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사 반성 않고 있다”
  • 오가와 하루히사 (일본 도쿄대 교양학부 교수 · 동아 ()
  • 승인 1991.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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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수 8 · 15 특별기고/ ‘한 · 일 21세기위원회 보고서’ 분석 · 비판

 한 · 일 21세기위원회 보고서란 88년 2월 노태우 대통령과 다케시다 당시 일본총리의 합의 아래 21세기를 향한 두 나라의 관계 정립과 전망을 주제로 작성된 것이다. 이 위원회는 한국측에서 高柄翊 전 서울대 총장을 수석으로 姜永奎 金玉烈 文仁龜 鄭壽昌 趙?夾 崔? 崔亨燮韓昇洲씨, 일본측에서 스노베 료조 전 주한대사를 좌장으로 ?田健三緖方貞子 佐伯喜一 杉浦敏介 方賀徹 宮崎勇 向坊隆 山本正 등 학계 · 관계 · 재계 · 언론계 인사 각 9명씩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이 위원들은 90년 12월까지 다섯 차례의 합동위원회를 갖고 지난 1월 최종보고서를 양국 정부에 제출했다.

 전문이 6만여자에 이르는 방대한 이 보고서는 서론에 이어, 2장 ‘과거에 관련된 제문제’ 3장 ‘새로운 시대의 한일정치 · 안전보장관계’ 4장 ‘21세기를 향한 한일경제관계의 과제와 전망’ 5장 ‘21세기의 한일과학 기술협력의 전망’ 6장 ‘한일교류확충을 위한 제방책’ 종장 ‘21세기의 새로운 한일협력관계 구축을 지향하며’로 구성돼 있다.

 올해 1월8일, 일본의 신문은 日 · 韓 21세기위원회라는 곳에서 최종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가이후 총리 방한 전날이었다. 〈아사히신문〉은 ‘역사교육의 재고를 요구하다’라는 큰 표제를 내세우고 아울러 조금 작게 ‘과거의 극복도 요청’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마지막 제목에 위화감을 느낀 필자는 급히 전문을 입수해서 내용을 음미해봤다. 안보 · 경제 · 과학기술협력 문제가 전체의 4할 가까이 차지한 이 보고서는 다음 세 가지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첫 번째 특징은 이 보고서의 논리가 한일협력 필요론에서 출발한다는 점, 바꿔 말하면 경제 논리가 전체를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일 · 한 양국의 협력이 필요한데 양국간의 골이 깊어 그것이 장애가 된다. 그 골을 메우기 위해 역사교육이나 제 문제의 해결이 필요하다’라는 것이 보고서의 논리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왜 지금 한일 양국의 협력이 필요한가,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다. 협력의 필요성이 자명하다는 이유로 이 보고서는 두 가지를 들고 있다. 하나는 ‘미 · 소 냉전구조의 종말과 사회주의국가 체제의 극적 변혁’을 뜻한 ‘국제환경의 극적인 변화’이다. 또 하나는 ‘아시아 · 태평양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이유에 의거한 양국 경제협력의 분야와 협력의 방법은 대략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일본 경제력은 조선 지배 위에 쌓인 것
 “양국은 아시아 · 태평양지역의 공업화와 경제발전에 지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또, 양국은 북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개발협력을 위해서 협력해야 한다. 양국은 선진국과 신흥공업국으로서의 각자의 조건이나 경험을 살려 역할을 분담해서 협력해야 한다. 일본은 기술 · 금융(자본) · 수송면에서, 한국은 인적 · 물적인 면에서.”

 이 보고서는 또 지금이 양국 ‘공통’의 이익을 증진시킬 호기라고 규정했다. 이 두 번째 규정의 특징은 경제 논리가 주도하고 있는 첫 번째 특징에서 파생된 현실긍정의 ‘역사감각’이다. 이 보고서는 일본이 아시아에서 경제분야의 지도적 입장을 확보한 것과 한국이 아시아 신흥경제체제(NIES) 중에서 주도적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양국이 각각의 조건을 살려서 파트너관계를 긴밀히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스노베씨가 지적했다고 하는 “과거를 잊지 않고, 현재의 현실에 입각했을 때 비로소 먹구름이 없는 장래를 향한 시야가 열린다”라는 말을 살펴보면 이 ‘역사감각’의 뜻이 선명해진다. 이 말의 역점은 ‘현재의 현실에 입각’해야 한다는 데 있다. “과거의 바탕 위에 현재가 있기 때문에 과거를 잊으면 안된다. 그러나 현실을 부정할 수도 없다. 현실을 부정하면 장래 전망을 못한다”고 지적한 스노베씨의 역사감각은, 과거는 인식하지만 현실에서 출발한다는 현실중시 · 현상긍정의 그것이다.

