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상품 확산 소비자만 손해
  • 김선엽 기자 ()
  • 승인 1990.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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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욕’ 채우지만 통상마찰 등 부작용 초래

크리스찬 디올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 구치 목걸이·귀고리·반지 등으로 치장한 자신을 상상해보자. 비록 상상일망정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유명한 만큼 엄청난 가격 때문에 평소에는 엄두도 못낼 상품들이지만 바로 비싸다는 점이 매력이기도 한 유명제품들. 이런 제품들을 소유함으로써 ‘상류층’이 되고 ‘부자’로 인정받는 세태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들 상품을 동경하고 있다. 아무리 계몽활동을 펴고 단속을 해도 유명상표를 도용한 ‘위조상품’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허청에서 파악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위조된 유명상표는 프랑스산 22종, 미국산 20종, 이탈라아산 5종, 기타국가상표 12종 등 모두 59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유통돼온 위조상품류는 핸드백·지갑 등 가방류, 허리띠·액세서리 등 장신구류, 의류, 신발류, 운동용품, 시계·계산기 등 전자제품, 양주, 자동차 부품,의약품 등이다. 이중에서도 주요 단속대상이 될 만큼 많이 도용되고 있는 상표들은, 가방의 경우 루비통·헌팅월드·구치·샤넬·카르티에, 의류의 경우 필라·폴로·샤넬·크리스찬디올·입생로랑 등이다. 신발류의 경우 리복·필라·콘버스·L.A기어·아디다스 등이 주류를 이루며 액세서리 등에는 샤넬·던힐·입생로랑·카르티에·구치 등이 도용되고 있다.

외제선호 풍조가 문제
 위조상품 취급업소는 89년말 현재 전국적으로 3천9백여개는 있는 것으로 분석됐는데 이중 46% 정도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에서 쉽게 위조상품을 구입 할 수 있는 곳은 이태원 남대원 소공동 청계천 평화시장 등. 이외에 부산 국제시장, 대구서문시장, 인천 동인천지하상가 등 대도시 지역과 경주 및 신제주 등의 관광지, 송탄·동두천 등의 미군 주둔지가 위조상품 범람지역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같은 위조상품들이 국내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물론 무역마찰의 심각한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국제공업소유권연구소에서 발표한 ‘우리나라의 상품모조현황과 지적소유권제도’에는 위조상품이 상거래질서·소비생활·국내산업·대외통상에 끼치는 해악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상표도용은 타인의 상표권과 의장권을 침해하고 소비자를 기만함으로써 상거래질서를 문란케 하며, 소비생활 측면에서는 상품이 고장나거나 빨리 마모돼 가계지출을 증가시킴은 물론 외제선호풍조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기술개발의욕을 감퇴 시킴에 따라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감소를 유발하고 대외적으로 이미지 손상과 더불어 통상차원에서의 보복을 초래함으로써 소비자는 큰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5월 한국은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의해 지적소유권 분야의 우선관찰대상국으로 선정됐다가 위조상품에 대한 자체단속 강화노력 등을 인정받아 같은해 11월 간신히 보복강도가 한 등급 낮은 관찰대상국으로 전환된 바 있다.

 이처럼 위조상품 유통이 심각한 사안으로 떠오르자 정부에서도 미온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작년부터는 수사기관과 합동으로 처벌 위주의 강력한 단속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단속실적도 급증, 88년 8천2백57점, 89년 15만3천2백50점이던 압수물량이 90년 4월 현재 15만9백21점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특허청 관계자는 “시·도합동 및 검·경합동 단속횟수도 88년 18회, 89년 33회, 90년 4월 현재 13회로 잦아지고 있어 올해 압수물량은 20만점을 훨씬 넘을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단속만 강화된 게 아니라 취급업자들에 대한 형벌도 상향조정돼 적용되고 있다. 관할 경찰서에 단순 고발될 경우 30만~50만원 정도이던 벌금이 작년부터 50만~1백만원으로 올랐으며 구속될 경우에는 1백만원 가량의 벌금형에 처해지던 것이 작년부터 2백50만~1천만원의 벌금 또는 10월~1년 징역형으로 바뀜으로써 벌칙이 대폭 강화된 것이다.


강력한 단속, 의식전환 필요
 이 때문인지 이태원상가의 경우 88올림픽을 전후해 특수를 노리고 난립했던 위조상품 취급점포 수도 6백여개에서 작년에는 4백20여개로 줄어들고 휴·폐업 또는 전업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는 것이 관계부처의 설명이다. 특히 눈에 띄게 개선된 것으로 꼽히는 곳은 서울 평화시장과 인천 동인천지하상가 등이다. 그러나 외형적인 개선에도 불구하고 위조상품의 인기가 완전히 시든 것은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 이태원상가를 즐겨 찾는다는 文모(24)양은 “다른 곳 물건보다 이태원 상가의 위조상품들이 정교하고 품질도 괜찮은 데다가 가격도 저렴해서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면서 “얼마전에도 2만원에 최신 유행 ‘구치핸드백’을 샀다”고 밝혔다. 해밀톤쇼핑 스토어에서 시계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위조상품을 훨씬 더 좋아하기 때문에 장사를 위해서는 계속 취급할 수밖에 없다”며 동료상인 중 어떤이는 “자체상표 상품만 취급하다 망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자기과시 욕구를 채울 수 있고, 취급업자들은 정상제품보다 구매수요가 많아 수익성이 높다는 점 때문에 위조상품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영세한 상인들일수록 자체상표의 개발보다는 당장 눈앞의 이익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위조상품범람의 한 원인이다. 이에 대해 朴熙全 이태원국제상가상우회회장은 “위조상품 취급점이 언젠가는 없어져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한순간에 완전히 없애기는 힘들다”면서 “이미 취급점포 수도 많이 감소되고 있고 자체상표 개발노력도 이뤄지고 있는 만큼 점차적인 개선이 바람직한 것 같다. 따라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이태원상가에서는 빅토리타운이개발한 ‘VICT’라는 고유상표 정도가 있을 뿐이다.

 국제교역에서 지적소유권의 비중이 날로 커져가고 있고, 국가적인 피해는 결국 국민 개개인에게 돌아온다는 점을 생각할 때 위조상품 유통근절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계속돼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상품모조방지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공급자나 소비자가 아직도 상표도용에 대한 죄의식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인식개선을 위한 홍보활동과 함께 강력한 단속을 계속적으로 펴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근절’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면서 “상표권자들 스스로도 자사 상표를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상표 보호를 위한 모임으로는 87년 코오롱·화승·국제상사 등 7개업체에 의해 설립된 상표관리대책위원회 등이 있으나 본격적인 사업은 펼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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