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이념 반영할 정당 필요”
  • 박중환 차장 ()
  • 승인 1990.06.0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진보와 보수의 실체는 무엇인가? KBS 徐基源사장은 보수이고,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노조는 진보인가? 구속된 동료 노조원의 석방과 내몫을 요구하는 현대중공업노조는 진보이고, 이를 거부하는 회사와 공권력을 투입한 정부는 보수인가?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야당은 진보이며, 부분적 개정에 그치려고 하는 정부여당은 보수인가? 이런 질문은 끝없이 이어진다. 진보와 보수는 때와 장소, 사건의 성격과 주체, 보는 시각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해왔다. 혁신 또는 급진은 기존의 가치·질서·체제를 부정하고 대체체제를 제시해야 성립한다는 서구적 정치개념으로 본다면 현한국사회에 과연 진정한 진보가 존재하는가라는 회의론과 부닥친다. 노조가 경영에 관여한다거나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봐선 안된다는 주장과 논리는 기존 질서와는 다르기에 급진 또는 혁신에 가깝다는 주장도 있다.

 한편 우리사회에는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진보·보수세력이 존재하지 않으며 보혁논쟁은 지난날 권위주의적 체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과정, 즉 민주화과정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이같은 혼돈된 보수·진보논의 20년 동안 권위체제에 의해 억눌려오다가 최근 봇물터지듯 쏟아져나오게 된 데에 일차적 원인이 있겠으나, 정치세력들이 색깔논리로 악용하며 자파세력을 확대하는 명분으로 삼아 심화되는 경향도 있는 듯하다. 아무튼 보·혁이 조화를 이룰 때 역사는 발전했고 충돌했을 때는 후퇴했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길 때, 오늘날 우리사회의 보혁대립 양상은 우려되는 바 크다. 지난 18일 서강대 부설 사회과학연구소(소장 오기평교수)가 ‘한국사회의 진보와 보수’라는 주제로 마련한 학술세미나는 그런 점에서 나름대로 큰 의의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현정권의 핵심인물과 재야인사가 나란히 앉아 토론을 벌였다. 이날 발표된 기조논문, 3개의 주제논문 그리고 토론내용을 요약했다. 토론참석자는 다음과 같다.

 1주제 : 김학준(청와대 사회담당보좌역) 이우재(민연추공동의장) 장달중(서울대교수), 2주제 : 박호성(서강대교수) 염만숙(민연추 총무국장) 류근일(조선일보 논설주간), 3주제 : 김홍명(조선대교수) 남재희(국회의원·민자당) 이부영(민연추 집행위원장)

 이날 세미나의 주제토론에 앞서, 한배호교수(고려대)는 기조논문에서 한국사회의 보수·진보는 우익·좌익이라는 용어와 동의어로 혼용돼 근본적인 갈등과 대립을 연상케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방직후 美군정시절 보수세력은 지주층, 반공의식이 투철했던 이북 피난민 그리고 친일세력들로 구성된 반면 진보세력을 대표했던 것은 항일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인텔리겐차나 혁명가들이었다고 예시했다. 한교수는 당시의 진보는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한 급진적 세력과 동일시되었다고 덧붙였다.

 또 4·19이후의 보수·진보세력과 오늘의 그것과 구별해주는 특징은 대중은 등장 여부라고 전제, 오늘날 한국사회는 정치엘리트 내부의 이념적 이질화뿐 아니라 대중내부에서도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문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입장이 공존하는 분열된 사회라고 규정했다. 이런 분열은 정치적 균열의 원천이 된다고 그는 지적했다.

