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외길 감사관의 선택
  • 편집국 ()
  • 승인 1990.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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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상 비밀누설 혐으로 구속된 李文玉씨

전세값 폭등으로 온 사회가 들끓던 지난 2월말경, 〈한겨레신문〉편집국에는 한통의 심상치 않은 전화가 걸려왔다. “재벌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에 관련된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만나서 얘기했으면 합니다. ” 제보자는 연락처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2개월여가 지난 5월11일, 이 신문은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1면 톱을 시커멓게 장식하며 바로 그 제보내용을 보도했다. “23개 대기업 비업무용 부동산 취득실태, 업계로비에 밀려 감사중단.” 다음날 역시 1면톱으로 이어진 보도는 독자들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23개 재벌 계열사 비업무용 부동산 43%추정-감사원 보고서, 은행감독원 1.2%와 큰차.”

 제보자는 첫 보도가 나간 지 3일후인 5월14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연행돼 철야조사를 받은 뒤 바로 구속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혐의는 형법 제127조의 ‘직무상 비밀누설죄’. 직무상 알게된 비밀을 재직중은 물론 퇴직후에도 누설해서는 안된다는 공무원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구속이유였다.

 한국언론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고 하는 이번 사건의 주인공, 문제의 제보자는 감사원 교육실 교수담당관 李文玉씨. 그는 지난해 8월 감사원 2국4과에서 감사관으로 일할 당시 알게 된 사실을 언론에 밝힘으로써 28년에 걸친 공직생활을 끝내고 감옥으로 들어갔다. 올해 나이 50세. 부인(46)과 고등학교 2학년인 딸(17), 중학교 3학년인 아들(15)이 있다.

 李씨의 구속을 보면서 품게 되는 세간 궁금증은 대강 이런 것들이다. 30년 가까이 공무원으로 근무해온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나이 오십에, 더구나 자녀들의 교육비 부담이 갈수록 늘어가는 한창 어려울 시기에 그같은 위험을 무릅쓴 동기가 도대체 무엇일까? 어떤 특별한 목적이 있기라도 한 것인가?

“감사원 상층부가 중심을 못잡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의문들을 이씨 본인의 말로 확인할 길은 없다. 이씨는 구속됐으며 검찰은 수사중이라는 이유로 그의 진술 내용을 자세히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문사에 제보할 즈음 그가 남긴 자필메모와 구속 직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한 그의 심경 등을 종합, 검찰이 구속영장에서 밝히고 있는 ‘범죄사실’과 비교해보면 그 해답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은 이씨의 ‘범행동기’를 ‘인사불만’에 의한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영장에 나타난 ‘피의자 이문옥의 범죄사실’을 발췌해보자.

 “피의자 이문옥은 감사원 감사관(4급)으로 일하며… 제2국 제4과에 소속되었던 자로서, 89년 7월경 상사의 명에 따라 국세청을 대상으로 한 한일개발 등 23개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한 과세실태감사반의 반장으로서… 8월16일부터 감사를 실시하다가, 과잉감사로 물의를 빚지 말라는 주의를 받고…”

 “…9월초경 그때까지의 감사자료를 토대로하여 보고서를 작성, 사본 1부를 보관중 12월29일 감사교육실 교수담당관실로 전보되자 인사에 불만을 품고…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소유에 대한 여론이 악화됨을 계기로… 5월5일 11시경 강남구 소재… 뉴욕다방에서〈한겨레신문〉…에게 …사본1부를 건네주어…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한 자로서 구속치 않으면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자임.”

 과잉감사로 물의를 빚지 말라는 주의를 받은 사실이 있으며 인사에 불만을 품었다는 것이 이씨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이다. 이씨는 그러나 인사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해야 할 ‘감사원이 가야 할 올바른 방향’ 등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감사업무를 공명정대하게 처리하고자 하는 직원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원장·사무총장·사무차장 등이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이 국민들과 감사원 직원들의 인식이다… 이 나라의 정의를 되살리는 데 앞장서는 감사원이 되도록 하기 위해 옳지 못했던 사례를 밝혀 보고자 한다…”

