이프를 보며 예배를 본다.

한때 이 교회에는 전도사 박홍순씨(33)와 ‘성령을 받은’집사 임원석씨(49)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 6월 5일 안찰기도를 받은 정찬봉씨(45)가 이틀 만에 죽어나간 사건이 발생했다. 죽은 정씨는 교회에 두번째 참석했다가 변을 당했다. 다미 선교회측은 “지병때문”이라고 주장했으나, 부검 결과 정씨의 사인은 장파열이었다. 결국 경찰은 박씨와 임씨를 폭행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임씨가 젊은 신도들에게 정씨의 사지를 붙잡게 하고 안찰이라는 명목으로 “귀신 나가라”면서 온몸을 구타했다고 한다.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는 정씨에게 “귀신이 나가는 과정”이라며 ‘안찰’을 계속해 결국 정씨를 숨지게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다미선교회측에게는 ‘시련’일 뿐이다. 전도사와 집사는 갔지만, 남아있는 신도 30여명은 10월 28일 휴거 준비에 여념이 없다.

전라남도 구례군 방주교회는 박성태 목사를 중심으로 40여명의 신도들이 교회 안에서 함께 먹고 자며 휴거 날을 기다린다. 박목사는 두달 전까지만 해도 같은 지역 예수교장로회 토지교회 목사였지만, 40여명의 신도를 이끌고 빠져나왔다. 박목사는 “종말을 알리는 신의 계시를 받아 방주교회를 세운 것”이라고 말한다.

시한부 종말론의 신앙형태는 이처럼 반 사회적이고 반 문명적인 측면이 있다. 그들의 신앙은 성서나 교리에 의존한다기보다는 신으로부터의 ‘직통 계시’라는 개인적 신비체험에 의존한다. 세상이 그들을 걱정할 때 그들은 오히려 구원받지 못하는 이 세상을 걱정하고 있다. ‘종말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절망과 욕망의 징후들이 들끓는 이 현실 속에서 시한부 종말신앙은 그들이 못박아 놓은 10월 28일을 향하면서 더욱 가열찬 통곡과 찬양을 토해내게 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