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칼럼] 통일의지 키워야 할 때
  • 한승주 ()
  • 승인 1990.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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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국민과 정부의 관심은 온통 ‘난국적’ 국내상황과 盧泰愚대통령 訪日에 관련된 한일관계에만 집중되어 있다. 왜 우리가 이 시점에 경제침체와 정치불안을 걱정하고 과거事에 대한 일본의 사과내용이 무엇인가에 몰두해야 되는가? 이에 대한 이유와 설명은 분분할 것이다. 다만 한가지, 만약 우리정부가 어느 정도나마 선견지명을 갖고 일관성 있는 지도력을 발휘했더라면, 또 일들을 준비성있게 차근차근 처리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국내적 난관과 외교적 혼선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언제나 코앞에 일이 닥치고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만 허둥지둥하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며 우리는 해야 될 일, 준비해야 될 어떤 일들을 등한히 하고 있지 않는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당장 눈앞의 위기에 쫓기고 있는 동안에도 세계는 부단히, 그리고 숨가쁘게 변하고 있다. 그 중에서 우리가 특히 관심을 두고 많은 점을 배워야 할 것은 독일의 상황이다.

 우리는 독일이 통일의 길로 내닫는 것을 보면서, 통일은커녕 대화나 교류도 못하고 지내는 남북한 관계를 생각하며 한편 부러워하고 한편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우리는 독일의 통일을 바라보며 우리의 처지를 개탄만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독일의 상황은 우리에게 통일의 길이 어떠한 것이고 그것에는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독일 통일에 있어서 특히 경이스러운 것은 그 과정이 평화적이며 한번 계기가 주어지자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서독의 통일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동독의 민주화이다. 동서독 둘 중의 하나라도 독재정권을 유지하는 한 그쪽은 자신의 지배를 전제하지 않는 통일에 합의하지 않을 것이다. 독일의 통일이 급속도로 진전되는 이유는 오늘의 과정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통일에 도움이 되는 많은 준비작업을 의식·무의식으로 진행시켰기 때문이다. 동서독은 오는 7월1일부터 실시될 ‘通貨동맹, 경제-사회공동체 창설에 관한 조약’을 5월 18일에 조인함으로써 구체적인 통일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동독 민주화가 평화적 統獨의 뿌리
 또하나 놀라운 일은 독일 통일에 대한 주변국가들의 반대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이다. 兩獨은 이미 ‘2+4회의’라는 협상방식을 통해 독일 통일에 대한 美·蘇·英·佛 4개국의 양해를 얻어 냈으며, 특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던 동맹체제 문제도 소련의 양보로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독일이 NATO에 남아 있는 것을 소련이 수락하는 이유는 소련의 일차적 안보목표가 對美경쟁에서 통일된 독일 견제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EC와 NATO를 통한 유럽 속으로의 경제·정치·군사적 통합을 맹세함으로써 서방뿐 아니라 소련 등 동유럽 각 국의 의구심도 해소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되는 통일로의 행진이 정치적 장애에 부딪히기도 한다. 서독에서는 급속한 통일을 추진하는 콜수상의 기민당이 지난주에 있었던 두 개의 주의회선거에서 “좀더 완만한 통일”을 주장하는 사민당에 패배했다. 이것은 사민당의 한 지도자가 “이기심의 승리”라고 표현했듯이 통일이 너무 ‘비싸게 든다’고 여기는 서독의 유권자들이 급진전하는 통일에 제동을 건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동독에서도 통일에 대한 불안감이 표출되었다. 서독의 자본과 효율성에 밀려 동독의 자산과 사회주의체제 속에서의 안일과 완전고용을 잃을 것을 우려하는 동독인들, 특히 노동자들이 완전통합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원래 동독인들이 지난 3월의 선거에서 기민당에게 가장 많은 표를 던져주었던 것은 早期통일 자체보다는 서독으로부터의 경제적 혜택을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완전 통일로부터 올 수 있는 경제적 불이익을 의식하면서 많은 동독인들은 완전통일 이전의 단계에 대한 선호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물론 동서독에 나타난 통일에 대한 ‘유보적’ 태도가 독일의 궁극적인 통일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통일이라는 것이 비록 그 장애물이 제거되었다고 해서 용이하고 순조로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석방된 김현희도 갇힌 임수경도 모두 분단의 피해자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독일의 통일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어떠한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 먼저 우리는 통일이라는 것이 멀고 어려운 길이며 정치·경제·제도적 준비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당분간 북한의 개방을 기대할 수 없다면 現단계에서 우리가 통일에 대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주로 일방적인 것들이다. 그것은 남쪽에서 북한의 인민들이 부러워하며 합류하고 싶어할 만한 정치체제와 경제상황을 조성하고 통일에 필요한 엄청난 자금을 비축하는 일이다.(독일에서는 통일자금의 규모를 최소한 서독의 1년 GNP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남북한간의 교류와 협력을 실현하여 북한의 폐쇄와 고립을 지양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자신들의 사고의 전환이 절실하다. 독일의 경험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통일에 대하여 감성적, 또는 선전적인 양극의 태도를 버리고 현실적이고도 합리적인 방법을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며칠 전 자유의 몸이 된 金賢姬의 모습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그는 분단의 희생자임에 틀림없다. 또 다른 분단의 희생자는 林秀卿양도 석방되었을 때 우리는 개방과 합리성을 향한 사고의 전환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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