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식민지 홍콩 범죄와 ‘전쟁중’
  • 홍콩·김당 기자 ()
  • 승인 1991.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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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의 불안’이 한탕주의 부채질…상류층 탈출 기정사실

  홍콩은 지금 ‘전쟁’중이다. 지난해 9월 홍콩정청이 강력·조직범죄에 대해 선전포고한 이후 범죄와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 선전포고는 무장강도 2명이 홍콩의 치안책임자인 경찰국장 관사를 턴 지 1주일만에 내려진 조처였다.

  세계에서 가장 비좁은 국제공항 중의 하나인 홍콩 카이탁공항에 내리자마자 그 전운을 느낄 수 있다. 공항 환전소 옆의 경찰초소 벽보판에 붙은 강력범죄자 수십명의 수배전단이 눈길을 끈다. 또 공항 청사 안에서는 경기관단총으로 무장한 2인 1조의 경비대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이 지닌 총은 단순히 예방차원의 위협용이 아니라 ‘실전 대응용’이다. 지난 7월12일에도 바로 이 공항에서 4인조 무장강도가 은행의 현금 수송차량을 습격, 한국돈 1백60억원에 상당하는 현금을 강탈해 달아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액수는 개항한 지 1백50년 된 홍콩 역사상 최대의 강도 피해금액으로 기록되었다.

대륙서 원정온 중국인 강도 활개
  범죄와 관련된 최고기록은 더 있다. 같은 달 하룻밤 사이에 금은방 다섯 군데가 잇달아 털려, 지난 86년 1월에 세워진 네 군데 연속 금은방털이라는 종전 최고기록이 경신됐다. 홍콩 신문들이 다투어 실은 ‘강도사건 일지’에 따르면 총기류를 사용한 강력사건 발생건수는 지난 86년 1백25건, 88년 1백79건, 90년 3백64건 등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중국제 AK47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4인조 강도가 신계지역의 한 보석상에 들어가 1백70만홍콩달러(한국돈 1억6천만원)어치의 귀금속을 강탈했다. 경찰이 현장에 긴급 출동했지만 범인들은 권총과 수류탄으로 저항하다 인질을 납치해 도망갔다. 경찰은 헬기까지 동원, 봉쇄·수색작전을 펼쳤지만 범인들은 이미 사라지고 난 다음이었다.”

  위 인용은 극장에서나 볼 수 있는 홍콩느와르(홍콩판 폭력 · 범죄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신문기사에서 흔히 보는 실제상황이다.

  홍콩 경찰은 이처럼 대륙에서 원저온 중국인들의 강도사건이 급증한 배경으로 중국의 치안부재 상황과 개방정책으로 돈맛을 본 중국인들의 한탕심리, 그리고 이들을 이용한 홍콩 최대 범죄조직인 ‘트라이어드’(三合會)의 해외이전자금 마련 기도 등을 꼽고 있다. 요컨대 중국에 귀속되는 97년 이전에 한몫을 챙겨 홍콩을 뜰 요량인 트라이어드 조직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인근 광동성 출신 실업자들과 제대군인들을 고용해 청부강도를 사주한다는 것이다.

  이 중국인들은 밀입국하거나 합법적인 관광객으로 위장잠입해 홍콩 현지에서 범죄조직이 준비한 무기를 건네받아 범행을 감행하는 데다가 홍콩에서의 범죄기록이 없기 때문에 현장에서 잡히지만 않으면 체포될 위험이 적다. 더욱이 홍콩 입법국이 지난 6월말 식민지 유산이랄 수 있는 사형제도 폐지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홍콩시민들은 극장이 아닌 거리에서, 홍콩 마피아가 기획·연출하고 대륙에서 원정온 중국인들이 행동대원으로 출연한ㄴ ‘香·中合作 영화’를 더 자주 보게 될 처지이다.

  큰 변고를 앞두고 먼저 날뛰는 난파선의 쥐들로 비유되는 범죄꾼들의 한탕심리는 점점 가까워지는 97년에 대한 불안심리의 결과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조직범죄와 사회주의는 공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같은 불안심리는 범죄조직 못지않게 풍향에 민감한 언론에서도 드러난다. 영국 정부의 자유방임주의 아래 서구식 언론자유를 누려온 홍콩 언론들 또한 사회주의와 공존할 수 없을 것이 뻔하다. 따라서 百家爭?하던 70여개의 신문을 포함한 5백개가 넘는 정기간행물에 나타나는 변화는 중국의 눈치를 살피는데에 점점 百家同?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97년 이후를 도모하기 위한 언론의 생존전략 변화를 뜻하는 것이다. 특히 중립지들은 지난해만 해도 89년의 천안문사태를 비난하는 현장증언이나 특집을 실었으나 올해는 그저 외신보도를 인용해 북경 표정을 스케치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한편 그동안 대만의 입장을 지지해 중국 비판에 앞장섰던 우파 언론들은 해외이전이라는 분명한 생존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반면에 좌파 언론들은 부수가 날로 신장하는 추세이다.

