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자의 땅놀음 이제 잡히려나
  • 편집국 ()
  • 승인 1990.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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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말겠지…” 강력조치 나와도 투기꾼들 코웃음

세금 많이 물려 “땅 가지면 손해” 인식 심어야
 땅투기는 잡힐 것인가? ‘재계의 6·29선언’이라는 ‘5·18조치’가 부동산투기를 뿌리뽑는 계기가 될 것인가, 아니면 한차례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으로 그칠 것인가?

 이달초 부동산투기 억제대책 발표후 10대 재벌그룹은 정부의 종용에 마지못해 과식한 음식을 토해내듯 1천5백만평이 넘는 부동산을 팔겠다고 내놓았다. 정부는 중소기업에 대해서도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을 강력하게 권유하고 있어 부동산 처분조치는 전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고단위 처방’ 혹은 ‘초강경 카드’로 불리는 이번 조치 발표 이후 정부의 몸놀림을 보면 일견 부동산투기 근절의 강한 의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부동산 관련제도는 어느 면으로 보나 완벽하다. 다만 아직까지 정책이 일관성있게 지속적으로 추진되지 못했기 때문에 정부가 신뢰를 얻지 못했고, 정부정책은 부동산투기 억제에 기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통치권 차원에서 시행되는 5·8대책과 후속 조치들은 이 나라에서 부동산투기를 영원히 잠재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그런가? 정부 관계자들이 자신있게 말한 것처럼 재벌기업과 금융기관의 비업무용 땅 처분은 계획대로 추진돼 6개월내에 엄청난 물량의 토지가 부동산시장에 쏟아져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된다고 해서 망국병으로 일컬어지는 부동산투기는 과연 잡히는가?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건너편 빌딩과 지하도에 즐비한 부동산중개업소들은 대부분 일손을 놓고 있고 일부 업소는 문을 닫았다. 말을 붙이지 못할 정도로 부동산소개업자들은 하나같이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들이다. 역삼동에서 부동산업을 하고 있는 ㅈ씨는 이번 조치가 부동산업계에는 ‘계엄령’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부동산경기의 침체가 꽤 오래 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부동산소개업자들과 차그차근 이야기해보면 하소연과는 달리 당국의 거센 기세에 잠시 움추러들었을 뿐 느긋하게 관망하는 상태임을 어렵잖게 읽을 수 있다. 조치를 입안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많은 토지를 가지고 있는데 단속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오래 가겠느냐는 것이 그들의 반응이었다. 김양석 중앙부동산연구소장은 요즈음 부동사거래가 중단된 이유로 실수요자들의 ‘심리적 위축’을 들었다. 그는 지방권에서는 1~2년 동안 땅거래가 얼어붙을 것이나 도시권에서는 3개월쯤 지나 다시금 정상거래가 이루어져 투기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지도급 인사의 부도덕성 한심”

 그러나 앞서 언급한 사람들은 주로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개업자들이다. 전문투기꾼을 상대하고 있으며, 어떤 의미로는 그 자신도 투기꾼인 ㅂ씨의 말은 듣는 이를 당혹케 했다. 한마디로 투기꾼들은 이번 일련의 조치들에 대해 “콧방귀도 안 뀐다”는 것이었다. 분위기에 위축돼 땅투자를 중단한 사람은 10년 혹은 20년간 4천만~5천만원을 모은 실수요자들이지 20억원 정도를 들여 1만여평을 사들이는 투기꾼들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실제로 그는 며칠 뒤에 자기의 고객 중 지체 높은 사모님들을 모시고 충남 태안반도의 ‘괜찮은 땅’을 보러 가기로 되어 있다고 귀띔했다. 물론 자신의 이름으로 대리계약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조치가 ‘엄포용’이라고 했다. 강경조치를 잇따라 발표하고 단속을 계속하면 부동산거래가 틀림없이 위축될 것이나 그런 조치와 단속이 지속될 수 없다고 믿고 있는 듯했다. “정부가 정작 부동산투기를 잡을 생각이 있으면 이렇듯 떠들 필요가 없어요. 구청 지적계와 등기소에 거래사항이 다 나와 있으니 가만히 앉아서 불러들여 조지면 그만인데…
어느정도 잠잠해지면 땅값이 상당히 오를테니까 이렇게 시끄럽게 단속할 때가 사실 땅투기의 적깁니다.” 그는 투기의 기준을 최소한 1평에 1만원 이상하는 땅 4만~5만평과 10만원 정도 하는 땅 1만평 이상으로 잡아 4억원 이하는 아예 투기로 보지조차 않았다. “고위공직자들이 노후대책으로 땅 큰 것 한건 정도 사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땅이 나오면 모조리 차지하려는 것이 문제예요.”

