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청소’가 빚는 유고판 ‘출애급기’
  • 부다페스트 김성진 통신원 ()
  • 승인 1992.08.2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르비아 점령지서 異民族 추방?학살



지난 8월3일 6백명의 고아가 헝가리로 들어왔다. 그들의 부모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전장에서 죽거나 행방불명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처음 간 곳은 크로아티아 국경에서 약 4km떨어진 나지아타드라는 조그만 도시였다. 전에 육군병영이 있던 이곳은 이제 헝가리에서 제일 큰 난민수용소로 변했다. 수용할 수 있는 인원만 5천명이다. 여기에 수용된 난민은 모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출신이며 그중에서도 부녀자와 어린이가 80%를 차지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군부대가 남겨두고 간 군사시설을 놀이터 삼아 철없이 뛰어놀고 있고 방안에 있는 부녀자들인 빛바랜 사진을 꺼내 보며 마냥 눈물만 글썽인다. 사진의 주인공은 전쟁에서 죽어간 그들의 남편 아니면 자식이다.

이들의 고향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인구는 모두 4백40만명. 보스니아 인구의 31%를 차지하는 세르비아인들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영토의 65%를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크로아티아인들(인구의 17%)은 30%를 장악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그렇다면 전체 인구의 39%를 차지하고 있는 이슬람 교도가 차지하고 있는 땅은 산술적으로 5%밖에 되지 않는다. 이즈베고비치 대통령이 이끄는 이슬람 정권의 통치력이 수도인 사라예보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세르비아나 크로아티아가 장악한 지역에 있는 이슬람 교도는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다. 헝가리에 도착한 6백명의 고아뿐만 아니라 최근 늘고있는 난민의 대부분이 이슬람 교도라는 사실은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측이 이른바 ‘인종 청조’를 의도적으로 자행하고 있다는 유력한 증빙자료이다.

지난해까지 수세에 몰렸던 크로아티아는 최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태를 계기로 공세로 돌아섰다. 보스니아의 크로아티아인들은 본국의 지원을 받아 거주지인 그루데와 보스타르를 포함한 크로아티아인 거주지뿐 아니라 주변 이슬람 지역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루데의 요조 마리에 시장은 최근 이같은 인종청소 작업을 실제 인정하는 것을 골자로한 평화안을 내놓았다. 보스니아를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이슬람의 민족 단위로 구성하는 세 개의 자치주로 나누어 연방정보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스위수의 주(CANTON) 개념을 근간으로 한 이 평화안은 유럽공동체가 주도하는 헤이그 평화회의(의장 영국의 캐링턴경)에서 깊이있게 논의되었으나 이슬람측의 반대로 진전되지 않고 있다. 이슬람측은 일단 3개의 민족자치주가 형성될 경우 세르비아나 크로아티아 자치주는 사라예보의 연방정부보다는 베오그라드나 자그레브의 본국 정부와 더 깊은 관련을 맺을 것이며 결국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3중고에 시달리는 전쟁지역 난민

유고 난민을 양상하는 장본인은 물론 세르비아측이다. 세르비아는 초기의 전투목적을 영토확대로 잡았으며 어느 정도 이 목적이 달성되자 본격적인 ‘인종 청소’에 나섰다. 유고 담당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인 오가타 사타코 여사는 세르비아측이 세르비아 이외의 각 민족을 새로 획득한 영토로부터 추방하고 있으며 전적으로 비무장인 민간인에 대한 전투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엔 난만고등판무관실은 유고내전이 계속된 지난 1년간 발생한 난민이 모두 2백2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옛 연방지역 인구를 감안하면 10명에 1명꼴은 난민인 셈이다. 이중 40만명은 옛 연방지역을 벗어나 그 절반이 독일에 수용되어 있고 나머지는 헝사리 오스트리아 스웨덴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이들은 전쟁지역인 보스니아나 크로아티아에 남아 있는 1백80만명의 다른 난민에 비하면 행복한 셈이다. 연방지역에 잔류한 난민들은 구호품마저 제대로 받지 못해 전쟁의 공포 ? 식량난 ? 전염병이라는 3중고와 싸우고 있다. 지난해 유고 담당 고등판무관실은 난민을 구호하기위해 모두 1억4천만달러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호소했지만 지금까지 각국이 공여한 자금은 1억7백만 달러에 그치고 있다.

모두 60만명의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크로아티아는 계속 몰려드는 난민을 감당 못해 보스니아쪽 국경을 폐쇄했지만 필사적으로 국경을 넘으려는 난민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

6만명의 난민들이 수용되어 있는 헝가리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특히 헝가리는 루마니아(2백만) 우크라이나(20만) 슬로바키아(60만) 세르비아의 보이보디나 자치주(45만) 크로아티아(2만5천)에 사는 소수 헝가리 민족이 본국으로 돌아오려 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례적으로 20만명의 난민을 받아들인 독일과 달리 다른 서유럽국가는 자국 이익을 앞세워 난민 수용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아예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 난민캠프 건설자금을 제공하겠다며 선수를 치고 나왔고 프랑스와 영국은 국내사정을 내세워 몸조심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난민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유고내전을 어떻게 종식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유고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마지박 카드는 서방측의 군사개입이다. 그러나 온갖 불협화음을 내온 서방 각국은 그 군사개입의 시기마저 놓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유고사태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부다페스트의 유고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견해는 비관적이다. 세르비아는 그들이 주장해온 영토에 대한 공격과 ‘인종 청소’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더 많은 사상자와 더 많은 난민이 생겨날 것이다. 세르비아는 마침내 그들이 목표로 했던 ‘대세르비아민족주의’를 성취하고 세르비아인의 국가를 세울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세르비아는 세계로부터 외면당하고 점점 더 가난하게 될 것이다. 상호의존의 세계에서 고립은 멸망과 다름없다. 세르비아인들에게 살육당하고 쫓겨난 난민들은 유럽에 흩어져 살면서 새로운 복수를 꿈꾸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전쟁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 그 열쇠는 강대국들이 자국중심주의를 얼마나 극복하는지에 달려 있다. 유엔의 긴급지원이 없는 한 올 겨울에 적어도 50만명의 난민이 얼어죽을 것으로 예상한다.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포용하지 않는 한 지구촌의 평화는 언제까지고 허구로 남을 뿐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