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총선, ‘항쟁’ 도화선 될 것인가
  • 김현숙 기자 ()
  • 승인 1990.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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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선거조작 움직임… 야당지도자 감금, 반정부 성향 50만명 밀림 추방

군사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무차별 발포를 가해 약 2천명의 사명자를 내고 사태를 진압한 버마 군사정권이 민심을 수습하고 국가 분위기를 일신한다는 명목으로 지난해 국호를 미얀마로 바꾸었을 때, 함께 새 이름을 갖게 된 이 나라의 수도 양곤(예 랑군)의 말뜻은 ‘전쟁의 끝’이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도 양곤에는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다. 5월27일로 예정된 미얀마의 총선은 외형상 진압된 것으로  보이는 민중항쟁의 새로운 도화선이 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2년간에 걸친 반정부 투쟁의 결실로 30년만에 처음으로 실시되는 이번 총선은 자유·공정선거 보장이라는 집권 군부지도자들의 거듭된 약속에도 불구하고 야당인사 탄압이 여전히 극심한 데다 벌써부터 선거조작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선거 자체가 장기집권을 노리는 ‘군부의 시나리오’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집권세력인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에 따르면 모두 93개 정당이 선거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중 군부의 지지를 받고 있는 국민연합당(NUP)만이 전국 4백86개 전 선거구에 후보를 내놓고 있다. 조직이 빈약한 야당들은 후보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으로, 최대 야당인 민족민주동맹당(NLD)이 4백52명, 민주평화동맹당(LDP)이 3백10명, 연합민족민주당(UNDP)이 2백45명의 후보를 각각 내고 있으며 이밖에 89개의 군소정당이 저마다 소수의 후보들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는 후보들의 명단공개조차 거부한 채 개표 후 당선자 명단만 밝힐 것이며, 그것 또한 선거 3주 후에나 발표하겠다고 못박고 있어 선거조작의 가능성이 농후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밖에 이번 총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요소들을 간추려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유력 야당지도자에 대한 선거권 박탈과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탄압이다. 이 나라 독립운동의 영웅 아웅 산 장군의 딸이자 1백만 당원을 거느린 민족민주동맹당의 지도자 아웅 산 수키 여사(45)는 피선거권마저 박탈당한 채 작년 7월 이후 가택연금 상태에 놓여있다. 아웅 산 수키 여사와 함께 민족민주동맹당을 이끌고 있는 틴 우 전국방장관과 민주평화동맹당의 지도자 우 누 전총리는 현재 투옥중이다. 이밖에도 수천명의 정치인들이 연금을 당하고 있는 것이 총선을 앞둔 이 나라의 현실이다.

 둘째, 군부는 선거를 앞두고 수도 양곤과 만달레이 등 주요 도시에 거주하는 반정부 성향을 주민 약 50만명을 밀림의 오지로 추방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야당인사들은 이를 ‘미얀마식 게리맨더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반정부 세력이 추방된 지역은 상·하수도 시설이나 전기시설이 없을 뿐 아니라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곳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무방비 상태로 죽어가고 있어 추방된 사람들은 이곳을 ‘新 킬링필드’라 부르고 있다.

 셋째, 작년부터 외부와의 접촉을 꺼려온 군부는 선거조작과 야당탄압 사실이 외국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최근 통신을 완전히 두절시켰으며 5월14일부터는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시키기까지 했다. 이들은 유엔의 선거감시단 파견도 거부한 바 있다.

 이밖에도 미얀마에서는 독재정권이 흔히 사용하는 여러 가지 선거방해공작이 진행되고 있다. 언론매체를 통한 선거유세는 사전검열을 받고 있으며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에 대한 어떠한 비방도 법의 규제를 받도록 되어 있다. 주요 지역에 아직도 계엄령이 발효중인 가운데 밤 10시 이후 야간 통행금지가 실시되고 있다. 5인 이상의 집회도 금지돼 나라 전체에 공포 분위기가 팽배한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군부는 총선을 통해 선출된 의회가 새로운 헌법을 만들고 안정된 정부를 구성할 때까지 정권을 이양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 헌법이 입안되고 국민투표가 실시되기까지는 최소한 2년이 걸릴 것이라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현정부의 이같은 태도는 결국 권력이양의 의사가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1948년 영연방에서 독립한 미얀마는 60년 다당제 아래에서 총선을 치렀으나 62년 네윈장군이 쿠데타로 집권, 22년간 장기 일당독재 통치를 펴온 나라이다. 네윈의 중립적 외교정책과 ‘버마식 사회주의’는 한때 소련으로부터 민주적 개혁을 위한 바람직한 노선이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고, 자력갱생의 모델로서 주목 받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심각한 경제정체를 초래하여 이 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나라 중의 하나로 전락시켰다.

학생들 소수민족 반군 협력, 무장항전 시도
 88년 3월 사상 처음으로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가 촉발된 것도 생필품 부족이라는 절망적인 경제파탄이 주요 원인이었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민주화요구는 전국적으로 번져 한때 1백50만명이 시위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해 6월 결국 네윈이 사임하고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당면목표가 정해졌으며 이어 9월에는 다당제 총선을 실시하기로 합의됐었다. 그러나 며칠 후 국방장관이자 군 참모총장이었던 사우 마웅 장군이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민주화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뒤 의회제를 폐지하고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를 구성, 군사통치를 연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얀마의 군부는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집권연장에 성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중적 기반을 완전히 상실한 집권 군부세력이 반정부 세력뿐 아니라, 자치와 독립을 요구하는 소수민족 반군들의 무장공격에 안팎으로 대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반정부 세력 자체가 심하게 분열돼있기 때문에 미얀마 민주화의 앞날이 결코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현재 일부 학생들은 소수민족의 반군과 협력하여 무장항전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것은 민주화세력에 대한 군부의 강력한 역공 가능성을 높여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군사정부는 반군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여 위기의식을 고조시킴으로써 민주화운동의 예봉을 꺾으려는 전통적 수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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