 한편 초기의 보수세력은 자유당 정권하에서의 반공세력으로 성격을 굳혀오다, 군부집권 이후부터는 개발독재를 옹호하는 권위주의적 보수세력으로 변신했으며, 따라서 앞으로는 진보주의가 지향하는 변화방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가며 사회통합의 가치적 기반을 확보할 수 있는 나름의 정치철학을 제시해줘야 할 것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한교수는 도시 중심의 중산층과 산업노동세력이 현저하게 증가해온 사실을 들어, 보수세력이나 진보세력이 살아 자랄 수 있는 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그 지지기반을 대중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90년대 한국정치는 작위적 정당성에 근거한 강요된 정당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인 진화과정을 통해 국민대중의 직접적인 지지와 호응에 바탕을 두는 정당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한교수의 기조논문 발표에 이어 3개 주제논문이 발표된 뒤 학계·정계·재야·언론계 출신들의 토론자들이 집중토론을 벌였다.

“학계 보혁논의에 민중시각 결여”
 제1주제(해방에서 4·19시기까지)에 대한 톤론에서 토론자들은 보수·진보론에 대한 접근방법이 정치학적으로 역사학적으로 각각 큰 차이를 보여왔으며 특히 정치학적으로는 동향의 분석에 의존해온 반면, 역사학적으로는 사료의 엄격한 검증을 강조해왔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런 접근방법론의 차이로 개념을 정리하는 데 혼란을 가져왔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특히 해방직후의 좌우합작에는 친일색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놓고 당위성의 시비가 제기됐고, 이와 관련 金九선생과 중경임시정부세력들도 1946년과 47년 한민당과 합당을하려 했다는 史實이 있으므로 48년 1월 이후 김구선생의 통일정책만 보고 그를 민족주의자로 단순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김구선생은 애국자였음은 틀림없으나, 당시 복잡한 국제정세와 오랜 망명생활로 민의를 읽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6·25 전 이승만정권은 미군의 철수, 군의 반란 등으로 미뤄, 사실상 붕괴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런 맥락에서 보수정치세력도 함께 와해됐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와 이채를 띄었다.

 또 4·19를 민족혁명으로 규정할 경우, 다음 선거에서는 민족 또는 혁신세력이 당연히 이겨야 하는 데도 패배한 사실을 들어 4·19는 부르조아적 민주주의를 원했던 세력들의 혁명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제2주제(군부권위주의체제하의 보수와 진보) 토론에서는 학계에서 연구되고 있는 보수진보논리에 민중적 시각이 결여된 부분이 많다는 주장이 재야 출신 토론자로부터 집중적으로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이 가운데 다음과 같은 주장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집값폭등으로 진보세력 대중성 넓혀”
 “이 시대의 진보세력은 反독점·反외세·통일을 지향하며 군사파시즘을 보수세력으로 규정했다. 민중민주운동은 80년대 중반부터 대중성을 획득했다. 전술적으로는 후퇴했을지 모르겠으나 최근 물가폭등·집값앙등 등으로 대중적 호응도는 더욱 높아졌고 지금은 노동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과격성과 비합리적인 해결자세 등의 이유로 일반대중, 즉 중산층으로부터 질시를 받고 있는 것은 솔직히 시인한다. 그러나 진보세력내의 사상투쟁을 내부분열로 보고 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분석하는 자세가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있다. 오히려 필연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한계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진보·보수를 양분법으로 구분하는 것은 곤란하며, 적어도 3분해 스팩트럼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제3주제(한국정당정치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의 토론에서는 해방직후의 경우 우리에게는 이념이 대두되지 않았고, 미군의 진주를 계기로 가능해졌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 군부 세력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한 지금과 같은 민주화갈등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아울러 나왔다.

 현정치상황에서 보수와 진보가 저변에 세력집단화되어 존재하는 것은 틀림없으나 이들의 이념을 반영해줄 정당은 없다는 지적과 함께 이념을 반영해줄 정당을 제도권 안으로 흡수시켜주기 위해서는 서독과 같이 철저한 정당비례대표제에 의한 국회의원선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처방이 나오기도 했다.

 이날 세미나는 ‘한국사회의 진보와 보수’라는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주제내용에 비해 토론시간은 겨우 7시간 남짓에 불과, 주제발표자와 토론참가자 사이에 가로놓인 시각의 차이와 견해를 좁히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