 “…89년 8월경 국세청에 대한 감사로써 법인의 비업무용 부동산이 국세청에 의한 관계법(법인세 세법 등)의 규정대로 규제되고 있는가를 검토하여 법인의 토지투기 문제점을 제시, 토지공개념 도입에 참고함과 동시에 탈루된 세금을 세입조치하는 데 목적을 두고…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를 시작한 지 10일이 되는 날 현재 상태에서 감사를 확대하지 말고 마무리지으라는 사무총장의 지시가…”

 이씨는 여기에서 감사가 상급자의 지시로 중단됐으며 그것은 “재벌의 로비에 의한 것이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영장에 있는 “과잉감사로 물의를 빚지 말라는 주의”라는 대목은 이씨의 주장대로라면 바로 로비와 관련된 부분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잉감사’라는 말이 적용되는 경우에 대해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감사반원이 감사 범위를 일탈하거나 감사를 실시하는 데 있어서 언행이 문제될 때 등”이라며 로비와 관련된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새 보직에 대해 자주 만족 표시
 이 관계자는 또 “문제가 된 감사 당시 재벌의 로비는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감사기간도 원래 예정이었던 14일을 다 채워 중단된 사실이 없다”면서 “다만 감사에 대한 보고서가 완결처리되지 않고 향후 감사를 위한 ‘자료화’로 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완결처리를 시키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 관계자는 “상급자의 판단에 속하는 일”이라고만 언급, 구체적인 설명을 거부했다.

 이씨와 함께 상급자들도 인사조치됐는데 당시 2국장은 국방대학권에 입교하게 됐으며 4과장은 자료담당관으로 발령났다가 올해초 퇴직, 현재는 모 단체의 전무로 있다. 감사원측은 이들에 대한 인사가 과잉감사로 주의받은 사실이 일부 반영된 것이었음을 시인하고 있다. 당시 사무총장이었던 安景相씨는 올해 초 감사원을 떠났다.

 인사에 대한 불만이 이씨가 제보하게 된 결정된 동기였다고 볼 수 있는 객관적 증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씨의 부인에 따르면 그는 교육실로 발령난 뒤 “힘이 없어 밀려났다”라고 말하는 등 ‘좌천’이라고 여기는 모습을 보였고 큰 고민에 빠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 고민은 인사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고 한다. 그것은 “남을 가르치는 재미가 참 괜찮은 것이더군. 우리 아들도 교수를 시켜야겠어”라며 전보된 교수담당관실의 일에 대해 자주 만족을 나타낸 사실로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씨의 한 감사원 동료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라서 감사업무가 뭐 생기는 일도 아니며 일 자체 또한 쉽지 않다. 갖가지 교묘한 방법으로 감추고 있는 비리 등의 증거를 찾아내는 일이란 피를 말리는 작업과 같은 것”이라며 “그래서 감사원내에서는 실적 부담이 없는 내근부서를 오히려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현장의 감사반원들이 “커피나 과일 대접조차 물리치고 물만 마신다”는 것은 피감사기관에서 비교적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얘기다.

 따라서 인사보다는 그의 성격이나 평소의 소신에서 이번 일이 비롯됐을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라고 이씨 주위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광주고 7회인 그의 한 동창생은 “문옥이 하면 생각나는 게 딱 두가지”라면서 “하나는 가난이고 또 하나는 전라도 말로 깡깡(깐깐)”이라는 것이다. 동료들에 따르면 그의 깐깐함은 감사원 내부에서도 소문난 것이라고 한다.

“감사원이 그의 인생의 전부였다”
 이문옥씨의 고향은 전남 나주 왕곡, 가난한 농사군의 집 장남이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보통고시에 합격했다. 62년 총무처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으며 71년 이후부터 줄곧 19년 동안 ‘감사원 사람’으로 붙박이돼왔었다. 외모에서도 나타나듯이 그는 ‘융통성 없는 공무원’ ‘직업감사관’이란 말을 주위에서 많이 들어왔다.

 2년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공무원아파트를 분양받기 전까지는 20여년 동안 종로구 명륜동의 산꼭대기에서 살았다. 이씨의 27평 아파트 안에는 그만한 아파트를 갖추고 사는 중산층에서 볼 수 있는 집기들이 별로 없었다. 대신 딸의 나이만큼 묵은 구형 전화기가 눈길을 끌었다. 집에 가훈이 있느냐고 아들에게 물으니 그는 “분수에 맞게 살자”라고 했다.

