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보험료 인상 밑빠진 독에 물붓기
  • 김상익 기자 ()
  • 승인 1991.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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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수가·수리비 과다…법 개정 등 구조개선 서둘러야

  “얼마 전 차를 고치면서 보험으로 처리했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무성의하게 고쳐놓아 나중에 공업사에서 내 돈을 주고 다시 수리했다. 가입자에 대한 서비스가 이처럼 형편없는데도 무턱대고 보험료를 올리다니 어디 될 법이나 한 소린가.” 8월20일부터 자동차보험료가 평균 9.4% 오른다는 발표에 손수운전을 하는 어느 회사원은 볼멘소리부터 했다.

  자동차보험에는 차량소유자가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책임보험과 임의로 가입하는 종합보험 두가지가 있다. 종합보험의 보험료는 가입하는 보험의 종류와 차종에 따라 다르다. 종합보험의 종목은 △사람을 치었을 때 치료비와 보상금을 지급해주는 대인배상(대인) △ 남의 차나 기물을 망가뜨렸을 때 물어주는 대물배상(대물) △가입자의 차가 망가졌을 때 수리비를 부담해주는 자기차량손해(차량) △운전자·차주 및 그가족이 사망하거나 부상했을 때 보험금을 지급하는 자기신체손해(자손) 등 네가지가 있다. 가입자는 이 중 몇가지를 골라 가입할 수도 있다.

보험료 싼 유한보험 가입자 0.16%
  종합보험은 다시 ‘기본’과 ‘가족한정’으로 나뉘는데 기본은 보험에 가입한 차량을 누가 운전하더라도 보험혜택이 주어지는 반면 가족한정은 직계존비속이 운전할 때만 혜택이 가능하다. 가족한정의 보험료는 기본보다 낮으며 대부분의 손수운전자는 가족한정에 가입하고 있다. 이번의 인상조처로 91년형 엑셀 1천5백cc 자가용 승용차의 보험료(4종목 모두 가입·책임보험료 포함)는 연 64만9천8백40원(가족한정 48만9천20원)으로 올랐다(53쪽 표 참조).

  종합보험 하면 으레 보상액에 한도가 없는 ‘무한보험’을 떠올리게 되지만 정부는 89년 7월1일 보험제도를 개편하면서 대인보험의 보상한도를 6단계로 세분화했다. 가입자들이 ‘능력’에 맞게 가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91년 3월말 현재 유한보험 가입자는 전체 보험가입자의 0.16%에 불과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자동차보험 가입자는 왜 보험료가 낮은 유한보험보다 무한보험을 선호하고 있을까. 운전경력 6년째라는 한 회사원은 이렇게 말했다. “유한보험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다. 그러나 보험료가 낮다는 이점이 있더라도 유한보험에는 들지 않겠다. ‘만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사람을 치어 2억~3억원을 배상해주어야 할 경우 어떻게 되겠는가.”

  게다가 무한보험 가입자에겐 82년 1월부터 시행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라 형사처벌 면책혜택이 주어진다. 즉 중앙선침범 음주운전 교통신호위반 추월금지위반 등 8가지 유형의 사고가 아닌 경우 무한보험 가입자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사망사고는 해당되지 않음).

  89년에 지급된 보험금의 규모를 분석한 결과 2천만원 이하가 전체의 98.2%, 5천만원 이하가 99.6%, 1억원 이하가 99.96%였으며, 1억원을 초과하는 사고 건수는 0.04%에 불과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5천만원짜리 유한보험만으로 배상이 충분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 당국이나 보험업계는 되도록 가입자를 유한보험으로 유도, 지급보험금 부담을 줄이려 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와 보험회사측이 ‘합의’를 보지 못해 보상금 시비가 법정으로 옮아가는 경향이 두드러지고(소송제기율 86년 1.8%→90년 3.1%), 사망자에 대한 보상금으로 최고 5억4천만원을 지급하라는 고액 판결이 나온 바 있어 가입자로서는 유한보험에 들어가 꺼림직할 수밖에 없다.

  지난 5년간 자동차보험료는 2~3년 주기로 올랐다. 86년 9월 8.9% 오른 데 이어 89년 7월에는 운전자 중심으로 요율체계를 고쳐 상당폭의 인상효과가 있었다. 그 후 2년만에 또다시 오른 것이다.

  89년의 요율체계 개편으로 무사고 운전자는 무사고 햇수마다 10%씩 할인혜택을 받아왔다(최고할인율 50%), 한편 사고를 일으킨 사람에 대해서는 사망 또는 중상 4점, 경상 1~3점, 운전자 부상 1점, 50만원 미만 대물사고 0.5점, 음주운전·약물복용운전·뺑소니·차량사용범죄 각 3점 등 점수를 매겨 1점마다 10%씩 보험료를 더 물게 했다(최고 할증률 1백20%), 예컨대 음주운전(3점)으로 보행자를 사망(4점)시켰을 경우 보험료는 70% 할증된다. 또 운전자의 연령별·성별 할증제를 도입, 21세 미만 남성에 대해서는 1백% 할증률을 적용토록 했다.

