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총재 용퇴해야 한다”
  • 김재일 정치부차장 ()
  • 승인 1991.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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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興門 전 국회부의장

  야권 신당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신당의 대표로 이름이 거론되는 고흥문 전 국회부의장(70). 6~10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80년 정치규제에 묶인 뒤 84년 해금된 후에도 정치에 몸담지 않았다. 11년째 정치권 밖에 머무르고 있는 그는 그러나 정치의 파행성이 두드러질 때면 매서운 한마디 훈수를 잊지 않았다. 그는 “정치가 다른 분야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하나도 달라진 것 없이 과거보다 되레 못하다”고 정치의 낙후성을 한탄한다. 정치인 개인의 영달을 위한 변절이 다반사로 이뤄지는 정계에서 그는 그나마 최소한의 양식을 지니고 처신한 몇 안되는 정치 원로 중 한 사람인지 모른다. 그는 고희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건장했고 왕성한 의욕을 보였다.

●야권 신당의 대표설이 나돕니다.
  최근 언론에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데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불신받는 야당들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의 정당을 국민이 바라는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지금 창당이 거론되고 있는 야당은 아닙니다. 야당이 하나 더 생기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정식으로 교섭받은 적도 없고 맡을 생각도 없습니다.

●바람직한 신당은 어떤 모습인가요?
  신민·민주당뿐만 아니라 야권 전체가 대동단결해야 합니다. 대권을 바라볼 수 있는 국민정당의 탄생이 내 생각이요. 국민의 생각일 것입니다. 야당 지도자들은 신당 이야기가 왜 자꾸 나오느냐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신민당과 민주당의 통합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회의적입니다. 논의만 무성하다 잠복하리라고 봐요. 만약 두당이 합쳐진다 해도 김대중씨와 이기택씨가 전면에 나서는 형태가 된다면 이것은 통합이 아니라 일종의 보강이라고밖에 할 수 없어요. 그것 역시 국민이 원하는 정당이 아닙니다. 민주정치는 책임정치예요.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는 김대중씨와 이기택씨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합니다. 통합 야당은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야 해요.

●야당이 불신받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요?
  당내 민주주의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 야당이 한 사람의 독재에 의해 이끌려 왔다면 야당의 맥은 이어지지 못했을 겁니다. 계파안배 설득 표결 승복이라는 야당의 전통은 사라지고 지금은 공천이나 당직을 놓고 돈이 왔다갔다 하는 실정이지요. 당내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선생님 제일주의’에 사로잡혀 있음을 야당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국회의원들도 책임이 커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직언을 하고 난상토론을 벌여 시정하려고 노력해야지 공천에 눈이 어두워 한 사람에게만 잘 보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통합 야당의 대표를 맡아달라고 하면 생각이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정치를 마무리하는 입장에서 언제든지 나설 용의가 있습니다.

●야권 일부 사람들로부터 ‘흘러간 인물’이라는 반응도 나오는데요.
  의당한 이야기지요. 정치가 아편보다 더 무서운 건데 난들 국회의원 안하고 싶었겠어요. 그러나 지난 11년 동안 정치를 안한 것은 나름대로 뚜렷한 정치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당 대표 이야기도 저쪽에서 자꾸 건드리는 것이지 나는 꿈도 안 꾸고 있었습니다.

●여권이 내각제를 추진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포기하지 않고 적당한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대통령이 희망하고 있고 3당합당 때 각 당 지도자들이 각서까지 쓰지 않았어요. 앞으로 여권 핵심부는 내각제 실현을 위한 여건 조성에 노력할 것입니다.

●실현 가능성이 있나요?
  판단하기 어려운 이야깁니다. 야당쪽이 거들면 상당히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다음 달 김대중씨가 유엔에 노대통령과 함께 간다는데 그것을 계기로 통일문제가 계속 거론될 것이고 통서화합·국내통일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내각제 개헌쪽으로 나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통령제와 내각제 중 어떤 권력구조를 선호하십니까?
  문제는 제도가 잘못돼서가 아니라 운영이 잘못됐기 때문이지요. 과거 6·29선언 이전까지는 정치의 지역성 탈피를 위해 내각제를 지지했지요. 그러나 지금은 반대합니다. 국민에 대한 설득력도 명분도 없기 때문이지요.

●노대통령을 만났을 때 어떤 기미를 못 잡으셨나요?
  4월29일 만난 것이 가장 최근인데, “내각제가 심심찮게 거론되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국민이 반대한다고 하니까 못하는 것뿐이지요”라고 대답합디다.

●지난 7월16일 노대통령과 김총재의 청와대 회동 때 두 사람간에 내각제에 관한 묵계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예. 김대중씨는 영리한 사라인데 어떤 여건 변화가 없는 한 한 지역의 대표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면 다음에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를 상상해 보면 답이 나온다고 봐요.

●양김씨 퇴진을 주장해오셨는데. 그분들이 정치발전에 기여한바도 크지 않았나요?
  김영삼씨는 누구 못지않게 순발력이 있고 김대중씨는 두뇌가 명석한 정략가지요. 그러나 그들은 대권욕에 사로잡혀 있어요. 양김 대결은 지겹습니다. 지역 전쟁은 피해야 해요.

●김종필씨는 어떻습니까?
  그가 대권을 생각한다면 보통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벌써 후선으로 물러났어야 할 사람 아녜요. 어떻게 유신을 한 사람이 나설 수가 있나요. 낯이 있어야지.

