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누설’ 범위 불분명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90.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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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알 권리’와 상충

‘감사관 구속’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초래한 문제의 제보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크게 두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감사원이 재벌그룹 산하 23개 대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해 감사를 실시하다 외부 입김으로 갑자기 감사를 중단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재벌의 부동산투기가 공식발표된 것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라는 점이다.

 李文玉씨가 제보내용을 증명하기 위해 〈한겨레신문〉에 제시한 자료 사본의 공식명칭은 ‘법인의 비업무용 부동산 취득에 대한 과세실태 實地감사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9월 감사원 제2국 4과 감사반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와 현장조사를 토대로 작성했다. 여기에는 고위 간부의 지시로 감사를 갑자기 중단하기 전까지 재벌그룹 소속 23개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취득에 대한 국세청의 과세 실태를 감사한 결과가 수록돼 있다. 23개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 3천1백23만평 가운데 43.3%인 1천3백53만평이 비업무용이라는 놀라운 사실도 바로 이 보고서에 담겨 있다.

“오차 감안해도 20%는 될 것”

 이 보고서에 의하면 기업들은 허가기준을 초과한 면적의 토지를 보유하거나, 형식상 용도별로 부동산을 취득한 후 방치 혹은 임대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동아건설과 희성산업은 이중 충남 남포면 양항리, 경기도 이천군 해월리 땅을 지난 10일 발표된 ‘10대 재벌 부동산 매각대상’에 포함시켰다)

 물론 43,3%라는 수치 자체를 모두 신뢰할 수 있는 통계로 보기는 힘들다. 검찰에서는 조사 실시 및 보고서 작성기간이 14일밖에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분류기준도 조사대상인 23개 기업의 법인세 과세자료를 근거로 했기 때문에 은행감독원의 자체 기준과는 다르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씨 또한 제보 당시 “43.3%가 최종적인 것은 아니며 마지막 확인과정에서 업무용으로 판정될 땅도 있겠지만 비업무용 부동산의 비율이 엄청나게 높은 것은 사실”이라고 토를 달아 약간의 유동성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같은 오차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부동산을 친인척·임직원 명의로 위장분산 소유하는 관행에 비춘다면 재벌들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율이 1.2%보다는 높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씨도 검찰에서의 1차조사 때 “그렇다 하더라도 재벌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비율은 20%는 될 것”이라 주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재벌 부회장이 조사중단 로비”

 재벌의 부동산투기 확인과 아울러 더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감사가 대기업 관계자들의 강력한 로비에 의해 중단됐다는 부분이다. 이씨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감사반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기업들의 비업무용 부동산 비율이 은행감독원의 공식발표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해당기업과 부동산 소재지에 조사반을 투입, 현장조사를 벌이던 중 상부로부터 갑자기 감사중단 지시를 받았다. 이에 따라 그때까지의 조사결과를 보고서로 작성, 비업무용 부동산 판정기준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등 6개항을 건의했다. 그러나 이 역시 상부지시에 의해 ‘법인의 부동산투기는 관계기관의 공식적인 발표보다 훨씬 심각하지만 토지공개념 도입 및 세법개정이 추진중이므로 차기 감사자료로 한다’는 의견이 붙여진채 감사 자체가 사실상 백지화됐다.”

 감사반의 조사가 중단된 시기는 삼성전자·삼성생명 등 삼성 소유 부동산을 현장조사하던 때였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씨는 “어떤 재벌의 부회장이 감사원 고위층을 만나 조사중단을 강력히 요구한 뒤 감사를 더 이상 확대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감사반을 철수시켰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런 이씨의 주장이 과연 수사과정에서 명백히 가려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씨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부와 재벌의 도덕성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상습 부동산투기꾼 명단 발표’ 등 정부가 부동산투기 근절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던 때에 ‘일’이 터졌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 때문에 이씨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전격 구속시킨 것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검찰쪽에서는 이씨가 평면비교가 부적절한 두 기관의 조사결과를 언론기관에 누설함으로써 정부와 은행감독원의 공신력에 손상을 끼치고 해당 기업의 평가에도 피해를 주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야당이나 재야쪽에서는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재벌의 부동산투기를 알린 것은 국가 전체에 이익이 되는 만큼 처벌할 이유가 없다는 정반대 시각을 가지고 있다. 또 보고서가 법적으로 ‘비밀’로 분류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벌의 비리까지 비밀로 확대해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들은 이외에도 얼마전 KBS에 대한 감사결과가 사전에 보도되고도 별문제가 되지 않고 넘어간 점을 상기시키며 법집행상의 형평을 촉구하고 있다.

