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가 아마 ‘조롱’한 올림픽
  • 김당 기자 ()
  • 승인 1992.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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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우승자에 금전 특혜…중국은 노동자 평생 임금 지급



“국력은 메달순인가”…프랑스는 메달 수 뒤져도 국력 앞서
조짐이 좋았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는데 시작부터 금이었다. 제25회 올림픽 초장에 예기치 못한 첫 금을 목에 건 한국팀이 마지막에 예상을 적중한 끝 금을 거머쥠으로써 서울올림픽 때와 똑같이 금메달 12개를 따는 성과를 올렸다. 특히 올림픽의 꽃이라는 마라톤에서 황영조가 우승후보였던 일본의 모리시타를 막판의 시소경쟁 끝에 따돌린 모습은 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우승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더욱이 황영조가 금메달을 딴 날은 바로 56년 전 손기정 선수가 우승하던 날과 같은 날이라 더욱 의미있는 날로 기록된다.

그러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 국력 또한 메달순이 아니다. 올림픽에서의 메달수는 국민 체력을 재는 잣대가 아니고 체력이 국력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메달수는 앞섰지만 인구는 4분의 1, 1인당 GNP도 절반 수준인 쿠바에 견주어 우리의 국력이 뒤떨어진 것은 아니다. 또 비록 우리가 금메달 성적에서 일본, 영국 그리고 프랑스 같은 나라를 앞섰지만 국력에서 앞선 것은 아니다. 어쩌면 “체력은 국력”이라는 구호는 신성한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스포츠 국가(민족)주의가 내건 환상일 수 있다

‘한국의 마녀들’이 핸드볼 올림픽 2연패를 했다고 해서 당장 핸도볼 경기장을 찾는 ‘순진한 아마추어 인구’가 많아지는 것은 아니다. 대중 스포츠 또는 사회체육이라는 말은 근본적으로 올림칙의 스포츠 엘리트주의와는 어울릴 수 없는 것이다.

스포츠 엘리트주의의 속성이 상업주의는 이번 올림픽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갈수록 보고 즐기는 스포츠는 강화되고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 본연의 정신은 빛이 바래고 있다 우선 기록면에서 볼 때 서울을 올림픽 때에 견주어 종목수는 2백43개에서 2백 57개로 늘었으나 신기록은 33개에서 21개로 줄어든 흉작이었다. 반면에 금메달리스트에게 주는 상금은 풍작이었다. 외신에 따르면 금메달 순위에서 4위로 크게 약진한 중국의 겨우 정부에서 금메달리스트들에게 노동자의 평생 임금에 해당하는 1만5천달러를 상금으로 주기로 했고 북한도 중국과 비슷한 대우를 해주기로 했다. 한국 또한 대통령이 주는 격려금과 한몫에 주는 격려금 말고도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경기력향상 연구기금조로 지급하는 연금이 월 1백만원을 넘는 선수가 연네명이 될 전망이다. 물론 입상을 못한 선수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서울올림픽에 이어 이번에도 단 한개의 메달도 못 딴 인도처럼 다음 올림픽까지 4년간 모든 국제대회의 출전을 유보시키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도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은 메달을 못 딴 선수에게만 엄격히 적용되는 셈이다.

 

조직위 ? 기업 ? 방송사가 장사 주도

이번 올림픽에서 상업주의를 부채질한 것은 조직위의 프로 선수 출전 허용과 이를 돈벌이 수단으로 한껏 이용한 기업과 텔레비전 방송사이다. 이번 올림픽에는 23세 이하의 프로축구 선수와 프로테니스 선수를 비롯해 사상 처음으로 미국 프로농구 선수가 출전해 올림픽을 진기명기를 감상하는 거대한 상품시장으로 전락시켰다. 나이키사의 경우 미국 프로농구의 스타 마이클 조단을 ‘걸어다니는 간판’으로 만들었는데 프로농구 선수의 출전허용도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어야 높은 광고료를 챙길 수 있는 방송사들의 압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조직위는 적자를 면하려고 올림픽 후원기업을 지정해 주는 대신 돈을 받고 텔레비전 방영료(6억3천5백만 달러)를 대폭 인상해 후원기업과 방송사의 입김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프로스포츠 왕국인 미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올림픽은 프로 데뷔전 성격을 띠었다. 그래서 올림픽 경기장을 돈벌이가 될만한 선수를 스카웃하려는 미국 프로팀 감독들이 눈독을 들이는 견물시장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럴 일이 없어질 것이다. 미국 농구팀은 거친 매너와 후원기업의 상품 광고가 찍힌 유니폼 입기를 고집해 비난을 샀지만, 막상 미국팀 경기장은 상대팀을 애 다루듯하는 농구쇼를 보려는 관중으로 연일 만원을 이뤘다. 미국 농구팀은 일부 외신으로부터 “바르셀로나로 휴가를 온 듯하다”는 비아냥거림을 받았지만 이 휴가팀에게 경기마다 1백점 이상의 대량 득점을 허용한 상대팀은 차라리 안쓰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미국 프로농구팀 출전에서 보듯 올림픽의 순수 아마추어리즘은 앞으로 더욱더 흥미를 요구하는 시대 조류와 보고 즐기는 스포츠의 강화 추세에 따라 빛이 바래고 프로페셔널리즘이 올림픽을 지배하게 될 전망이다. 그럴 경우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올림픽 정신은 올림픽 박물관에서나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에서 페어플레이를 기대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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