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역점”
  • 김재일 정치부차장 ()
  • 승인 1991.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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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

 지난 12일 대한적십자사 총재에 취임함 강영훈 전 총리. 그는 총이 재직시 여러 차례 남북고위급 회담에 직접 참여했고, 그 자신이 이산가족이기도 한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변화기인 지금 그의 적십자사 총재 취임은 남 다른 뜻이 있어보인다. 그는 강성 총리 · 원칙론자 · 유교윤리의 소유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직접 만나본 그는 소탈한 이상이었고 선비의 분위기도 풍겼다. 강총재는 모든 질문에 대해 비교적 솔직하게 답변했다. 통일문제에 관해서는 매우 신중하고 보수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는 “독선을 버려야 한다” “남북문제를 공산적 차원에서 다뤄선 안된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오늘 아침 일어나서 이 시간가지 무얼 했습니까?
 보통 아침 6시에 일어나 이화여대 뒤 봉원사 길을 1시간 정도 산책하는데 오늘 아침에는 강연준비 때문에 못했어요. 전국장로연합회 하기연수회에서 남북문제에 대한 강연을 마치고 방금 돌아왔습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 추임 소감을 말씀해주십시오.
 어렸을 때 적십자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요. 부족한 사람으로서 책임이 막중함을 절감합니다. 대한적십자사는 1905년 고종 황제에 의해 설립된 지 올해 86년째가 되지요. 역대 총재들이 훌륭한지도 자들이었고 많은 사업을 했습니다. 더구나 5년 동안 업적을 쌓아오신 김상협 총재의 후임을 맡게 돼 더울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전국민의 격려와 참여, 그리고 지원을 받으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적십자활동을 통해 특히 해보고 싶으신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내 자신 정부에 몸담고 있을 때 남북고위급회담의 가장 중요한 현안이 이산가족문제였습니다. 적십자활동에 있어서도 이문제에 가장 큰 비중을 둘 것입니다. 내 자신이 이산가족이기도해 적십자활동을 다시 한번 한다는 것이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산가족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서신왕래, 상봉기회 확대, 고향방문 주선 등이 있겠지요. 남북관계가 진전돼 평화통일이 되고 이산가족들이 자유로이 살 곳을 선택하는 단계에까지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강총재의 취임을 북한쪽에서 환영하리라고 봅니까?
 그랬으면 좋겠군요. 남북총리회담 할 때의 “다루기 까다로웠던 친구”가 적십자사 총재에 취임했다고 할지도 모르지요. 여하간 공작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분단의 아픔을 성심성의껏 해결하겠다는 진지한 자세로 일에 임하려 합니다.

●지금 말씀하셨는데 아직까지 남북한 서로가 남북문제를 공작적 차원에서 다루어 오지 않았습니까?
 한국동란을 경험하면서 자연히 양측은 신뢰할 수 없게 되었고 불신상태에서 회담을 해왔다고 할 수 있지요. ‘상대방에게 속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섰고 모든 상황을 자기 입장에 유리하게 만들려는, 즉 공작적 입장에서 남북문제를 다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작적’이라는 말은 북쪽에 더욱 해당되는 말이지요. 북한 노동당 규약의 전문에는 당의 목표가 ‘북쪽 사회주의의 승리’ ‘전국적의미의 민족해방’  ‘혁명과업완수’ 등의 표현이 들어 있습니다. 북한의 그 같은 전략과 자세에 비추어볼 때 북측은 남북문제를 공작차원에서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쪽은 특히 6공 들어 남북한의 신뢰회복에 중점을 두고 있지요.

●우리쪽 자세에는 문제가 전혀 없었나요?
 우리측은 처음부터 민주적인 방법과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하자는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 3공에 와서는 북한을 괴뢰집단이 아닌 하나의 정체로 인정했지요. 5공 때는 그런 현실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남부관계의 개선을 추진했고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기에 이른 겁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질가요?
 가능성은 언제나 있으나 개연성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군요. 남북총리회담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남북한 정상회담의 실현이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측은 남북한간의 여러 가지 문제 중 한가지라도 풀기 위해서 정상회담을 열자는 것인데, 북측은 모든 문제를 밑에서 해결한 후에 양측 정상이 만나자는 겁니다. 서로 시각과 입장이 다른 거지요.