  이같은 요율체계 개편과 교통사고율 감소(87년 10.9%→90년 7.5%), 종합보험 가입자 증가(88년 3월 1백25만6천대→91년 3월 2백68만8천대) 등으로 최근 3년간 자동차보험회사의 수입보험료는 연평균 31%씩 증가해왔다. 87년 7천8백42억원이던 수입보험료는 90년 1조7천7백29억원으로 3년새 무려 1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그런데도 자동차보험회사들은 적자라고 아우성이다(52쪽 표 참조).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사고율·보험지급액 높아 적자 누적”

  정부 당국과 보험업계에서는 여전히 높은 교통사고율과 과다한 지급액 때문에 적자가 쌓인다고 보고 있다. 90년 현재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 수는 36.3명, 부상자 수는 9백5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사망자 2.6명 부상자 1백84명, 일본은 사망자 1.9명 부상자 1백50명이다(이상 87년 통계). 외국보다 보험금 지급 대상자가 몇십배 많다는 얘기다.

  또 무한보험 위주의 보험제도 아래서는 피해자의 임금상승과 법원의 고액판결 등으로 지급보험금이 급증, 적자폭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지급보험금은 입증할 수 있는 소득자료에 따라 계산되는데 피해자가 봉급생활자가 아닌 경우, 가령 의사나 변호사 또는 자영업자일 경우 세무자료에는 월소득이 1백만~2백만원밖에 안되지만 재판에서는 6백만~7백만원이 인정돼 수억원의 고액판결이 나올 수 있으며, 이는 가입자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보험금 중 치료비와 수리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2%에 이른다는 사실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왼쪽 표 참조).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역마다, 병원마다 약값이 다르고, 연초에 8천원이던 5% 포도당 주사액(5백cc)이 6월에 9천원, 12월에 1만원으로 오른 경우도 보았다”면서 “이는 분명히 의료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의료법 제37조는 “의료기관이 환자 등으로부터 징수하는 의료보수에 관하여는 그 지역을 관할하는 도지사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사고 환자에 대한 의료비는 임의로 적용되어 ‘과잉진료’가 많다는 것이다. 재무부 발표에 따르면 자동차 보험 환자의 의료수가는 일반 의료보험 환자 경우의 약 1.2배(의원)~2배(종합병원)에 이른다.

  수리비는 수리비대로 ‘부르는 게 값’이다. 정비인력이 모자라고 부품공급도 원활치 않은데 수리할 차는 줄을 잇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게다가 90년 현재 보험정비 수가는 시간당 4천6백원인 데 반해 일반 정비 수가는 6천5백여원이어서 보험차량은 ‘찬밥’ 신세가 되기 일쑤다. 현재 보험업계와 정비업계 사이에는 정비수가·과잉수리등과 관련된 분쟁이 잦으나 수리비 사정제도가 안 갖춰져 있고 전문인력도 태부족이어서 대책이 없다.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할 때 이번의 보험료 인상은 수긍할 만한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무한보험 위주의 보험제도, 관련법규의 모순, 의료비 및 수리비의 과다지출 등 구조적인 문제를 손대지 않은 채 가입자에게 보험료 부담만 가중시키는 것은 국민을 ‘봉’으로 아는 게 아니냐 하는 비판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책임보험은 ‘있으나마나’
  있으나마나한 책임보험에 대해서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높은 보험료 부담 때문에 책임보험에만 가입하고 종합보험에는 가입하지 않은 차량이 전체 차량의 20%가 넘는데도 책임보험 차량에 의해 피해자에게 지급되는 보상한도액은 턱없이 낮게 책정돼 있다. 사망 5백만원, 부상 3백만원, 후유장애 5백만원이다. 교통사고도 차를 골라서 만나야 봉변을 면할 형편이다. 정부는 보상한도액을 2배로 올릴 예정이라지만 소비자단체나 학계에서는 작년부터 최저보상하도를 2천만원(사망·후유장애)으로 상향조정하라고 주장해왔다.

  종합보험 주무부서인 재무부는 90년 10월‘자동차보험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한 뒤 관계부처간 개별접촉을 해왔지만 부처간 협조가 미흡하고 이해관계가 얽힌 관련업계간 조정이 안 이루어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책임보험은 교통부, 의료수가는 보사부, 부품공급은 상공부, 교통사고처리특례법 개정문제는 법무부 및 내무부 소관이어서 일이 잘 안 풀리게도 생겼다.

  정부는 최근 경제기획원 재무부 법무부 상공부 보사부 교통부 경찰청 관계자 7명을 위원으로 하는 자동차보험개선대책위원회(위원장 金榮彬 재무부 제1차관보)를 구성했다. 9월중으로 △교통사고를 줄이고 △의료비 및 수리비를 적정화하는 한편 △관련법령을 개정하고 △보험업게의 경영합리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 위원회가 과연 각 부처와 업계 사이의 ‘꼬인 부분’을 슬기롭게 풀어낼지, 그래서 자동차보험을 ‘돈장사’가 아닌 ‘사회보장’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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