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노2김, 정치뉴스 ‘독과점’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1.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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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병’앓는 언론, 정책보다 인물 위주 보도…소수의 권력 독점이 근본 원인

  우리 언론은 무엇으로 사는가. 정치권의 대변혁이 점쳐지고, 14대 총선과 대통령선거 일정이 점점 다가옴에 따라 정치권 변화를 주도할 ‘힘있는’인물에 대한 언론의 취재 열기도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의 ‘제주도 휴가’를 둘러싸고 언론의 취재경쟁과 과잉보도는 그 절정에 달했다.

  김대표의 휴가 7일째인 8월2일. 김대표는 그동안 자신을 따라붙던 기자들을 물리치고 제주도 앞 비양도에서 바다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다 한가운데서 소형 모터보트 한대가 나타났다. 바다낚시를 즐기는 김대표를 취재하기 위해 몰래 따라나선 모 방송국의 카메라 취재팀이었다. 다음날인 3일 오전. 김대표는 아침 일찍부터 “한번만 그림을 만들어 달라”는 방송사와 신문사측의 성화에 못이겨 호텔 앞 바닷가를 바라보는 포즈를 취했다. 그날 저녁 한 방송국의 뉴스는 이 화면과 함께 “제주에 머무르는 김대표는 바다를 바라보면 마음이 탁 트인다고 말하고 있지만, 어쩐지 그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고 친절한 해설을 덧붙였다.

  비단 방송만이 아니다. 김대표가 제주에 머무르는 동안 각 일간지의 정치부 기자 20여명이 제주를 다녀갔다. 심지어 독자들은 신문 해설기사를 통해 김대표의 점심식사 메뉴까지 알게 될 정도였다. 한 언론학자는 이를 두고 “독자들의 궁금증에 대한 언론의 지나친 서비스 정신”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의회민주주의 과정·절차엔 무관심”
  우리의 정치뉴스가 몇몇 정치인에 지나치게 편중되고 있는 양상은 최근 한 조사연구(서울대 신문학과 강명구 교수팀이 ‘국회 출입기자와 취재원의 관계에 관한 연구’를 위해 실시한 1차조사)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 조사팀은 지난 1년간(1990.8.1~1991.7.26) 5대 일간지 1·2·3면의 정치관련 기사 2만5천9백85건을 놓고 ‘50명의 유력 국회의원이 얼마나 자주 기사에 등장했나’를 분석했다. 여기에서의 등장은 단순한 이름 언급만이 아니고 그 기사의 주요 인물로 거론된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14~15쪽 그림 참조)는 김대중 신민당 총재와 김영삼 대표 등 양김씨가 단연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양김씨의 보도건수(4천1백46건)는 다른 국회의원 47명 전체의 보도건수(4천2백21건)와 거의 비슷하다. 이런 결과는 가십란을 제외한 것이니만큼 양김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가십란까지 포함하면 비중은 더운 놓아질 것으로 보인다.

  노태우 대통령의 경우 국회의원이 아니므로 일단 조사대사에선 제외됐다. 그러나 강교수가 지난해 실시한 ‘텔레비전 정치뉴스 분석’에서 노대통령의 보도 빈도수는 각료와 관료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여기에 지난 한해 동안 우리 언론이 향후 권력구조 변경과 민자당의 차기 대통령후보 결정을 둘러싼 이른바 ‘통치권자의 의중’ 살피기에 주력해온 점을 감안하면, 노대통령의 보도 횟수도 양김씨보다 많거나 비슷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지난해 우리 정치뉴스의 태반이 1노2김의 동태와 의중분석에 할애된 셈이다.