●오는 27일 남북총리회담이 중단된 지 6개월 만에 다시 열립니다. 어떤 성과를 기대하십니까?
 과거보다는 많은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황이 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국제정치 상황이 변해가는데 북한도 냉정구조 때의 생각을 견지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민생문제 해결과 김정일에의 순조로운 권력이양을 위해서도 개방 협력을 부각시킬 수밖에 없고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겠지요. 따라서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의할 점은 북한이 개방협력의 자세를 가진다고 해서 노동당 규약 전문을 수정하지 않는 한 혁명노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북측은 남한의 정치권과 학생들이 사회 혼란을 일으키면 ‘뭔가 될 것 같은’ 생각을 가질 것이고, 그런 착각을 하는 한 대남적화통일전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북측이 빨리 혁명노선을 포기하고 자기네 체제를 유지하면서 공존을 추구하게끔 해야 합니다. 이때 남북 양측은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총일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시기는 우리에게 달려 있지요. 민주정치 제도를 확고히 뿌리내려야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 확립은 바로 평화통일을 단축하는 길이지요.

●다음날 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게 됩니다. 통일 기반 조성이라는 관점에서 유엔 동시가입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당장 통일이 오는 것 아니냐’하고 앞질러 생각한다든지 들뜬 태도는 절대로 금물이지요. 유의할 점은 북한이 흔쾌히 남북한평화공존의 길을 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소련이나 중국이 한국의 유엔가입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측의 제안을 무시하고 가입신청서를 따로 내버렸고 의석도 나란히 하지 않으려 했잖아요. 세상은 달라져 갑니다. 최근의 쌀 직교역 등 남북관계는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남북총리회담 때 김일성 주석을 만나셨는데 인상을 받으셨나요?
 내가 물어보고 싶은 말이군요. TV에서 보고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여러분이 받은 인상과 비슷할 거예요.

●생각보다는 괜찮은 인상이었습니다. 최소한 어렸을 때 교과서를 통해 형성된 선입견과는 매우 다른 분위기였지요. 무조건 적개심부터 먼저 불어넣는 듯한 반공교육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반공교육이 잘못됐어요. 공산당원은 마치 머리에 도깨비 뿔이라도 난 것처럼 가르친 것은 큰 문젭니다. 반공교육은 진실에 입각해야 합니다. 공작적 차원의 교육을 한다면 우지 자신이 당해요. 그런 잘못된 반공교육의 결과로 새로운 세대가 기성세대를 분신하게 됐어요.

●남북총리회담에서 가장 어려웠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북한의 관게자들이 남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충정보다는 공작적 차원에서 모든 문제를 본다는 인상을 받았을 때입니다.

●국내정치로 화제를 돌려보지요. 국내정치 상황은 가히 예측불허 · 애매모호 · 오리무중 등의 용어로 묘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한 느낌을 말씀해 주시지요.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가는 전환기로 본다면 일면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과하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민주주의란 게 원래 저마다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자기 의견만 주장하고 공통된 의견을 도출할 수 없는 사회는 망합니다. 정치인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어떻게 모을 수 있느냐를 빨리 배워야 합니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두가지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중구난방식의 목소리들이 전국적으로 조직화돼야 합니다. 즉 이익단체 · 압력단체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로 정당이 인물 중심에서 벗어나 정책정당화돼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선 정치인들이 독선을 버려야 한다는 점이지요. 저는 국민들이 깨어나는 것을 보면서 민주주이 발전에 희망을 갖습니다.

●정치일정 등 현안을 놓고 여당내 계파간 이해관계에 따른 격돌이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입니다만….
 민주 정단에서 계파간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요. 어떻게 민주적 방식과 절차에 의해 의견이 통합되느냐가 중요 합니다.