 그러나 일반론으로서는 저항감 없이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이 명제도 일본이 주어가 되면 일본의 현실을 전면긍정하는 논리로 변하여 놀랄만한 정치적 명제가 된다. 한국민에 대해 일본의 현실 · 일본의 경제적 힘을 용인하며 받아들이라는 권고가 되고만다. 일본의 이 힘은 36년간의 조선식민지 지배 위에서 쌓였다는 것을 설마 스노베씨는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스노베씨나 일본측 위원들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어떤 의미로, 얼마만큼 반성하고 있는 것일까.

 이 점에서 필자는 본 보고서의 제3의 특징인 36년간의 조선지배에 대한 일본측의 역사인식이 결정적으로 부족되어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과거에 대한 집착과 퇴영적 사고에서 과감하게 탈피할 것을 제언한다.

양국 이익만 노린 ‘더러운’ 논리
 이 보고서에서 유일하게 현실감각이 표출되는 부분은 양국에서 행한 앙케이트조사에 입각한 제1장이다. 우선 일본인 5명 중 1명이 일본이 36년 동안 조선을 지배한 사실조차 모른다고 대답, 일본인의 무관심과 무지를 보고하고 있다. 그리고 장래에 대한 전망으로 “21세기에는 양국이 지금보다 긴밀해진다”고 대답한 사람이 한국측 62%, 일본측 45%, “장래 양국은 긴밀하게 돼야 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한국측 72%, 일본측 57%였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일본측 숫자가 한국측보다 일관해서 낮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일본 국민들의 절반 가까이가 한국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 원인은 과거의 조선지배에 대해 일본인의 역사인식이 결적으로 약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부족한 역사인식을 진지하게 갖도록 하기 위해서 일본측이야말로 ‘과거에 집착’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과거의 극복” 운운은 언어도단으로 보여진다.

 이상이 보고서에 대한 분석이다. 이에 따라 필자는 이 보고서에 대해 세가지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싶다.

 첫째 이 보고서가 자명한 전제로 삼고 있는 아시아 · 태평양지역에서의 일 · 한 경제협력은 일 · 한 양국민은 말할 것도 없이, 이 지역이 제국민과의 우호에 결부되지 않고, 오히려 적대관계마저 낳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보고서에서도 전제된 ?行形態的 경제발전(일본이 선진 공업국으로 선두에 서고 그 뒤를 NIES, ASEAN, 기타 국가 순으로 마치 기러기가 V자 형으로 날아가듯 경제발전 정도에 따라 나아간다는 뜻)은 아시아 · 태평양지역의 제국가와 제국민의 평등한 수평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발전 단계’의 차이에 의한 경제적 격차는 분명히 있다. 양국이 이 격차를 활용해서 이익을 얻으려고 한 것이 이 보고서를 관철한 ‘더러운’ 논리이다. 그 증거로 이 보고서에는 이 지역에의 기업진출과 개발원조가 초래한 오염이나 환경파괴, 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의 건강파괴나 생활파괴에 대한 반성은 한마디도 언급돼 있지 않다. “개발이란 폭력이다. 그 지역 평화의 파괴이다” (이반 일리이치)라는 관점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이 보고서는 이 지역 사람들의 평화와 행복과는 절대로 관계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21세기에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가 세계최대 오염지역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일본의 해외 기업활동은 물론, NIES의 경제발전은 공해규제나 없거나 지극히 약하다는 조건 속에서 실현된 것이라는 ‘발전’의 이면을 지금이야말로 직시해야 한다. 예컨대 2년 전에 체결된 바젤조약(유해폐기물의 국경이동과 그 처분에 관한 조약)에 일본도 한국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

 둘째로는 한 · 일 양국의 관계는 물론, 아시아 · 태평양지역의 여러나라와 국민간의 바람직한 관계는 평등하고 수평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 이 보고서를 일관하고 있는 일본 헤게모니론은 틀린 것이다. 이 보고서를 공정한 눈으로 읽고 또 읽어도 일본의 경제적 헤게모니가 전체를 관철하고 있다.
 