  1노2김의 뉴스 독과점 현상은 여타 정치인들의 뉴스 소외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진급 이상만이 기용되는 의회 내 요직인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1년 내내 단 한번도 언론에 ‘주요 인물’로 등장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17개 상임위원회 가운데 정창화 농림수산위원장 정상구 행정위원장만이 ‘정치기사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조사자인 강교수는 “이런 결과는 우리 언론이 어떤 형식의 정치체제, 정치과정을 지지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면서 “언론이 선언적 의미에서는 의회민주주의를 지지하면서도, 실제 뉴스비중을 보면 의회민주주의의 과정과 절차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대권상속·대권조끼·대권미사일 등 난무
  정치뉴스의 편중현상 못지않게 그 접근방식과 내용도 큰 문제로 드러났다. 지난 한해 동안 정치인물 기사의 대부분은 거의 예외없이 소위 ‘대권’과 관련된 당내 갈등, 계파 갈등, 각 정치인의 정치적 계산과 의도를 뒤쫓고 파헤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동안 신문지상에 제목으로 등장한 소위 ‘대권’-언론이 공용어로 쓰다시피하는 대권이 절대권력을 연상시키는 봉건적 개념이라는 비판도 최근 거세게 일고 있다-과 관련된 신조어만도 수십 가지. 그 목록을 보면 “대권경쟁 대권전략 대권도전 대권구도 대권가도 대권후보 대권작전  대권고지 대권다툼 대권행보 대권외교 대권포석 대권변수 대권카드 대권조끼 대권상속 대권무지개 대권미사일 대권야망 대권탈환”등이다. 기사의 기술방식도 한결같이 스포츠 게임·바둑의 형세·기후 변화 등의 세가지 도식으로 일관돼 독자로 하여금 ‘스포츠 게임’을 관전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공통점이다.

  강준만 교수(전북대·신문방송학)는 이런 현상에 대해 “한국 언론은 대통령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모든 것을 대권과 연결시키는 언론의 지나친 대통령병은 민주적인 제도와 질서를 스스로 유린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각범 교수(서울대·사회학)도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니 만큼 많이 다루는 것은 옳다”면서도 “같은 대권문제를 다루더라도 국정운용 능력·정책 방향·정치적 비전·민주화 기여도에 관한 접근을 하지 않은 채 지나치게 정파적 입장과 세싸움의 시각에서만 보도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정치냉소주의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왜 우리 정치뉴스는 정치사안이나 정책보다는 인물 위주로, 그것도 몇몇 특정 인물의 ‘야망의 세월’을 주제로 쓰여지는 것인가. 서울대 김광웅 교수는 그 근본 원인을 ‘권력의 독과점’ 현상에서 찾고 있다. 김교수는 “한국 정치는 정치 논리나 정책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그것도 소수의 거물 중심으로 파행적으로 움직여져왔기 때문에 인물에 대한 관심을 우선적으로 가지게 된다”고 진단한다. 한 언론사의 중견 언론인도 “몇몇 인물의 의중과 막후 협상 여하에 따라 정치구도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한, 특정 인물 중심의 정치기사가 쓰여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는다. 즉 현실 한국정치의 수준과 현주소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게 ‘인물 중심의 정치기사’라는 것이다. 그는 “표면상으로는 구국적 결단을 했다는 3당합당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실제로는 김영삼씨와 김종필씨의 골프회동과 일식집 회동이 그 단초였다. 정치적 논리나 비전보다는 이해관계의 이합집단이 정치변화를 낳는 한국적 정치상황에서는 인물 중심의 추적을 하지 않으면 물먹기 십상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독자 역시 정책·이슈보다 인물에 관심”
  그러나 언론 자체의 ‘상업성’이 인물기사 양산의 한 원인이라는 진단도 있다. 본디 정치기사는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기사라 해서 주로 1면 머리기사를 장식해왔다. 거기에 2·3면의 가십란과 해설기사란은 거의 정치기사로 채워지는 것이 관행이다.