●총리 재직시인 9개월 전《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내각제를 지지하느냐는 물음에 대해 “소견을 가지고 있지만 대통령을 보좌하는 입장에서 개인적인 입장을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지금은 그 소견을 밝혀도 되겠지요.
 아직도 빠른 것 같네요. 총리직을 그만 둔 후 아직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어요. 대통령제나 내각제 모두가 각각 장단점을 가지고 있지요. 정치인들이 신중하게 결정해주기 바랍니다.

●통일문제에 초점을 맞춘다면 어떤 권력구조가 적합할까요?
 지역갈등 해결이 큰 과제인 내치를 위해서는 내각제가 좋겠으나 통일문제를 다루는 데는 아무래도 대통령제가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항간에 강총재를 여권의 대통령후보로 거론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들어보지 못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총리 재직시 인상적인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자랑할 게 뭐 있겠습니까. 다만 총리 취임시의 상황이 화염병난무 · 총장실 파괴 · 지하철 파업 등 매우 혼란한 때여서 나는 최우선 과제가 질서확보라고 생각했습니다. 관계부처의 노력으로 점차 공권력이 확립됨과 동시에 상황이 호전됐어요. 이와 함께 시민들이 정부에 전적으로 의지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할 것이 있다’는 각성을 하기 시작했지요. 그 각성을 바탕으로 시민들의 국사 참여의식이 강해져가고 있습니다. 즉 지자체 선거 때의 자율 공명선거 감시단 운동, 사랑의 쌀 운도, 알뜰 생활 주부 운동, 과소비 억제운동 등 국민운동의 기반이 그때 마련됐다고 봅니다.

●총리직을 물러난 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처음에는 집에서 독서하면서 회고록을 정리할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집에서 게을러지기 쉽고 생활 패턴이 갑자기 변하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아 임동원 외교안보연구원장에게 방이 있으면 하나 빌리 수 있겠냐고 했지요(그는 회교안보연구원장을 맡은 경력이 있다). 임원장이 흔쾌히 승낙해 주로 그 방에서 연구하면서 지냈어요. 임원장이 내게 외교안보연구원 고문이란 직함까지 붙여주었지요(그러나 그는 취직한 것은 아니라고 웃는다). 지난 4월 말부터 한달 가까이 대통령 특사로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오만 바레인 이집트 쿠웨이트를 방문하기도 했지요. 걸프전 승리 축하 , 친선 우호관계 증진이 목적이었고, 간 김에 유엔 가입 문제에 대해서도 협조를 구했어요.

●강총재께서 검소하고 첨렴한 생활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파트 분양 신청을 했지만 두 번이나 떨이진 것으로 보도됐는데. 이제 당첨됐나요?
 특별히 청렴한 것도 없는데 언론에서 너무 과장 보도한 것 같아요. 사실은 아파트 분양을 신청 한 적 없습니다. 집사람이 분당에 갔던 것을 본 사람들에 의해 와전된 것이지요. 구식이긴 하지만 서대문에 집이 한 채 있어요. 전세를 주고 교황청 대사로 갔는데 마치고 돌아와서 세든 사람을 갑자기 나가라고 할 수 없어 아파트에 세들어 살았고 몇번 이사를 했지요. 전세금 3천만원에 세들어 살았는데 1년 후 집주인의 요청으로 전세금 2천만원을 더 냈고, 전세기간을 연장해 살던중 집이 팔려 이사한 적이 있어요. 작은 아들 가족과 함께 이사간 아파트에서 살다 총리로 임명받았는데, 집주인이 처신이 곤란하다며 나가 달라고 해서 또 이사했습니다. 총리직을 물러난 후에는 동화은행에서 2천5백만원을 대출받아 수리한 서대문 집에서 지금 살고 있습니다.

●지금 타고 다니시는 차종이 무엇인가요?
 소나타를 타고 다니지요. 주위에선 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이목도 있으니 큰 차를 타라고 했지만, 차라는 것이 잘 굴러가면 되는 것 아닌가요. 총리 때는 총리고 그만두면 시민아니냐고 했지요. 이 때문에 또 인기전술이 아니냐며 한동안 시비 거리가 된 적이 있어요.

●좌우명은 무엇입니까?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항상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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