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밀어라 남쪽으로, 막 내밀어라!”
  • 주영복 (6·25당시 인민군 제2군단 공병참모) ()
  • 승인 1990.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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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인민군 간부 수기/ 蘇작전고문단, 전격전 지휘

탱크부대 표범처럼 진격

1950년 6월 25일 새벽. 천지를 진동하는 요란한 포성에 눈을 떴다. 쿠웅! 쿠웅! …쿵쿠웅! 쿠웅쿵! …쿵쿵!

  그 소리는 156밀리 군단중포, 122밀리 하우빗짜(곡사포)로 발사하는 준비포격이다. 시계를 보니 4시5분! 나는 대남작전이 시작되는 것이 월요일이라고 짐작했는데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공격은, 불의의 습격으로 더 큰 성과를 거두기 위하여 적이 안심하고 자는 일요일 새벽을 택한 것이다. 천막을 막 나서려고 할 때 연락병이 달려왔다.

  “주동무우! 공병참모 주동무우!”
  하마터면 연락병과 부딪칠 뻔했다.
  “내가 바로 공병참모욧!”
  “참모장동무께서 부르십니다!”

  밖에는 기랑비가 약간 세게 내린다. 나는 몸을 가다듬으며 연락병의 뒤를 따라 터널식 동굴막사를 향해 뛰었다. 천막에서 50m도 채 안되는 거리인데 흠뻑 젖었다.

  참모막사의 ‘발’을 열고 들어가니 崔仁(일제하 항일투쟁 당시 이름은 王慈仁) 참모장이 돗자리에 앉아 있기에 경례했다. 참모장 우측에는 무전기가 있고 좌측에는 야전전화가 놓이고 그 앞의 조립식 책상 위에는 38선 중부를 상세하게 그린 지도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책상 가까운 곳에 2명의 소련군 중좌가 의자에 앉아 있다. 한번도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개전 모양을 참관하기 위하여 모스크바의 참모본부 또는 극동군사령부에서 긴급히 파견한 군사 옵서버들이었다.)

  ‘발’문 내측에 역시 본 적이 없던 인민군 정치대조가 앉아 있다. 崔仁참모장이 고문들 가까운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주동무 거기 앉소!”했다.

  나는 앉기 전에 고문들에게 “즈드라이트우이쩨!”하고 인사했다. 두사람은 약간 미소짓고 “즈드라보 다와리시치!”하고 대답인사를 했다. 참모장은 다시 나에게 “지금부터 무전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번역하여 고문선생들에게 전하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들어오는 정보도 없고 말하는 사람도 없어 막사 안은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다. 침묵이 아니라 포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초긴장 상태이다.

  천지를 뒤흔들던 그 무거운 포소리는 점점 작아지면서 산발적으로 몇번 쿵…응, 궁…응 하더니 멎었다. 그 순간 검은 탱크가 표범처럼 위장망을 떨치며 뛰어나오고 포소리에 흥분하고 긴장했던 2사단 전체 보병이 함성을 지르며 비탈을 메우고 돌격하기 시작했다.

  2사단에 국한하지 않고 양구 남방의 7사단도, 서부전선의 7만 전투부대들도 일제히 만세소리와 함께 돌격하고 있을 것이다.

  이윽고 꾸르르 삑삑, 꾸르륵 삑삑하고 무전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崔仁참모장은 한장 또 한장 받기 바쁘다. 그리고 철할 사이도 없이 번호만 적고 나에게 넘겨줬다.

  “제2사단 총공격을 개시했습니다!”
  막사가 다시 긴장한다.
  “2사단 ××연대 38선 돌파!”
  “제7사단 △△연대 국군진지 유린!”
  “제2사단 ○○연대 모진교 점령1”
  고문 한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진교를 점령했다구?”라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지금 막 도달했습니다!”
  고문은 개전 전부터 38선 바로 남쪽에 있는 모진교에 신경쓴 듯하다.
  “다리는 파괴되지 않았는가?”
  나는 참모장에게 모진교 상태를 물었다.
  “파괴되지 않았어! …파괴할 시간이 없었을 거요!”
  “××연대 경운산 점령.”
  “7사단 △△연대 하답리에 돌입.”
  “제2사단 1.5㎞ 전진.”
  “제7사단 2㎞ 전진.”
  “2군단 산하 모든 부대는 계속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고문 한사람이 경탄의 소리를 질렀다.
  “오첸 하라쇼오(참 잘해)!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 몰아낼 때보다 빠르군!”
  내가 그것을 통역하니 주름살 많은 崔仁소장이 파안일소! 그러자 정치대좌가 두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당겼다 하며 말했다.
  “내밀어라 남쪽으로, 막 내밀어라아!”
  이리하여 병력과 무기가 압도적으로 우수한 인민군은 홍수처럼 내려간다.

  더 감흥적인 뉴스는 서부전선에서 들어온다. 제1군단 산하의 4개 보병사단, 2개 경비여단, 1개 탱크여단은 중포소리가 멎자 총공격을 개시했다.

  최우익을 담당한 方虎山소장의 제6사단은 개성에서 국군 1개 연대를 전멸하고 개성을 해방하고, 우익을 담당한 崔洸소장의 제1사단은 임진강을 돌파하고, 중앙을 담당한 李權武소장이 지휘하는 제4사단은 탱크연대를 앞세우고 동두천을 향해 밀려가며, 좌익을 담당한 李英鎬소장이 지휘하는 제3사단도 1개탱크연대를 앞세우고 국군 진지를 순식간에 돌파하고 포천을 향해 밀려간다.

  서울 북방에 배치되었던 국군 2개사단은 격파되어 전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38선은 10여군데 터졌으나 마치 제방이 터진 것처럼 돌파구가 넓어지고 그 돌파구를 합치면 점령지가 옆으로 앞으로 넓어져간다. 총공격 첫날에 20~25㎞ 전진했다. 이렇게 조선판 전격전은 작적고문들 지휘하에 대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전쟁은 계속된다.
주영복 (6·25당시 인민군 제2군단 공병참모)

6·25가 일어나기까지의 북한의 군사동향
●1949년 12월 : 소련의 군사고문단의 지시에 따라 신의주에서 사단규모의 전쟁 기동훈련.
●1950년 1월 : 김일성은 신년연설에서 연내 남북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 선언.
●1950년 2월 : 3개 보병사단 조직. 공병대. 적군(한국군) 요새에 대한 돌파훈련 및 渡河훈련실시
●1950년 2~3월경 : 모든 소련인 훈련교관들이 모스크바에 소환되고 2차대전의 전쟁영웅 바실리예프 중장이 이끄는 새로운 군사작전 고문단이 들어옴.
●1950년 3월 : 조선인으로 이루어진 7천병력의 1개 사단이 만주에서 원산으로 이동, 제 7사단이라 명명됨.
●1950년 4월 : 북한정권, 38선 근방의 작전지역에 소개명령 내림. 엄청난 양의 소련제 무기와 군수물자가 블라디보스토크항으로부터 8~9척의 화물선에 의해 수송돼 옴. 대부분의 무기는 즉각 38선 부근으로 수송됨.
●1950년 5월 : 북한측, 날마다 라디오, 신문을 통해 평화통일 호소.
●전쟁 4주전 : 북한, 인민들이 남한 및 38선 근방으로 여행하는 것을 금함.
●전쟁 3주전 : 모든 보병사단과 탱크부대에 38선 근방으로의 이동명령 하달.
●1950년 6월 25일 : 한국 전쟁 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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