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고 쫓기고…수출 호조는 허구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1.08.2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일시장서 고전, 북방·동남아 등 새 시장에 재고 밀어내…기술개발만이 살 길

  3백40억달러,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2% 증가. 올 6월말까지의 수출액과 수출증가율이다. 89년(2.8%) 90년(4.2%) 모두 한 자리수에 머물렀던 수출증가율이 올해 이처럼 두 자리수로 확대되자 수출회복이 본격화됐다는 견해가 많다. 특히 정부와 정부관련 연구소들은 우리의 수출이 침체의 긴 터널에서 벗어났다고 낙관했다. 정부는 수출 목표를 연초 7백5억달러에서 7백18억달러로 조정했다가 7백35억달러로 재조정했다. 그러나 이 ‘수출회복’이 진정한 회복이냐 하는 데는 논란이 분분하다. 한편에선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불안한 증가’라는 인식도 만만치 않다.

  수출증가율 14%의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두 자리수라는 기치를 부여하기 어려운 요인이 많다. 올해 수출을 주도한 품목은 조선(증가율 89%) 자동차(34.4%) 전자·전기(17.9%) 등 중화학제품들이다. 이 품목들은 지난해 4~6월 사이 노사분규로 생산차질을 빚어 수출실적이 지극히 좋지 않았다. 좋지 않았던 상태와 올해 좋아진 상태의 비교 때문에 증가율 자체는 높게 나타나 상반기 증가율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했다.

  통계상의 문제도 지적할 수 있다. 올 상반기 89% 증가율을 기록한 조선의 경우 올 7월 전까지는 개조선의 경우도 신조선과 같이 취급됐다. 값이 10억달러인 배를 수리했는데 수리비가 배값의 5%만 넘으면 이 배를 새로 만들어 수출한 것으로 간주, 상당한 금액이 허수로 잡힌 것이다.

  지역별 수출실적을 보면 수출회복이 그야말로 ‘불안한 회복’인 것이 드러난다. 상반기 수출을 주도한 시장은 이른바 3배 특수지역이다. 소련 중국 동구 등 북방, 유럽공동체(EC), 동남아지역이다. 북방권은 개방에 따른 수입수요 증가로, 유럽은 지난해 유럽통화가 큰 폭으로 절상된 데다 통일독일에서 급격히 늘어난 수요 덕택이다. 반면 주력시장인 미국과 일본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미국시장에서는 올 상반기 수출실적이 오히려 4% 감소했고 일본에서는 5% 증가에 그쳤다. 줄곧 흑자를 기록해온 미국시장 무역실적이 올해 들어 적자로 반전되었으며 만성적자를 못 벗어나던 일본시장에서는 갈수록 적자폭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시장에서의 고전은 우리 상품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잣대이다. 결국 수출이 늘어난 것은 우리의 경쟁력 제고에 의한 것이 아닌 외적인 요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서는 이미 중국제품에 뒤져
  한국무역협회 崔世馨 상무는 “기존시장에서 우리 제품이 밀려나고 있다. 올해 북방·유럽공동체·동남아지역에 상품수출이 잘 된 것은 그들의 갑작스런 수요와 우리의 시장개척 노력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역도 특수 성격이 강해 한계가 내다보인다. 내후년까지 지속되리라는 전망을 할 수 없다”며 우려한다. 종합무역상사의 한 관계자도 “최근의 수출호조에는 허구성이 있다”면서 미·일과의 경쟁력이 한계에 부닥치자 부득이 신시장으로 재고를 밀어내고 수출액 증가 현상을 설명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다소 견해를 달리한다. 정부는 고질적 문제였던 미국과 일본에 대한 시장편중도가 낮아지고 시장다변화가 촉진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미·일에 대한 편중도는 60%까지 오르다가 최근에는 43% 정도로 떨어졌다. 상공부 李錫瑛 수출진흥과장은 “물론 바람직한 다변화는 아니지만 고임금체제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변화”라고 지적하면서 ‘구조 조정기’라고 말한다. 수출품목을 들여다보면 산업구조 조정기의 영향이 큰 것은 사실이다. 경공업 제품은 이 시장에서 점점 퇴조하고 있지만 중화학공업제품이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수출회복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는 수출채산성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는 데서도 발견된다. 상반기 동안의 물량증가율은 13.1%이나 단가상승률은 겨우 1.0%에 불과하다. 출혈수출이 이루어진 것이다. 원화표시 수출단가 상승률도 88년을 기점으로 높아졌으나 인건비 등 생산비증가율은 더 커져 채산성이 나빠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을 보면 수출기업(매출액 중 수출비중이 50% 이상)의 순이익률도 0.6%(내수기업은 1.7%)에 그쳐 갈수록 낮아져온 것을 알 수 있다. 수출기업을 수출부문과 내수부문으로 또 나눠보면 수출부문 이익률은 0.2%에 불과하다. 더이상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상태다.