 부인의 화장대가 이씨의 책상도 겸하는 듯 화장대 위해 회계학 관련 교과서들이 열댓권 쌓여 있었으며《장길산》《월간 다리》같은 책들도 눈에 띄었다. 직장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쓰고난 전산용지 뒷면을 회계학 연습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부인의 말로는 이씨가 공인회계사 시험에 몇번이나 도전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는데 아직도 그 집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사원에는 공인회계사, 토지평가사 등의 고급 자격증을 갖고 있는 전문인들이 많다.

 이문옥씨가 평소 책읽기, 특히 업무와 관련된 공부를 열심히 했고 성실한 근무 자세를 보였다는 사실은 여러 군데서 발견된다. 고졸출신임에도 승진시험 등을 통해 동기생에 비해 진급이 늦지 않았으며, 수년간의 노력 끝에 야간대학을 거쳐 최근에는 특수대학원까지 마친 점이 그런 것이다. 지난 78년에는 돌아가면서 받는 것이긴 하지만 대통령표창도 받았다. 이씨의 모든 노력은 감사원 업무와 관계되어 있는데 부인은 그것을 “감사원이 그의 인생의 전부였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청내에서 감사원 동료들을 만나 이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음을 건네면 그들은 대개 “말이 없고 강직한 사람이다. 그 정도로만 해두자. 더 이상은 곤란하다”며 말꼬리를 감춘다. 그러나 그들중에는 남이 안보는 곳에서 이씨 집으로 격려전화를 해준 사람이 많다고 한다. 격려전화의 내용은 “너무 어려운 일을 했다” “남이 못하는 일을 해낸 용기가 존경스럽다” 등이라고 이씨의 부인은 전했다.

 이문옥씨는 자신의 글에서 밝혔듯이 “감사원이 이래선 안되겠다”는 마음, 감사원의 파행적 운영을 자기 한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보겠다는 충정에서 이번 제보를 감행한 것으로 동창생들은 믿고 있다. “그것을 더욱 촉발시켰던 것은 아마도 재벌의 로비를 직접 몸으로 느끼게 된 일이었던 것 같다”고 그를 최근에 만난 한 친구는 밝히고 있다.

보도된 다음날 스스로 제보사실 밝혀
 이씨는 최근 이 친구와 만난 자리에서 “추악한 재벌의 힘에 의해 나라의 마지막 양심이어야 할 기관조차 아무런 저항 없이 주저앉는 것을 보고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절망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이 친구는 이 얘기를 전하면서 이문옥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시대의 참 공무원이라고 할까, 그런 존경심으로 그를 쳐다보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그가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많다. 그 나이에 그렇게 타협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인지…”

 이씨는 자신의 행위가 소신에 의한 것임을 입증하듯, 제보 초기에서부터 기사화된 뒤까지 떳떳한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쓴 흔적들을 곳곳에 남겨놓고 있다. 이씨의 제보를 받은 뒤 〈한겨레신문〉측은 2~3개월 동안 자료확보 등 내용의 신빙성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몇번씩 신분상의 불이익 가능성을 경고했지만 그때마다 이씨는 “각오하고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운명’의 기사가 보도된 5월11일부터 이씨는 휴가원을 내고 마음을 정리했다. 일요일인 13일, 가족들에게 ‘통보’할 시간이 되자 마침 입원한 친척의 병간호를 하고 있던 부인에게는 전화로 “시골에 잠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들과 딸을 조용히 안방으로 불렀다. “아빠한테 무슨 일이 있을 것 같다. 나라와 감사원을 위해 한 일이다… 충격받지 말고 엄마 잘 위로하도록 해라. 절대 기죽지 말고…”

 다음날 출근한 이문옥씨는 감사원 보고서를 〈한겨레신문〉에 제보한 사람은 자신이며 “감사원이 올바른 감사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제보의 이유”라고 동료와 상급자에게 스스로 밝혔다. 이날 오후 6시쯤 청내 감찰실로 이씨는 소환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대검 중수부로 연행돼 ‘기밀’을 누설한 죄과에 대해 밤새워 조사를 받았다.

 16일 아침 그는 두 손을 쇠고랑에 넣었다.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승용차에 오르기 전, 사진기자들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의 얼굴은 초췌했으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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