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땅 넓게 쓰는 암스테르담
  • 암스테르담 · 진철수 유럽지국장 ()
  • 승인 1990.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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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유지가 80%, 1백년째 장기임대제도 운영… 개발이익은 지역사회로 환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시에서 땅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소유주’는 시청이다. 위성도시의 신설, 공업단지의 설치 등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시정부가 농지등을 사들여 필요한 사람에게 장기임대계약을 해주고 있다. 따라서 개발계획에 따른 땅투기는 없다. 인구 70만 정도인 암스테르담의 면적은 2백10㎢. 시 소유는 그중 약 80%이며, 사유지 중에는 공원 등 임대대상이 될 수 없는 땅도 상당히 많다.

 네덜란드 말로 ‘엘프팍트’(erfpacht)라고 하는 이 장기임대제도가 채택된 것은 1백년전인 1890년. 그 전에는 운하를 새로 팔 때 미리 정보를 입수한 상인들이 운하 연변의 땅을 사들여 떼돈 버는 사례도 있었다. 19세기 후반은 암스테르담의 인구가 급증한 시기였다. 산업혁명이 일어나 인구가 도시에 집중된 것인데, 이로 인해 서민들의 주택사정은 매우 나빠졌다. 부유층은 민중봉기가 두려워 근로자들의 생활환경 개선에 관심을 돌렸다. 프랑스혁명 이래 개인 재산권의 존중이 강조되어왔지만 암스테르담 시정부는 시유지의 확보에 바탕을 둔 장기임대제도를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암스테르담시 토지행정청의 책임자 한스 헬손 박사는 계획과 협동을 중시하는 네덜란드인의 전통이 이러한 제도와 직결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중세기부터 바다와 싸워 토지를 확보했다. 둑 하나를 쌓는 데도 지역사회의 모든 사람이 의논해서 계획하고 협력했다. 그러한 계획과 협력의 전통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왔는데, 시가지 확장을 위해 17세기에 파놓은 반월형의 운하들도 네덜란드인들의 놀라운 계획성을 말해주는 좋은 예로 꼽히고 있다.

‘진보정당’이 의회 장악, 토지말썽 없어

 암스테르담의 토지제도는 지난 1백년 동안 약간의 수정을 거쳤지만 큰 차질없이 운영되어왔다. 사회당 또는 노동당이 계속 시의회를 장악해왔으므로 정치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소수세력인 보수정당 등도 다른 지역과는 달리 비교적 ‘진보적’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어 토지문제로 큰 시비는 없었다.

 시유지의 장기임차계약을 맺은 사람에겐 소유권이 없지만 권리의 매매가 허용되고 있다. 일종의 땅거래는 계속되고 있는 셈이며 이러한 의미의 ‘땅값’은 계속 상승 현상을 보여왔다.

 주택가격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위치가 좋으면 12평 정도의 것도 25만길더(13만9천달러) 정도 한다. 그러나 정부보조로 세운 아파트는 월세가 5백길더(2백77달러) 내외부터 비싸야 7백길더(3백89달러) 선이다. 순수 민영아파트는 1천길더 이상의 것도 많지만, 임대료는 강력한 정부 규제로 억제되어 있다.

 한편 사무실 등 상업용 부동산의 임대료는 매우 안정되어 있다. 리처드 엘리스 회사가 최근 세계 주요 도시의 일급지 사무실 1㎡당 임대료를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암스테르담은 1백91달러로 임대료가 가장 싼 도시에 속한다(도쿄의 경우 2천16달러).

 시당국은 땅을 빌려쓰는 사람에게 소정의 임대료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연간수입은 약9천5백만달러에 이르고 있다. 시당국은 ‘토지 임대료’라고도 불리는 이 요금을 수급사정·토지용도 등을 고려하여 책정하며, 시세변동을 반영하기 위해 5년마다 조정한다. 저소득층을 위한 아파트를 건설할 경우 임대료는 낮게 책정된다.

‘서울 중심’아닌 것도 부동산값 안정 요인

 ‘토지임대료’ 제도의 밑바탕에는, 새로운 주택단지 등이 들어설 경우에 시정부가 택지를 조성하고 도로 등 제반시설을 마련해주므로, 주택단지가 생김으로써 발생하는 이득은 지역사회 전체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 제도하에서는 짜임새있는 도시계획을 위해 토지용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확인하는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하에서도 일부 건축업자들이 땅값 상승에서 오는 이득만을 챙기려해 말썽을 빚기도 했다. 60년대와 70년대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아파트의 부실 건설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소동도 일어났다.

 시정부가 직접 토지를 독점하다시피 하는 이러한 제도 로테르담 등 네덜란드의 다른 도시에서도 적용되고 있으나 세부 운영방식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한다. 암스테르담의 경우, 부동산가격이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 요인중의 하나로 이 도시가 이 나라 여러 대도시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인 한국의 경우와는 크게 다른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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