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軍은 이제 ‘경제파수꾼’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0.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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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봉쇄’ 명분 약화, 국방비 삭감 압력으로 전략수정

나토 등 서방측 군사동맹체 ‘정치·경제동맹’으로 전환

 2차대전 이후 40여년 동안 ‘소련봉쇄전략’을 중심으로 구축돼왔던 미국의 군사전략 및 병력체제에 대한 재조정 움직임이 최근 가시화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소련·동유럽의 대변혁으로 ‘소련봉쇄’의 명분이 약화되었고 美의회의 국방비 삭감 압력이 강화되면서 비롯된 것이다.

 미군 병력체계에 대한 재조정 움직임은 금년들어 미 국방부가 해외주둔 미군 및 미군기지의 축소, B-2스텔스기 등 신형무기 생산계획의 지연 및 감축, 유럽배치 단거리핵미사일(SNF) 현대화계획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가속화되었다. 지난 5월12일자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에는 92~97회계연도 美군부의 군사력 삭감계획에 대한 비밀비망록이 공표되기도 했다.


해외주둔 미군 ‘경제이익 보호’ 새 임무

 최근의 군사력 조정 움직임은 미 의회의 국방비 삭감 압력을 완화시키기 위한 군부측 대응의 일환이라는 점과 함께 새로운 군사환경에 맞춘 미 군부의 신군사전략이 반영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군사전문가들에 의하면 미국의 신군사전략은 지난해말 국방부 기구개편과 함께 월포위츠 국방차관을 중심으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에 의해 검토돼왔는데 그 결과가 지난 3월 ‘국방계획지침’(Defense Planning Guidance)이라는 극비문서로 작성되었고 한다. 월포위츠가 3월에 발간한 내부자료에 의하면 이 ‘지침’은 90년대 미국 군사전략의 목표를 “소련에 대한 군사적 봉쇄”에서 “세계질서의 궁극적 보장자”(ultimate guarantor)로서의 ‘안정화 임무’에로 서서히 전환시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세계질서의 궁극적 보장자’라는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지난 4월19일 미 국방부가 의회에 보고한 ‘동아시아전략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소련의 위협이 감소된 상황하에서도 미군은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경제적 이익보호와 역내 국가들의 정치적 불안정성 및 군비경쟁을 억제하기 위한 ‘세력균형자’로서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對蘇 핵전쟁이나 대규모 재래식 전쟁을 의미하는 중·고강도 전쟁의 가능성이 희박해진 상황에서 전략중점이 미국의 정치·경제적 이익 보호 및 제3세계에 대한 저강도전쟁쪽으로 옮아가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 군사력에 부여된 이같은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미군의 해외주둔을 의미하는 기존의 ‘전진배치전략’과 미·일안보조약 및 나토동맹 등 서방측 동맹체제의 유지가 필수적이라고 미국의 전략가들은 주장한다. 다만 전진배치전략의 경우 미 의회의 국방비 삭감 압력에 대응할 필요가 있으므로 새로운 군사목표를 달성하는 데 불필요한 해외주둔 미군 및 미군기지를 축소하는 대신 효율화를 기하고, 전략상의 강조점도 중무장군에서 경무장군 및 신속배치군(RDF)에 둔다는 것이다. 군사전략의 중점이 변화함에 따라 동맹체제에 대한 운용의 중점도 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난 2월23일 아시아 3국 방문중 일본에 들른 체니 미 국방장관은 일본기자클럽 연설에서, 앞으로 미·일안보조약 운영의 중점을 ‘소련봉쇄’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대한 통제 역할로 변화시킬 것임을 분명히 한 바 있다.

미국 동맹체제내 주도권 재확립 시도

 또한 ‘소련의 위협’이라는 공통분모의 상실로 이완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서방측 동맹체제내에서 주도권을 재확립하고 이를 미국의 세계전략 도구로 활용하기 위한 움직임도 표면화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최근 미국측이 미·일안보동맹을 군사동맹체에서 정치·경제·군사동맹체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냄에 따라 가시화되었다. ‘제2의 연합군 사령부(GHQ) 창설계획’(〈니혼게이자이신문〉3월20일자)이라고도 불리는 이 움직임은 미·일안보조약 제2조를 발동하여 미·일 양국간에 정치·경제·군사문제를 협의할 상설 협의기구를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제2조는 1960년의 미·일안보조약 개정 당시 삽입된 조항으로, 두나라간 “정치·경제제도의 차이를 없애고 협력을 촉진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따라서 이에 따른 협의기구 설치는 일본의 정치·경제·군사·외교정책에 대한 미국의 간섭 및 지배가 항시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토조약 제2조도 동일한 내용으로 돼 있는 데 현대 미국은 미·일간 협의기구 설치를 축으로 하여 이를 미·일·서유럽 삼각협의체로 확대시킬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초의 미·일 정상회담에서 부시 미 대통령이 전격 제안하여 가이후(海部俊樹)총리의 동의를 얻은 바 있는 미·일·서유럽 삼각협의체 구상의 배후에는 이같이 동맹체제내에서 영향력의 확대를 노리는 미국측의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위협’이라는 공통분모가 약화된 현국제정세에서 미국의 기득권 유지 및 정치·경제적 이익보호라는 목적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는 이같은 신전략이 순조롭게 관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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