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국에 ‘핵사찰 교육’
  • 한종호 기자 ()
  • 승인 1992.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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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리에 핵시설장에서…한국측은 부인


한국은 독자적으로 북한에 대한 핵사찰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가. 상호사찰 논의가 시작되면서 누구나 한번쯤 갖게 되는 의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은 사찰능력을 갖고 있다.

한국은 남북한의 미묘한 관계 때문에 핵사찰 능력은 물론 모든 핵문제를 철저히 통제해 왔다. 얼마전 정주영 국민당 대표가 “우리는 사찰능력이 없느니 미국에게 맡기자”라고 했다가 망신을 당했는데 이는 정대표의 무지도 무지지만 핵문제에 관한 정부의 비공개주의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예였다.

핵문제는 발전소와 무기라는 평화적 ? 군사적 성격을 함께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핵의 이중성이라고 부르며 전자는 원자력으로, 후자는 핵으로 분류한다. 이같은 이중성 때문에 원자력이 핵으로 전용되는 것을 감시하는 사찰과 핵무기 통제를 위한 사찰이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은 전자의 경우이다. 미국과 한국이 주장하는 상호사찰은 거기에다 후자의 요소를 포함한 것으로 사실상 군사적 차원의 검증행위이다.

사찰은 어떻게 하는가. 한 사찰관은 이를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에 비유했다. 무거은 장비를 짊어지고 수만평 규모의 핵시설을 이잡듯이 뒤져야 하고 때로는 굶으면서 밤을 꼬박 새워야 한다. 그래서 사찰관을 선발하는 기준을 다름아닌 ‘체력’과 ‘감’이다. 당연히 경험 많은 사람이 우대받는다. 정부의 한 핵사찰 전문가는 “북한 핵사찰은 △감춘 핵물질과 시설은 없는가(은닉성) △속이고 있는 것은 없는가(기만성) △공식 주장과 실제능력 사이의 괴리는 없는가(허구성) △사고 위험은 없는가(안전성)의 측면에서 진행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남북한 독자적인 상호 핵사찰 기능

사찰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한국은 풍부한 원자력 기술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1990년 현재 1만3천2백명이 원자력 분야에 종사하고 있고, 그 가운데 5천명이 기술인력이다. 또 지난 19년간 매년 2백여일 씩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아왔다. 풍부한 수검경험은 곧 간접적인 사찰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수검실무자의 체험은 사찰요원 교육에 활용되고 있다. 또 한국은 83%이상의 원자력기술 자립을 이룬 상태이다. 이 정도면 사찰에 기술적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국제원자력기구에는 약 2백명의 핵사찰관이 있는데 그 가운데 과기처에서 파견된 요원이 3명이 있다. 이들은 국제기구 소속이고 봉급도 국제원자력기구에서 받기 때문에 남북상호사찰에는 참가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이 자리를 거치고 돌아온 사람은 사찰요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 외에도 국제원자력 기구에는 시찰코스부터 1년 정규과정까지 다양한 사찰요원훈련 프로그램이 있다. 여기서 연수를 받은 사람도 상당수에 이른다. 이상을 종합해 볼 때 한국은 소수의 훈련된 사찰요원과 다수의 기술요원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북한도 우리와 비슷한 사찰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이 한국측 핵사찰 요원에 대해 비밀교육을 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여기에 참가한 한 인사에 따르면 교육은 미국의 제안으로 시작됐고 올해 봄 20여명이 두차례에 걸쳐 로스알라모스 등 미국의 주요 핵시설을 둘러보고 기술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북한핵에 대한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미국은 상호사찰에 참가할 남한측 요원에게 자기네가 알고싶은 정보를 찾는 방법을 가르치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묘한 것은 정부 당국은 하나같이 이를 부인하는 반면, 이 사실이 공개된 것은 그레그 주한미국대사의 입을 통해서였다는 점이다. 김종휘 청와대 외교안보비서관은 “우리나라에 핵전문가가 넘쳐나는데 미국에까지 가서 훈련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남북고위급회담 대표 가운데 한사람은 이를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이 틈만 나면 우리를 미국 앞잡이라고 하는데 (알려지면)곤란하다”고 말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정부의 난처한 입장을 대신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아는 정부 내 실무자들에겐 함구령이 내려졌다. 그렇다면 미국측이 이 사실을 흘린 이유는 무엇일까. 익명을 요구한 외무부 관계자는 “미국이나 일본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상호사찰이 남북한의 비밀 핵협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레그 대사의 발언은 여기에 쐐기를 박으려는 이간책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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