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척사업 한다면서 땅사재기 웬말
  • 이해찬 (국회의원··평민) ()
  • 승인 1990.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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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간척지 주변 땅값 83년보다 1백배 뛰어…매립허가, 정경유착 없인 불가능

성경의 창세기는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라는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축원이 그 주제로 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사회에서는 땅 한뼘이 없어서 목숨을 끊는 세입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재벌들의 땅투기가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재벌들은 어떤 방법으로 땅을 사들이고, 얼마만한 이익을 얻는 것일까? 필자가 지난 1월부터 조사하고 있는 재벌들의 부동산투기 실태의 한 사례만 간단하게 소개한고자 한다.

 충남 서산군 대산면 독곳리와 대죽리는 7~8년전만 해도 인적이 드문 어촌이었다. 앞바다에서 농어·송어·대우렁이를 손쉽게 잡을 수 있고 개펄에서는 고동·굴·바지락을 캐고 해안가 모래밭에는 땅콩을 심어 먹었다. 이 조그만 어촌에 투기의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것은 83년 가을부터였다. 당시 1평에 1천원 정도였던 바닷가의 임야가 지금은 15만원을 웃돈다. 무려 1백50배 가까이 올랐다.

임직원들도 정보 빼내 투기에 가담

 필자가 서산군 등기소에 비치된 등기부등본을 통해 확인해보니 현대그룹의 임직원들이 83년 7월부터 바닷가 주변의 땅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필자가 확인한 것만 해도 13만평이 넘는다. 앞으로 더 조사해야 자세히 밝혀지겠지만, 이들은 배후도시 예정지 일대에서도 막대한 평수의 토지를 매입해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땅을 사들인 임직원명단 중에는 김광명·박재면·이현태씨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현태씨는 현재 현대그룹 기획실장으로, 재벌소유 부동산 매각처분 책임을 맡고 있다. 김광명씨는 현대건설 부사장으로 8만8천3백29평을 사들였고, 박재면씨는 현재 분규가 일고 있는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3만2천42평을 사들였다.

 이처럼 인근 임야를 매입한 뒤 84년 12월에 1백3만평의 바다매립허가를 받았다. 이 지역의 땅값이 폭등하기 시작한 것은 매립허가 직후부터였다. 그리고 89년 서해안 고속도로가 건설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땅값은 더욱 올랐다. 현대가 사들일 때는 1천원 정도 하던 산 값이 요즘엔 10만원 정도 한다. 1백배가 오른 셈이다. 현대측에서는 간척지 매립을 위한 흙을 되도록 가까운 곳에서 가져와야 매립원가가 싸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간척지 매립용 ‘흙으로’사용한 것은 10%도 안되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현대가 임직원 명의로 사들인 땅의 30% 정도는 현대그룹의 회사와 관계없이 임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사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임직원들이 회사땅을 사들이면서 회사의 개발정보를 미리 알고 자기 친척에게 정보를 제공하여 개인적으로 투기에 가담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현대그룹이 간척지를 매립해서 얻은 개발이익도 매우 크다. 당시의 공유수면매립법에 따르면 시공자는 총사업비, 이윤(10%), 그리고 은행대출이자 등등을 소요비용으로 인정받아 이 금액에 해당하는 간척지 땅을 소유하고 나머지는 국가에 귀속시키는데 이 귀속토지에 대해서도 우선 매입권을 갖는다. 현대가 매립한 이 지역의 매립단가는 평당 3만원 정도로 평가됐는데 당시 임야가격은 약 5만~10만원 정도였으므로 수백억원의 개발 이익을 남긴 것으로 산정된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매립권을 얻는 것 자체가 거대한 이권으로 통한다. 현재 이 지역 일대에는 현대그룹만이 아니라 선경·삼성·극동정유그룹 등이 매립권을 얻어 참여하고 있다.

현대측 “세금 물고 ‘업무용’인정받았다”

 문제는 83년 가을부터 바닷가 땅을 대량으로 매입해놓고 불과 1년 이내에 바다매립허가를 얻은 것 자체가 정경유착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또한 83년에 매입한 땅이 현재까지도 임직원 명의로 되어 있다는 것은 기업활동에 꼭 필요해서 사들인 땅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특히 정부의 5·8 부동산투기 억제대책이 발표된 다음 현대그룹이 서산 일대의 땅 21만7백34평을 팔겠다고 발표한 사실만 보아도 이 땅이 비업무용이었음은 자명하다.

 그런데 관계당국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현대건설이 임직원 명의로 비업무용 땅을 서산에 많이 갖고 있다는 투서가 청와대에 제출되어 89년 6월경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실시했고, 세금도 추징했으나 그 결과는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 회사측의 주장에 따르면 89년 6월 증여세와 양도소득세를 내고 업무용토지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90년 4월 현재까지도 임직원 명의로 되어 있는 토지를 국세청이 어떻게 업무용으로 인정할 수 있었는지, 또 세금을 어떤 명목으로 얼마나 거두었는지 하는 것 등이 앞으로 밝혀져야 할 일이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지난 4월16일 국회에서 서산지역 땅투기 실태를 지적하고 난 뒤 4월 30일경에 등기부등본을 다시 확인해보았는데 4월20일 현대그룹 회사법인 앞으로 등기 이전한 경우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매입한 뒤 미등기한 사례가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정경유착과 땅투기가 겹쳐 광란을 일으킨 서산군 대산면 일대를 조사중인 필자의 심경은 한마디로 ‘몹쓸세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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