  그런데 도하 각 일간지가 재작년 가히 ‘살인적인’ 증면경쟁 체제에 돌입한 이후 정치뉴스는 더욱 늘어났다. 24면으로 늘어난 ‘증면 시대’이후 금요일자의 경우는 심지어 32면까지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 지면을 메우기 위해 ‘…시리즈’식의 정치인물 중심의 기획기사가 일제히 실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 언론사의 간부도 “어떤 정치인의 기사가 크게 나가느냐 안 나가느냐가 가판을 좌우하는 상황이다. 정책이나 이슈를 다룬 사안은 그다지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 결국 인물을 다룰 수밖에 없다”며 인물기사가 ‘독자들의 기호’에 영합하는 것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원인이 어느 쪽에 있든 우리 정치뉴스는 ‘힘있는 정치인’ ‘관심을 그는 정치인’ 위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는 정치뉴스의 생산현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우선 돈과 정보를 독점한 ‘힘있는’ 정치인들이 모인 거대정당 민자당의 출입기자수는 다른 정당에 비해 월등히 많다. 대부분의 일간지들은 1진에서 5진까지 5~7명의 기자를 민자당에 내보내고 있다. 그래서 전국 방송·신문·통신사의 민자당 출입기자만도 2백여명을 넘고 있다.

  이 민자당 출입기자들은 대부분 당을 취재하면서 한명의 대표최고위원과 두명의 최고위원, 당 사무총장과 총무를 개별적으로 맡는다. 그 순서도 ‘힘있는’ 정치인일수록 고참기자가 따라붙고 ‘비실세’일수록 말진이 담당한다. 김종필 최고위원측은 한때 말진 기자들이 청구동 자택을 출입하는 데 대해 못마땅한 심기를 드러낸 적이 있다. 말단 기자가 그를 맡는다는 건 그만큼 정치뉴스에서 소외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돈과 힘, 정보를 가진 이들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은 당사에 나가기 전에 아예 이들의 집으로 출근하는 게 취재관행이다. 김대표측은 올초부터 기자들 수가 너무 많아졌다는 이유로 ‘자택 취재’에 응하지 않고 있다. 박태준 최고위원의 경우 최고위원 취임 직후 아예 “개인적으로 집에 찾아오는 일은 사양한다. 대신 당사에 30분 먼저 나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아직까지도 ‘자택 정치’의 관행은 여전하다. 비교적 언론에 이야기를 능숙하게 ‘흘리는’ 김윤환 사무총장의 경우 그의 서초동 자택에는 항상 10여명의 기자들이 새벽 출근하고 있다. 신민당 김총재의 경우도 ‘동교동 아침’을 그만둔지 오래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기자들의 밀착취재는 계속되고 있다.

政·言 밀착 ‘YS·DJ장학생’설 나돌아
  인물 중심의 취재방식은 긍정적인 측면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모든 정치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정당과 출입처의 정례 브리핑이 관례화되지 않은 상황에선 그나마 유일한 ‘돌파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폐단은 ‘정치인과 언론인의 지나친 유착’으로 나타난다. 취재원과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밀착됐느냐 여부가 정보를 얻어내는 데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정치권에서 흘러나온 ‘YS장학생’이란 말은 최근 들어 더 끈질기게 나돌고 있다. 즉 일부 언론사의 정치부 기자들이 김대표와 특별한 ‘유착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언론관리에 뛰어난’ 김대표가 기자들을 A·B·C 등급으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는 풍문까지 있는 실정이다. 그런가 하면 특정 매체와 특정 지역 출신의 신민당 출입기자들을 놓고 ‘DJ장학생’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강명구 교수는 “일본의 경우 특정 정치계보를 오랫동안 취재하며 그 계보의 이익을 대변하고 정보수집까지 해주는 이른바 계보기자가 형성돼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우도 최근 정치인과 특정매체간, 취재원과 취재기자가 지나치게 밀착된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일본 언론과의 유사성을 지적한다.

  소수 정치인 중심의 한국 정치구조와 그 성격이 바뀌지 않는 한, 독자들이 인물 중심의 기사를 선호하는 한, 독자들이 인물 중심의 기사를 선호하는 한, 그러한 정치기사도 사라지지 안흘 것이다. 언론은 현실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이 지닌 ‘현실규정적인’ 힘과 계도성을 감안하면 언론 스스로가 구태의연한 취재관행과 발상법, 그리고 뉴스 선택 기준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언론 스스로가 정치의 기존 논리에서 먼저 벗어나는 것이 정치현실과 정치문화를 바꿀 수 있는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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