 이처럼 이씨의 구속은 제보 내용으로 인한 파문에 이어 ‘국민의 알 권리’와 ‘정부의 비밀보호’ 중 어느쪽이 우선하느냐 하는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관련기관·단체의 입장 및 성명

 검찰 입장 : 피의자 명의로 작성한 보고서는 14일간이라는 단기간의 조사에 의한 부실한 것으로 부정확하다. 더구나 피의자가 행한 23개 기업에 대한 감사는 88년 12월31일을 기준으로 법인세법 시행규칙에 기하여 행한 것이나 은행감독원이 행한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실태조사는 은행감독원 자체기준에 따라 5백20개 기업에 대해 실시한 것이다. 기준이 틀리기 때문에 양쪽 자료의 평면비교는 부적절하다.

 은행감독원 : 우선 양쪽 기관이 선택한 조사대상과 기준이 다르다. 감사원은 기관의 성격상 혐의가짙은 기업의 비업무영 부동산을 중심으로 감사를 했을 가능성이 짙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비업무영 부동산 비율이 나온 것 같다. 이런 점들 때문에 양기관의 자료는 단순비교하기가 곤란하다.

 평민당 金台植대변인 논평 : 감사원의 파행적 운영을 막기 위해 진실을 국민 앞에 밝히려 한 이문옥감사관의 구속은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정부 태도의 허구성을 여실히 증명한 사건이다. 검찰은 소신있게 공무를 수행해온 이문옥씨를 즉각 석방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짓밟으려는 반민주적 처사를 즉시 중단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

 민주당(가칭)張石和대변인 논평 : 우리 당은 정부가 이문옥감사관을 구속한 것과 관련, 이를 소신껏 복무하려고 노력하는 공무원에 대한 정부의 일대 협박으로 규정하며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더욱이 ‘특명사정반’까지 만들어 공직자·재벌의 비리를 쇄신하겠다고 공표해온 정부가 이감사관을 구속한 것은 민자당 정권의 이중성을 입증하는 실례인 것이다.

 전민련 朴祐燮대변인 논평 : 이서기관은 공직자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정부조직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사실 은폐에 항거, 감사보고서를 전국민에게 공개한 것이다. 공무원이 국민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언론기관에 공표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이자 의무이다. 盧정권은 지금이라도 재벌의 부동산투기 실태를 공개하고 이서기관을 즉각 석방하라

 경실련 성명 : 금번 사건 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과 비견되는 것으로 이는 정경유착의 실상을 드러내고 정부 당국의 사정 업무의 도덕적 권위를 실추시킴으로써 현정권의 존립 정당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킨 사건이다. 정부는 이감사관을 즉각 석방시키고 재벌의 토지투기 근절에 대한 보다 철저하고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경실련은이감사관의 변호를 위한 변호인단을 즉각 구성함과 아울러 이감사관의 구속과 정부의 재벌에 관한 정보 은폐기도를 규탄하는 범시민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한국기자협회 성명 : 이문옥감사관 구속이 언론의추재·보도 자유 및 국민의 알권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편파적 법집행임을 지적하면서 이감사관의 즉각 석방 및 사직당국의 공정한 법률운용을 강력히 촉구한다. 기협은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소유 실태가 결코 국가기밀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할 사실이라고 확신한다. 또 지난 2월의 KBS수당지급에 관한 감사원 감사 내용의 사전유출과 비교해 이번 이감사관 구속은 사직당국의 국가기밀 기준이 국가안보보다 정권안보나 재벌의 이익보호를 앞세운 편파적인 것임을 드러낸 계기가 됐음을 지적한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성명 : 이감사관 구속은 현정권이 특별사정반까지 구성, 재벌의 부동산투기를 근절시키겠다던 의지뿐 아니라 정권의 도덕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사건이다. 우리는 또 이감사관의 구속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정신에 정면 위배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재벌의 부조리를 비호하고 언론인의 취재원 접근 또는 양심적인 공무원들의 행위를 막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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