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독립, 지금은 통일 꿈꿔
  • 홍만호 (하얼빈 흑룡강신문사 사장) ()
  • 승인 1990.06.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백만 在中 교포 우리민족의 얼과 문화 지키며 ‘韓· 中 經協’에 큰 기대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꿈을 가꾸고 키우며 산다. 그 꿈은 각각이다. 그러므로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의 꿈을 통틀어 말하기는 쉽지 않다. 나 자신의 꿈, 그리고 내 나름의 느김으로 이야기해볼 수밖에 없다.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의 이민사는 1백여년을 헤아리지만 대거 이민은 대체로 1920~1930년대에 진행되었다. 일제의 등쌀에 못이겨 살길을 찾아 남부여대로고향을 등지고 떠난 것이 한 부류라면, 고국에서 반일투쟁을 하다가 이겨내지 못하여 반일독립투쟁의 무대를 옮겨 고향을 떠난 것이 다른 한 부류였다. 그만큼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동북의 광활한 땅에 자리를 잡고 그 땅을 개척하였다. 그리고 항일에 한결같이 떨쳐나서서 고국과 중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목숨 바쳐 싸웠다. 해방 직후의 조사에 따르면 적지 않은 조선족 마을에서 2세대당 1명씩 항일열사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이 땅의 개척자들이었고 이 땅의 수호자들이었으며 또한 항일투사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이민자들이었지만 동시에 이 땅의 떳덧한 주인들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꿈은 무엇이었고 오늘 세대들의 꿈은 무엇인가? 그 땅을 개척하고 그 땅에서 피흘려 싸운 1세들의 꿈은 고국을 日帝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제 나라를 찾고 고국으로 돌아가 잘살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집을 지어도 임시 살 수 있게끔 지었으며 나무를 심어도 소나무 같이 늦게 자라는 나무는 심지 않았다. 이런 생각은 해방 후 중국 공민이 된 후에도 오랫동안 스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정세가 변하고 세대가 바뀜에 따라 그런 꿈은 엷어지다가 사라지고 말았다. 다만 노인들에게는 ‘죽어서라도 고향에 뼈를 묻었으면’하는 소원이 남았을 뿐이다. 그 대신 중국 공민으로서 그 땅의 참된 주인이 되고자 애를 썼다. 정부의 시책을 받들고 모범적으로 일하였다. 중·소변경에 위치한 동녕현 삼차구향에서는 1천여호의 조선족들이 사는데 그향도 모범향이지만, 그 향의 한 마을인 동방홍촌은 80년대초에 벌써 주택을 벽돌기와집으로 바꾸었고 집집에 상수도를 놓고 집집마다 색텔레비전을 마련하였다. 잘살자는 것은 인간의 가장 큰 꿈이다. 그들이 이민을 한 것도, 그후 정부의 말을 잘 들으면서 아글타글 일한 것도 역시 그 꿈을 위해서였다.

대학 진학률 중국인보다 2배나 높아
  하지만 잘산다는 것, 그 의미는 넓다. 거기에는 문화라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중국의 조선족은 교육을 중시하고 따라서 문화 수준이 높은 민족으로 이름이 높다. 나라적으로는 90년대 중반으로 초등교육을 보급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미 중학교 교육을 보급하였으며 대학교 진학률도 중국인보다 2배나 높다(중국의 중학교는 6년제로 우리의 고등학교 과정까지 포함됨). 그리하여 대학졸업생들이 공무원, 교사, 과학기술인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며(하얼빈만 하여도 대학강사 이상 급이 5백명 정도) 농민들도 대개가 중학졸업 이상이다. 20여년 전 생활이 무척 어려울 때도 집들은 초가였지만 학교는 벽돌기와 집에 넓은 운동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는 지식을 배워주어야 자식들을 출세시킬 수 있다는 생각 밖에도 자기 민족을 지켜가려는 굳은 뜻이 세차게 맥박치고 있었다. 자기 말과 글을 잃지 않아야 자기 민족을 잃지 않는다는 관념은 조선족 개개인에게 있어서 그처럼 끈질긴 것이었다. 그래서 배를 좀 곯더라도 돈을 모아 학교를 세웠던 것이다. 또한 우리의 문화를 지키고 고양해가기위해 우리 글 신문사, 우리말 방송국을 세우고 문화관들을 세웠다. 모두는 우리 민족을 지키고 중국 56개 민족 중에서 떳떳이 앞자리에 세우려는 일념을 안고 고생을 무릅쓰고 남의 몇배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물론 중국의 우월한 소수민족 평등정책이 우리에게 좋은 환경과 여건을 마련해주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없다.

  우리의 언어, 식생활, 습관도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는 자기의 몸에 조상이 물려준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고국의 일동일정에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고국이 하루속히 발전하여 세계적으로 떳떳한 자리에 설 것을 바라며, 특히 이를 위해서 통일이 이루어질 것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한편 우리는 예·맥·부여·고구려·발해를 내려오며 민족의 핏줄을 이어온 조상들이 살았던 곳에서 산다는 긍지도 없지 않다. 우리는 남이 나라에서 산다는 생각이 없다. 우리는 외롭지 않다. 항차 지금은 개방의 물결을 타고 고국에서 친지들이 드나들고 사업을 하려고 상공인들이 드나들지 않는가. 일전에 三江平原합작개발을 위해 두 번째로 考祭團이 들어왔고, 그 일이 진척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곳에도 우리 祖宗의 뼈가 묻혀 있는지 모른다. 그 땅을 개발하는 것은 중국에나 고국에나 그리고 중국의 조선족에게나 다 뜻깊은 일일 것이다. 우리는 그 일이 성사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람의 꿈은 저마다 각각이고 그 꿈도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변할 것이지만, 내가 말한 그런 꿈은 모든 이의 마음에 계속 푸르싱싱하게 피어나리라 생각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