 그 역시 땅소개를 하면서 재미를 많이 봤다고 했다. “절대로 막연하게 땅을 사지 않아요. 높은 양반이 어느 지역 땅을 사고 싶다고 하면 그 땅을 알선해주고 나는 바로 옆 땅을 사는데 그것이 가장 안전한 투자방법이지요. 뭔가 있으니까 그 사람이 그곳 땅을 살 것 아니겠어요?” 몇달 전에는 어느 높은 사람이 경기도 ㅇ군에 있는 ‘전혀 쓸모없을 것’ 같은 산을 사달라고 해서 알선해주고 자신은 바로 근처의 야산을 샀는데 한달 후 호텔 신축허가가 떨어졌다고 한다.

 그는 며칠내에  어떤 섬에 갈 계획을 잡아 놓고 있다고도 했다. 그곳 땅이나 아니면 허술한 집이라도 사겠다는 것이다.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그 섬이 6월말 국제관광지로 지정돼 개발된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그의 친구는 투기혐의로 어느 지방 수사당국에 붙들려 들어가 조사를 받던 중 담당자로부터 ‘좋은 땅 하나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그후 그는 ‘좋은 땅’을 한건 소개해주었다. 지금도 두사람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나 자신도 부끄럽지만 땅투기에 관한 한 지도급 인사들의 부도덕성은 한심스러울 지경”이라고 한탄하며 실태가 이러니 어떻게 투기가 잡히겠느냐고 ㅂ씨는 반문했다. 만일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땅투기의 주범은 역시 재벌이다. 땅사재기에 있어 재벌은 가히 맹목적인 팽창의지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국토는 넓고 투기할 땅은 많다’는 식으로 그들은 닥치는 대로 토지를 긁어모았다. 86년 이후 재벌들의 부동산소유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89년말 30대 재벌기업의 보유 부동산은 1억 4천여만평으로 대구시 면적보다 크다. 장부가액 기준으로는 13조1천3백90억원이다. 이는 86년말과 비교해 면적은 13%, 금액은 2배로 불어난 것이다.


자금난 호소 재벌들. 땅사재기에 총력

 재벌의 땅사재기는 특히 삼성 현대 대우 럭키금성 한진 등 5개재벌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데 이들의 보유부동산은 30대재벌 보유 전체 부동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운 때일수록 재벌의 땅투기는 기승을 부렸다. 경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했던 지난 한해동안 재벌들은 겉으로는 절박하게 자금난을 호소하면서 뒤에서는 땅사재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30대재벌은 지난해 모두 2조6천1백23억원어치의 부동산을 사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서류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재벌들은 부동산 취득과 관리를 전담하는 부서를 두어 전국 각지의 땅을 사들인다. 그들이 땅을 매입할 때 즐겨 사용하는 것은 회사직원 또는 현지주민 명의로 가등기를 설정, 취득하는 방법이다. 그 때문에 재벌들이 보유하고 있는 토지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밖에서는 알 길이 없다. 서울시민의 72%가 단 1평의 땅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땅소유 편중이 대다수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는 것은 당연하다.

 운영자금이 딸리면 대기업은 땅을 산다. 5억을 들여 평당 1천원짜리 땅을 50만평 사면 이 땅을 담보로 50억원의 융자를 뽑을 수 있다. 그 땅에 ‘××자동차공장 부지’라는 팻말을 박으면 그 일대 땅값이 한달만에 10배 이상 뛴다. 이렇게 되면 대출해준 은행에서도 좋아한다. 충남 서산지역 땅값은 매립 전보다 1백배가 올랐다. 재벌들은 업무용 땅으로 위장하여 매입, 보유하는 방법도 애용하고 있다. 그밖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재벌들은 끊임없이 그들의 욕심을 채왔다.

 땅투기는 모든 사회·경제문제의 뿌리다. 부동산투기를 뿌리뽑는다는 것은 이 나라가 당면한 많은 문제의 근본원인을 제거한다는 말과 같다. 땅투기로 부동산가격이 상승하면 토지소유만으로 앉아서 돈버는 사람의 불로소득 규모가 커진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심각한 부의 불균형이 심화된다. 또한 물가를 뛰게 해 서민의 생활수준을 저하시킨다. 땅값이 오르고 집값이 오르면 중소 영세업체의 공장 임대료가 오르고 사무실 임대료가 올라 제품의 생산비가 높아진다. 집세가 오르면 가게 임대료도 올라 소비자가 구입하는 물건값 역시 오른다. 임대료가 오르면 모든 물가가 오르는 것이다.

