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영어교육은 연극·만화·노래로
  • 이성남 차장대우 ()
  • 승인 1992.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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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성취 즐거운 느껴야…교재 선택 중요


취업주부 강인숙씨는 집에서 책상을 옮기다 다섯 살짜리 딸에게 “이쪽으로 밀어”라고 말했다가 냉큼 “미러는 거울이야”라고 말하는 통에 질겁했다. 집에서 영어를 가르친 적이 없지만 아이는 놀이방에서 주워들은 토막영어를 뽐내며 써먹는 것이다.

조기 영어교육의 시행을 둘러싼 논란이 거듭되는중에 이미 우리 주변에는 조기 영어교육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해 교육부가 95년부터 시행되는 제6차 국민학교 교과과정에 1주일에 두시간씩 영어를 정규 선택과목에 포함시키며, 중학교 과정에서 듣기와 말하기에 비중을 둔다고 방침을 굳히자 이같은 열기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영어를 선택과목에 포함시킨다는 방침으로 학부모는 더욱 혼란을 느끼게 되었다. 국민학생 거의가 영어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영어가 정규교과나 마찬가지 인데도 중학교에서 다시 알파벳부터 배워야 하는 결과를 빚게 되었다.

국민학교 1학년 아들을 둔 압구정동의 한 주부는 “주위에서 세서미 스트리트 과외다, 미군부대 과외다 하면서 법석을 떠는 것을 보며 아이가 쉽게 영어를 터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두고 고민한다”고 털어놓는다. 이같은 고민은 이주부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5~10살 아이를 둔 가정에는 하루종일 AFKN 텔레비전방송이나 비디오테이프 등을 틀어놓거나 집안의 사물에다 해당되는 영어단어를 써 붙여놓기도 한다. 자녀가 국민학교에 입학하면 또래들을 모아 과외를 시키는 일도 유행하며 더러는 외국어 전문학원이나 문화센터에 개설된 어린이 영어강좌에 보낸다. 최근에는 신청자를 받아 방과 후 영어지도를 하는 국민학교도 많다.

서울 등 대도시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방법은 각종 비디오나 카세트테이프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 방법이 인기를 끄는 것은 영어교재를 구입하면 자회사의 판매조직을 이용하여 일정한 형태의 영어학습 과정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시사영어사는 정가 50만원짜리 <세서미 스트리트>나 <E2 영피플> 비디오테이프를 구입하면 지역단위의 회원을 모아 1주일에 두번씩 영어를 가르친다. 또 국민학교 저학년에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는 현대영어사의 <윤선생 영어교실>은 퍼닉스 등 카세트테이프를 구입한 회원에게 새벽마다 전화를 걸어 진도를 점검한다.

비디오 6개월 지속하면 효과 저하

갖가지 형태로 쏟아지는 교재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가정이나 학교에서 표준모형으로 삼을 만한 교과서가 없는 현실에서는 교재 선택이 중요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시중의 영어교재대부분이 외국것을 베끼거나 서너권에서 적당히 발췌 ? 편집한 것이 태반이어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비디오와 카세트테이프 판매업체들은 외국학자의 실험결과를 원용하여 시청각 방식이 언어학습에서 최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교육개발원 외국어연구실 최진황 실장은 “비디오와 녹음기 등 시청각 자료에만 의존하는 것은 효과가 적다”고 말한다. 몇몇 연구결과는 영어수업을 청각자료에만 의존하여 계속할 경우 2개월이 지나면 학생들의 주의 집중도 및 흥미가 50%로 떨어지며, 비디오나 카세트테이프를 무작정 틀어놓는 일은 효과를 거두기 어려우며 40분 수업이라면 보조적 수단으로 이를 10분정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는 것이다. 언어학습을 체계적으로 시키자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아동이 즐거움을 느껴야 하므로 교사와 학생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 최실장의 설명이다. 이 방법은 또래 집단학습을 통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연극 또는 설정된 어떤 상황 속에서 아이들이 역할놀이를 하면서 의사를 소통하면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식 역시 대도시의 울타리를 뛰어넘지 못하는 제약성을 갖고 있고 마땅한 교재도 없는 실정이다.

남들이 다 시킨다고 아무 학원에나 보내는 것은 금물이다. 학원식 학습보다는 가정에서 부모가 교사지침서를 활용해 학습지도안을 짜서 애정을 갖고 가르치는 것이 낫다는 것이 전문가의 조언이다. 하나의 구문을 가르치기 위해 부모가 어떤 상황을 만들어 아이와 대화를 주거 받거나 게임을 하는 것은 어지간한 열의를 갖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자기 아이가 영어를 잘하면 좋겠다는 의욕은 높지만 직접 가르쳐야겠다는 의욕은 전혀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아이에게 영어교재만 주고 알아서 공부하라는 방식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가정 학습지도에서 주의할 점은 현지인의 정확한 발음이 담긴 녹음 테이프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발음이 굳어지면 그것을 교정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인 전문강사들의 지적이다. 영어를 가르치는 부모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남들이 한다고 무조건 따라가지 말고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주관이 필요하다. 계몽문화센터에서 국민학교 4학년 이상을 지도한 홍윤혜씨는 다음 사항에 유의할 것을 당부한다. 첫째 아이들에게 영어는 도구교과인 만큼 우리말에 대한 주체의식을 잃지 않도록 하고, 둘째 재미가 있어야 하며, 셋째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어 습득은 14세 이전에

최근에 선보인 아동용 영어교재 중에 계몽사의 <조이플 잉글리시>와 시사영어사의 <줄리선생 어린이 기초영어>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대도시 위주의 판매망에 의거한 학습방식을 탈피해 전국 어디서나 ‘엄마와 어린이가 함께 공부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95년 교과과정 개편에 맞춰 말하기와 듣기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실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어휘를 골라 만화식으로 꾸며놓았고 따라부르기 쉬운 노래를 중간에 삽입하여 어휘와 구문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는 <조이플 잉글리시>는 어머니지침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본교재 다섯권에 각권당 테이프 두개씩, 그림동화 한권(녹음테이프 두개, 비디오테이프 세개), 그림단어장 한권, 배움책 세권(각권 테이프 한개), 어머니 지침서 한권, 노래테이프 두개 등으로 구성됐다. 1년의 제작기간이 걸린 <줄리선생…>은 “그림도 그리고 색칠도 하면서 재미있게 배우는 어린이 기초영어”임을 강조한다. 교재 네권에 각권당 테이프 두개로 되어 있다.

<조이플 잉글리시>를 감수한 인하대 외국어교육원 황혜숙 교수는 영어교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듣기와 말하기에도 요령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듣기는 전체 문장을 한묶음이나 아니면 반으로 나눠서 훈련할 것을 강조한다. 예컨대 How Do You Do?라는 네개의 단어로 된 문장을 익힐 때는 한묶음으로 듣는 훈련을 해야만 미국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대강의 내용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들을 것을 조언한다. 말하기는 정확한 발음을 할 것과 함께 듣기에서처럼 붙여서 말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한다.

영어는 몇살 때부터 가르쳐야 할까. 언어학자들은 나이가 어릴수록 외국어 습득에 유리하다는 데 공통된 견해를 보인다.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14세를 넘기면 습득이 아주 느려진다는 이론이 통용된다. 그러나 아무리 일찍 시작했다고 해도 꾸준히 계속해야 하는 것이 외국어교육이다. 조기 언어교육은 잘하면 효과적이지만 잘못하면 완벽하게 실패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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