●정치일정이나 개헌문제 등 정치전망이 예측불가능하고 애매모호한 가운데 여당은 계파별로 세력 다툼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여권이 이렇게 혼란한 적은 없어요. 따라서 정국도 혼란해지지요. 각 정파가 대권·세력 다툼 때문에 국민이 도탄에 빠진 것을 생각도 못하고 있습니다. 6공 들어서 한 것이 무엇입니까. 물가는 올랐고 무역적자는 불어났으며, 경쟁력이 약화돼 경제가 마비된 것밖에 더 있어요. 강도 강간 살인 등 치안이 말이 아니고 서민들은 더 살기가 어려워졌지요. 국민이 불안한 가운데 대권 싸움만 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입니다.

●대통령은 정치를 잘하고 있나요?
  대통령이 잘하면 나라가 이렇게 되었겠습니까. 전부 대통령 책임입니다. 지금이라도 지도자들이 허심탄회하게 국가 장래를 위해서 생각을 다시 가져야 합니다. 21세기의 여건 변화에 따라 국제경쟁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대통령은 유엔가입이나 통일문제를 정권안보나 정권창출에 활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김영삼씨는 대권 경쟁만 할 것이 아니라 민생문제에 대해 좀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김대중씨가 진정 정권교체를 바란다면 야권통합을 위해 용퇴해야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대권을 쥔다 하더라도 어떡하겠다는 겁니까.

●3당통합을 비판해오셨지요?
  70세 되도록 살아오면서 보지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어요. 통합이 아니라 야합입니다. 합당 후에 잘된 것이 없어요. 더 시끄러워지고 불안정해졌지요. 정치·경제적으로 끼친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민자당 대통령후보로 김영삼 대표가 선출될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시나요?
  단정해서 말하기 어렵습니다. 과거의 정리로 봐서 김영삼씨가 잘 돼야지요(그와 김영삼씨는 민주당 구파 출신으로 오랫동안 같은 정치 노선을 걸었다). 그가 대권후보가 되느냐 안되느냐는 내가 아무리 생각이 있더라도 이야기할 수 없지요.

●TK가 다시 집권하리라고 보십니까?
  나라가 바로 되려면 이번에는 TK가 양보해야 합니다.

●개각 때 총리 물망에 올랐고, 또 현 정부로부터 국회의장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인가요?
  6공 들어 국회의장 맡아달라는 부탁을 “뿌리치기가 미안할 정도로” 여러번 받았어요. 그러나 받아들일 수 없었지요. 이유는 야당을 오래 한 사람이 여당으로 가는 변절을 국민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통령과 점심을 함께 하면서 그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고, 결국 ‘꿀단지’를 안 받아들인 겁니다. 총리직 제안은 3당합당 전에 받았는데, 당시 복잡하게 얽힌 역학과 정파간 이해에 대한 조정역할을 해달라는 것이었죠. 그러나 거절했습니다. 총리는 대독이나 하고 재량권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닌가요.

●정치신조는 무엇입니까?
  첫째 국민에게 약속을 지켜야 한다. 둘째 정직해야 한다. 셋째 개인보다는 당이, 당보다는 국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정치에 있어서 협상과 타협을 중시해요. 이것은 조병옥 박사와 유진산 당수의 정치노선이기도 합니다. 야당이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하면 법안을 무더기로 여당에 내주는 결과를 초래해요. 한 조항이라도 난상토론을 벌여 삭제 혹은 삽입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나는 원내 활동을 하면서 주먹쥐고 소리치며 단상 앞으로 뛰쳐나가본 적도 없고, 협상 테이블에 앉기를 마다한 적도 없습니다.

●오랫동안 야당의 사무총장을 하시면서 사쿠라라는 소리도 들었지요?
  사쿠라의 정의가 뭔지 모르지만 결단코 정당인으로서 지킬 도리를 다 지켰습니다. “와”하고 강하게 나가는 사람이 위험해요. 정당의 기밀을 누설해본 적이 없고, 정치자금 마련을 위해서도 대기업과 연관을 맺지 않고 내가 아는 범위의 기업인들에게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건대 박대통령한테서 그 흔한 금일봉도 못 받아봤어요. 74년 진산이 세상을 떠난 후 청와대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울 테니 야당 총재를 맡아 달라”는 오더를 받았는데 “고맙지만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박대통령이 더 존경합디다.

●최근 고부의장께서도 여러 저명인사들과 함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모시고’ 중국에 다녀오셨는데, 신당 대표설이 나도는 마당에 모양이 별로 좋지 않다는 말을 못 들으셨나요?
  항간에 시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어느날 정명예회장으로부터 “나하고 백두산 한번 가자”는 전화를 받고 “좋다. 같이가자”고 했죠. 처음에는 그렇게 많이 가는 줄 몰랐어요. 한번 간다고 했다가 여러명이 가니까 취소한다는 것도 우습고, 순수하게 생각한 거지요.

●14대 총선에 출마하시나요?
  국회의원 출마는 안합니다.

●선거제도 개선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만.
  망국적 금권선거가 판치는 현행 선거제도는 ‘절대로’ 개선되어야 합니다. 완전 공영제로 돈 안 쓰는 선거를 치러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인물도 당선될 수 없습니다. 돈 안 쓰는 선거없이 민주주의도, 나라의 번영도, 올바른 국회의 성립도 절대로 기대할 수 없습니다(그는 ‘절대로’라는 말을 몇 번이나 힘주어 되풀이했다).

●이와 관련해서 대선거구제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
  대선거구제는 지역감정 해소에 도움을 주는 반면 신인들의 출마에 지장을 주는 단점이 있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돈 안 쓰는 선거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대선거구제를 찬성합니다.

●앞으로도 여권에는 참여하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노대통령한테 미안할 정도로 ‘4고초려’를 받았지만 거절할 사람입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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