  효성물산 趙又鍾 기획부장은 “우리상품은 미국시장에서 거의 경쟁력을 잃고 있다. 고급시장은 일본 등 선진국에 당해낼 재간이 없고 증저가시장은 후발개도국의 추격이 워낙 거세 중간에서 압사당할 지경이다”라고 불안해 한다. 중급품 이하의 제품으로 가격경쟁에 주력하는 미국의 양판점에서 컬러켈레비전 VTR 등 한국제 가전제품들은 진열대 구석으로 몰리다가 이제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소형차시장에서 신바람나는 성과를 올렸던 자동차도 올 들어 5월까지 미국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현지 판매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6%나 줄어든 7만7천대에 그쳤다. 시장점유율도 2.45%에서 2.27%로 내려앉았다. 이는 미국 자동차 시장의 경기침체 탓도 있겠지만 경쟁차종에 대한 가격 경쟁력 우위가 급속히 줄어든 것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현대자동차 엑셀은 올해 기본가격이 90년에 비해 6.3% 오른 6천2백75달러인데 반해 일본차 도요타의 터셀은 14.8% 떨어진 6천4백88달러, 혼다의 시빅은 5.4% 오른 6천9백95달러로 일본이 저가 자동차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 정도 가격차로는 구매동기를 유발하지 못한다.

  일본시장은 더 암울하다. 철강 외에는 제품경쟁력이 거의 없다는 진단이다. 일본시장의 ‘독특한’ 유통구조도 벽이다. 유통조합 등의 단체가 유통시장을 장악, 수출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게다가 일본이 임금이 싸고 투자여건이 개선된 아세안 각국의 현지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의 일본 내 수입을 늘림으로써 우리의 대일수출은 더욱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수출주종품목인 가전제품 섬유제품 화학 기계와 각종 부품류에서 두드러진다. 가전제품을 보면 지난해 우리의 대일수출이 89년에 비해 평균 40% 감소한 반면 아세안 제품은 50% 이상 증가하여 라디오수신기 세탁기 카세트플레이어 컴퓨터 및 주변기기, 카메라 및 관련기기 등에서 시장점유율이 우리 제품을 앞지르고 있다. 대일 무역적자 규모는 우리의 전체 무역수지 예상 적자규모와 맞먹는 90억달러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후발개도국의 추격은 미국과 일본시장에서 중국제품이 우리 제품을 따라잡고 있는 것에서 실감할 수 있다. 미국시장에서 중국의 시장점유율이 88년 1.9%에서 지난해 3.1%로 높아진 반면 한국은 4.6%에서 3.7%로 낮아져 수출격차가 33억달러로까지 줄어들었다. 일본시장에는 역전현상이 벌어졌다. 중국이 4억달러 어치를 더 수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점점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품질은 큰 변함이 없는데 값은 자꾸 오른다. 역설적이지만 그동안 한국의 수출증가를 주도했던 주문자상표 부착방식(OEM), 소품종다량 생산에 의한 비용절감 등의 전략이 이제는 오히려 수출을 옥죄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무역진흥공사 任寅柱 통상진흥본부장은 “수출상품의 80%를 가격, 20%를 품질에서 찾던 전략에서 이제는 가격을 40% 정도로 낮추고 품질과 마케팅의 구성비율을 각각 30%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차 과제는 해외마케팅 강화
  鮮于榮一 아중동부장도 “연구개발 투자비용을 늘리는 기술개발만이 살길이다. 상품을 잘 만드는 것이 1차 과제라면 그동안 거의 없다시피 했던 해외마케팅력을 강화하는 것은 2차 과제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해외마케팅의 부재가 우리상품의 부가가치를 놓이지 못한 큰 요인이 됐다”면서 무역정보의 전산화와 수요예측모형 개발 등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무역업계는 워낙 수출부진이 중증이어서 환율의 실세반영·금리인하 등 단기책으로 응급처치를 한 후 중장기책을 써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단기책이 실효성을 거둘 상황은 이미 아니라고 진단하는 사람이 많다.

  정부는 연간 수출액 7백35억달러 달성은 무난하리라고 보고 있으나 업계는 다소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설사 달성되더라도 내용이 불량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갈수록 세계시장에서 구조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총수출의 67%를 차지하는 미국 일본 홍콩 독일 등 9개국 무역관은 연간 실적이 6.1%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삼성물산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위기때마다 이를 극복하는 ‘알 수 없는 힘’이 나왔으며 업계에서는 수출부진을 타개해나가려는 변신노력이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힌다.

  일본의 아시아경제연구소가 ‘한국경제의 국제화’라는 보고서에서 지적한 것처럼 세계시장의 구조변화, 다국적기업의 ‘글로벌화’에 빨리 대처하지 못하고 기술개발을 게을리할 때 우리가 창조했던 ‘수출신화’는 아주 과거의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