배상 · 전후 보상 인색한 日 정부
 여기서 상기되는 것은 池明觀씨의 지적이다. 지명관씨는 그의 저서 ‘저고리와 갑옷’에서 “일본의 근세 백년이란, 일본의 헤게모니 아래서 아시아를 통일해서 아시아의 평화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실패한 역사였다”라는 토인비의 학설을 소개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나라가 헤게모니를 쥐고 그 지배 아래 동아시아의 평화를 실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동아시아에는 새로운 평등한 나라들의 관계가 생겨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평등한 관계의 수립은 아무리 이상론으로 들리더라도 확실히 한 · 일 양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깊은 감명을 줄 것이다. 아시아 · 태평양 지역 사람들의 마음도 사로잡을 것이 틀림없다. 일본이 진심으로 근대 백년의 식민지지배나 타민족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고 있다고 가슴속에 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서 조금이라도 일본이 경제력에 힘입으려고 한다면 이웃 국민들은 지명관씨가 말하듯이 “역시 일본이라는 나라는 늘 가지고 있어서, 죄를 범해도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는 철면피한 나라라는 생각으로 되돌아가고 만다”는 것이다. 경제발전은 무서운 것이다. 전쟁 전의 역사를 반성하면서도 어느덧 일본(인)은 우수하다는 의식에 젖어들게 된다.

 셋째, 이 보고서에는 역사에 대한 일본측의 반성부분이 극히 불충분하다. 과거의 극복 운운이 덧붙여 있는 점에서 그것을 잘 볼 수 있는데, 경제의 논리와 현실중시에 입각하는 한, 과거의 불행한 역사는 그것을 지식으로 알고 있는 정도면 된다는 반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라는 것은 그것을 충분히 되씹지 않는 국민에게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일본인은 침략과 식민지지배의 역사를 진심으로 반성할 때까지 그 같은 행동을 되풀이 한다”는 일본인에 대한 외국학자의 지적이 이 보고서에는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일본측 반성이 지극히 불충분하다는 것은 일본의 총리나 정부의 사죄에서 “정부 차원에서는 과거청산 문제에 대해서 일단 결론을 지었다”고 이 보고서가 잘라 말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일본정부는 배상이나 전후 보상문제에 관해서 지극히 인색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손해를 보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말로가 아니라 행위로 반성을 보이라고 하는 소리가 한국과 오키나와 거주 희생자들로부터 소송형식으로 나오고 있다.

양국민 공동의 싸움 뒤 평등관계 가능

 마지막으로 한국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하고 싶다.

 일본에서도 일 · 한 21세기위원회의 최종보고서에 대한 국민적 음미가 불충분하므로 조속히 그 단점을 극복해야 하지만, 제발 한국에서도 전문가가 한 · 일 21세기위원회가 한국정부에 제출한 같은 내용의 최종보고서 전문을 읽고 내용을 검토해주기 바란다. 정부측 보고서라고 해서 경시하지 말고 음미한 후 한국민들의 진실한 소리를 일본에 들려 주기 바란다. 21세기를 향한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이 보고서의 제언대로 좋은 걸까.

 나는 이 보고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앞서 기술한 지명관 著  ‘저고리와 갑옷’ 되풀이해서
읽어보았다. 2년전 이 책이 간행되었을 때는 눈에 띄지 않았던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긴 안목으로 봐서 지금까지의 일본과 한국의 관계는 극복해야만 할 과제입니다. 우리가 함께 노력하며, 부정하며, 초극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일본과 한국, 혹은 조선 전체와의 공동의 싸움이 지금부터 전개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는 양국민이 그러한 방향으로 사회적 지성을 형성하고 공동의 과제를 짊어지고 나갈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에는 지금까지의 일본과 조선(해방전의), 일본과 한국의 수직적인 관계가 부정과 극복의 대상이 되어 참다운 수평적인 평등한 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양국의 공동의 투쟁이 함축되어 있다. 이 보고서의 작성자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도달 못할 관점인 것이다.

 참으로 관철해야 할 양국의 평등한 관계는 양국민의 공동의 싸움 뒤에 비로소 쌓아 올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국민의 사회적 지성을 형성하고 육성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제언에 격려받아 필자는 일본측에서 계속 이 문제를 연구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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