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은 부시와 언론의 합작영화”
  • 성우제 기자 ()
  • 승인 1992.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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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켈너 교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분석…“정부 ? 상업 언론의 이미지 조작전”



“걸프전은 이미지 조작전 ? 매체선전전 ? 초현실(하이퍼리얼리티)전 ? 군수회사의 이익을 충족시켜주는 전쟁이었다.” 미국 텍사스대 더글러스 켈너 교수(철학)는 90년 8월 초에 일어난 걸프전의 성격을 위와 같이 분석했다. 걸프전은 부시 행정부와 언론이 각각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만든 ‘이미지 생산(조작)’을 이용한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지난 7월22일 서울대 신문연구소(소장 康賢斗) 창립 30주년기념 초청 강연회에서 미국의 저명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인 더글러스 켈너 교수는 ‘포스트마르크시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대중문화 : 미국의 언론과 걸프전’이라는 제목으로 ‘부시 행정부는 언론을 어떻게 이용했는가, 그리고 언론은 거기에 어떻게 동조했는가’를 밝혔다.

상업 언론은 ‘부시의 선전도구’

그는 ‘걸프전은 미국 역사상 가장 빈틈없는 언론 통제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미 언론도 여기에 호응해 전쟁을 비판하는 반전 목소리를 배제하고 부시의 ’선전도구‘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는 한편 시청률과 광고 수익을 위해 매체 전쟁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켈너 교수의 발표문은 “정치와 미디어가 맞물려서 돌아가는 이 시나리오에서 후세인은 미 국민에게 갑자기 악마로 비쳐졌다. 전쟁을 선악의 대결로 몰고가려는 행정부의 의도에 따라 미 언론은 후세인을 ‘미친놈’ ‘히틀러’로 묘사했고, 《타임》은 표지에 후세인의 코밑 수염을 짧게 해서 히틀러와 비슷한 이미지를 창출했다. 90년 8월부터 12월까지는 ‘악마 이미지 만들기’기간이었다”고 밝혔다. 사담 후세인의 이름도 왜곡돼 ‘소돔’ ‘사디즘’ 등으로 표기되기도 했다. 켈너 교수는 “언론이 후세인을 악마로 부각시킴으로써 그 악마를 제거하기 위한 군사적 개입이 특권을 부여받은 셈이다”라고 분석했다.

군사적 개입의 정당성을 부여받기 위한 또 하나의 장치는 이라크군의 잔혹성을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강간 ? 학살에 대한 증언이 바로 그것이다. 90년 10월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진 미 하원 의원들의 모임에서 쿠웨이트의 10대 소녀는 다음과 같은 증언을 했다. “이라크병사가 인큐베이터에서 아기들을 끄집어내 마루에 던지고 죽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 증언은 미군의 행동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부시는 이 이야기를 한달에 여섯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했고, 퀘일 부통령 ? 슈워츠코프 사령관 등도 이를 인용했다. 이를 계기로 7명의 상원의원은 이듬해 1월12일 “전쟁은 정당하다”고 결의까지 했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92년 1월6일자에서 소녀의 신원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소녀는 미국 주재 쿠웨이트 대사의 딸이었다. 이 기간에 그는 쿠웨이트에 가본 적이 없다.”

켈너 교수는 “부시 행정부는 이렇게 후세인과 이라크를 극단적으로 부정함으로써 외교적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분위기를 만들어갔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걸프전이 일어나자 미디어는 전쟁을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 즉 드라마틱한 갈등 ? 액션 ? 모험이 있는 전쟁영화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텔레비전은 시각적으로 드라마틱한 기술 이미지를 제공했는데, 고도의 정밀성을 갖춘 폭탄이 바그다드에 떨어지는 장면과 스커드 ?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공중전을 되풀이해서 방영했다. 텔레비전은 스포츠 메타포를 사용해 미 국민을 “미국! 미국!”을 연호하는 전쟁 구경꾼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반면 부상당하거나 죽은 병사의 모습 등 ‘참혹한 전쟁’은 철저하게 숨겨졌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쟁의 정당성과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널리 유포되고, 전쟁영화는 텔레비전 미니시리즈와 같은 드라마 구조를 갖추고 해피앤딩으로 향해갔다. 시청자들은 전쟁을 드라마틱한 영화로 체험했고, 이 때문에 전쟁을 할리우드의 영화와 텔레비전에 의해 곧 잊혀진 것이다.

정확한 하이테크 전쟁 이미지 창출

미 언론은 또 걸프전을 최첨단 무기의 시험장이라 규정하고 성공적인 하이테크 전쟁으로 제시했다. 텔레비전은 이라크의 군사시설만 폭격했다고 보도하고, 매우 정확하게 맞히는 장면만을 화면에 담았다. 즉 정확하고 깨끗한 하이테크 이미지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 후 미 국방부는 “폭탄의 70%이상이 목표물을 잃었다”고 밝혔다.

정보를 통제하고 전쟁의 긍정적인 모습만 보도할 수 있도록 검열을 한 탓도 있지만, 걸프전이 미 국민에게 전쟁영화로 비쳐진 또 다른 이유는 방송사들의 상업성 때문이었다고 켈너 교수는 주장했다. “CBS ? NBC 등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전쟁의 긍정적인 모습을 부각시켰다. 시청률은 광고 수익과 긴밀하게 연결되는데, 특히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제너럴 일렉트릭사의 계열사인 NBC는 전쟁시작부터 끝까지 국방부의 선전대로서, 응원단으로서 봉사했다.”

켈너 교수의 강연회에 참석한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걸프전을 분석하는 데 무리가 있지 않느냐”하는 반론이 제기됐다. 그러나 켈너 교수는 부시와 국방부 그리고 언론이 이미지 생산(조작)을 통해 만들어낸 초현실이 걸프전을 일으키고 움직였는데, 이는 포스트모던 세계의 핵심적 특징인 진실과 허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을 확인케 했다고 답변했다. 즉 텔레비전이 이미지 생산을 통해 마돈나와 마이클 잭슨 같은 대중스타(가상현실)를 만들어낸 것처럼 걸프전도 현실이 아닌 이미지에 의해 만들어진 초현실로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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