  이처럼 계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양상은 홍콩시민들에게서도 그 계급적 관점에 따라 엇비슷하게 나타난다. 홍콩의 붕괴를 막으려고 鄧小平이 누누이 강조해온 一國兩制論, 즉 97년 이후에도 50년간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한다는 보장도 상류층에는 천안문사태 이후 한낱 부도수표일 뿐이다. 이들의 홍콩 탈출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백화점이랄 수 있는 홍콩에서 한국상품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일본을 앞지르는 인기 상품인 보르네오 가구(BiF)의 李元郁 지사장이 해준 귀띔은 홍콩이민국의 통계수치보다 더 피부에 와닿는 현실감을 준다. 이씨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가구 판매건수 중 20건 가량(3억원어치)이 구입자의 집으로 배달되는 것이 아니라 컨테이너째로 실려가는 이민용 가구라는 것이다.

  홍콩의 매래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지닌 중산층의 움직임은 아직도 눈치를 보는 수준이다. 이들은 중국의 지속적인 개방·개혁정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한편 잃을 게 없는 무산계급은 한가하게 그런 데 관심을 둘 형편이 못된다. 주인이 바뀌더라도 어차피 형편은 달라질 게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히려 영국 정부쪽에 더 적대적이다.

  지난 87년부터 홍콩정청과 주민 사이에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九龍城(Walled City) 철거문제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홍콩공항 근처에 위치한 구룡성은 홍콩 안에 있으면서도 관리권은 중국 정부에 있어 왔던 치외법권지대이다. 말하자면 영국 조차 지 안의 중국 조차지인 셈이다. 1백50년 전 청조 때부터 쌓은 2만7천㎡ 넓이의 구룡성은 멀리서 보면 거대한 하나의 빌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크고 작은 건물 3백50여동이 난마처럼 얽힌 빌딩군이다. 보안등도 없고 허리를 구부려야 지날 수 있는 음습한 골목에서 눈에 띄는 것은 도둑고양이들의 새파란 눈빛뿐이다. 건물 사이로 빛이 스며드는 곳에서 어김없이 “독고양이와 독있는 쥐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홍콩경찰의 경고문이 붙어 있다. 홍콩 정부는 이곳을 ‘범죄와 악의 온상’으로 지목한 지 오래이다.

정치 무관심 속, 최초로 위원 직접선거
  홍콩 정부는 경찰도 들어가지 않으려는 이곳을 내년에 헐어버리고 공원으로 만들 계획이다. 이미 1천여개의 점포 가운데 주로 안쪽에 위치한 태반이 보상비를 받고 이주했지만 낙태·치과 수술 등을 주업으로 하는 무면허 의원과 떡가게 등이 성업중이다. 바깥쪽 건물 곳곳에 내건 플래카드에 적힌 “이곳은 중국땅이므로 영국 정부가 마음대로 재개발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이 버티는 명분이다. 그러나 어쩌면 아편중독·미성년자 매춘·범죄의 소굴인 이곳이 현상유지되는 것이 자신들에게 더 이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홍콩-東西가 만나는 곳’이라는 관광안내 책자의 고전적 정의에는 이제 ‘낡은 것이 새 것으로 바뀌는 곳’이라는 문구가 추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지난 2년 동안 영·중 양국이 신경전을 벌여온 신공항 건설 문제가 지난달 합의를 봄으로써 순조로운 교체의 기운은 점증하고 있다. 9월에 실시될 입법평의회 의원 직접선거도 순조로운 교체를 예비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본산임을 자랑하는 영국이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1백50년 홍콩 식민사에 처음으로 실시하는 의원 직접선거에 홍콩인들이 얼마나 참여할지는 미지수이다. 돈버는 데만 열중하는 전통적인-그것 또한 영국이 만든 전통인지도 모른다-정치적 무관심도 무관심이지만 이 대영제국 臣民들은 자신들의 대표자를 직접 뽑는 선거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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