부동산투기는 사회불안의 주범

 부동산투기는 사회불안의 주범이며 노사분규의 원인이 된다. 불로소득자의 과소비를 부추길 뿐 아니라 서민들의 내집마련의 꿈은 점점 멀어진다. 근로자들은 상대적인 박탈감 속에 근로의욕이 떨어진다. 기업가들은 시설투자보다는 몇배 높은 수익을 찾아 부동산투기에 눈을 돌리게 되니 기업의욕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부통산투기는 지하경제의 온상일 뿐 아니라 돈의 흐름을 왜곡시켜 국민경제를 멍들게 한다. 결국 부동산투기는 돌고도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해 사회·경제적인 난문제를 확대재생산한다.

 토지소유의 극심한 편중과 막대한 불로소득규모는 통계가 뒷받침한다. 우리나라의 토지소유자 1천80만명 가운데 상위 5%(54만명, 전체국민의 1.3%)가 전체 민유지의 65% 이상인 1백 44억5천만평을 소유하고 있다. 일제하에서도 상위 5%가 소유한 토지면적은 40%정도였다. 지금은 그때보다도 토지소유 편중이 더욱 심해진 것이다. 경기도 땅의 28%, 수원 땅의 23%, 그리고 안산 땅의 35%를 서울에 살고 있는 부동산 투기꾼들이 소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땅값 상승은 어떤가? 85년 7%, 86년 7.3%로 다소 완만하게 오르던 땅값은 87년 14.7%, 88년 27.5%, 그리고89년에는 32%로 크게 뛰었다. 87년 대통령선거와 88년 총선거시 각종 선심용 개발계획 발표가 땅값 상승을 부채질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 땅값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급격히 발돋움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매년 지가상승을 통해 재벌 등 토지소유자들이 얻은 불로소득은 85년에 10조9천억원으로 국민총생산(GNP)의 15%를 차지했던 것이 89년에는 88조3천억원으로 국민총생산의 64%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천만 근로자 임금 총액 50조1천4백원의 1.8배에 해당한다. 토지개발공사에 의하면 불로소득 규모는 이보다 더 커서 88년 중 자본이득 총액이 2백11조7천억이나 된다.

 이렇듯 폐해가 큰 부동산투기를 잡는 길은 도무지 없는가? 최근 10년동안 정부는 10차례가 넘게 부동산투기 억제대책을 내놓았다. 대강 살펴보면 80년 9월 계열기업 및 소유부동산 처분을 위한 대통령 특별지시, 82년 12월 부동산투기 근절 종합대책, 85년 5월과 88년 3월의 부동산 종합대책, 89년 4월 분당·일산 신도시 건설계획, 지난 4월 부동산투기 억제대책 등이다.

투기단속 지난 뒤 어김없이 올라

 그러나 정부발표가 있으면 단속이 뒤따르고 또 얼마 지나면 어김없이 부동산가격은 뛰었다. 왜그런가? 많은 전문가들은 정부나 국회가 부동산투기를 근절할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고 있다. 정치인을 비롯한 기득권층이 투기를 극대화시켜 불로소득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구심은 토지공개념 입법과정에서 어느정도 사실로 드러났다.

 토지공개념 연구위원회 4분과 위원장을 맡았던 서울대 홍원탁교수는 “땅투기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있는데 그 방법을 어떻게 하든 다 피해 가고 있다”고 정부정책을 비판했다. “이번 대책도 너무 즉흥적이고 전시적이며 산발적·초법적 행정조치에 불과하다. 일시적인 충격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투기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땅투기를 잡기 위해서는 우선 왜 투기가 일어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간단하다. 딴 곳에 투자하는 것보다 이익이 몇십배 높기 때문이다. 도덕성을 차치한다면, 같은 자본을 들일 바에야 가장 높은 수익률을 쫓는 것이 기업인의 생리일진대 이런 상황에서 땅투기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현재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땅투기에 관련된 제도를 바꾸는 길밖에 딴 길이 없다. 그것이 땅투기를 막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땅을 팔아도 별 재미를 못 보고, 보유하고 있자니 고통만 가중돼 땅투기의 가치가 없어지도록 세제를 고쳐야 한다고 홍교수는 주장한다.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토지초과이득세도 전시효과에 불과할 것이라고 홍교수는 내다봤다. 반발이 심해 실제 적용대상은 극히 제한 될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정부가 땅투기를 억제할 생각이 있으면 우선 양도차익뿐만 아니라 보유에 대해서도 중과세해야 한다. 또 실효세율을 높이고 등기돼 있지 않으면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토지거래·소유실명제가 실시돼야 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정부와 정치 지도자들의 개혁의지가 얼마나 확고한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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