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泰村 주변에서 “과거 밉더라도…”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0.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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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구속 혐의 내용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

 “폭력계의 代父가 자신의 지난날을 참회하고 종교에 귀의, 봉사활동을 하며 새 삶을 찾고 있다.” “신앙생활은 법망을 피하기 위한 위장이었을 뿐 사실은 그동안 폭력배를 재규합, 끊임없는 범죄행각을 벌이며 호화판 생활을 해왔다.” 앞의 기사는 지난해 1월 金泰村씨가 폐암진단을 받고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이후 그의 ‘갱생과정’을 보도한 내용이고 뒤의 기사는 최근 다시 그를 구속하면서 검찰이 발표한 내용이다.

  전자는 사실이 아니었으며 뒤의 것이 이제 새로운 사실임을 말하고 있는 이같은 보도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비록 ‘폭로잡지’식으로 사건을 센세이셔널하게 다루고 있을 망정 그것은 검찰의 수사결과에 약간의 극적 재미만 덧붙였다뿐이지 진실에서 크게 빗나가지 않은 내용으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유의할 것은 검찰의 수사결과가 이 보도들의 유일한 근거라는 사실이다.

  피의자와 그 주변의 얘기는, 변명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탓인지 아니면 독자의 흥미를 반감시킨다고 여겨서 그랬는지, 거의 다루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스스로 취재하여 화제기사화했던 ‘김태촌의 참회’가 말짱 쇼로 드러났다는 검찰의 수사결과를 이들 언론은 여과없이, 도리어 ‘확대재생산’하여 싣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태촌씨의 주변사람들은 “검찰이 밝힌 혐의 내용이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며 “그의 구속이 특정 목적에 의해 이뤄진 것 아니냐”고 주장, “언론의 일방적인 보도”를 비난하고 있다.

  먼저 종교 관련 부분. 검찰은 김태촌씨가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서 겉으로는 불우이웃돕기 친목단체를 가장한 신우회를 지난해 5월 결성, 폭력조직을 관리·확대해왔다고 밝혔다. 그 예로 금식생활을 하던 경기도 파주군 오산리 순복음기도원 야산에서 5백명을 모아 기도축복성회를 개최한 사실을 들었다. 기도원은 또 건달 등 외부인사와의 연락장소로 활용됐다는 것이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관계자에 따르면 김태촌씨는 지난 86년 인천교도소에서 자살을 기도한 이후 이 교회와 관계를 맺게 됐다고 한다. 그는 조용기목사의 설교테이프를 듣고 “목사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있다. 회개하여 참다운 생활을 하고 싶다. 신앙서적을 보내주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했다는 것이다.

  조목사는 “뉴욕의 폭력배 두목 니키크루스도 회개해 유명한 부흥전도사가 됐다. 신앙생활에 정진하여 한국의 니키크루스가 되라”는 편지와 함께 책과 테이프를 김씨에게 보냈는데, 이는 특별한 것이 아니고 한달에 6백~8백통씩 조목사에게 보내오는 같은 류의 편지에 대한 답신의 하나에 불과했다고 이 관계자는 밝혔다.

가족과 교회관계자들 “신앙생활 진실했다”
  가족과 교회관계자들은 김태촌씨가 “지난해 출소 이후 폐암 수술을 받은 뒤부터 실제로 신앙에 깊이 빠져든 것 같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1년여 동안 꾸준히 나가면서 지난해 4월경 인천집회에서 처음 조목사로부터 안수기도를 받았다. 파주 오산리기도원(최자실 기념 기도원)에는 이즈음 출입하기 시작했으며 올 1월까지 가끔씩 찾아와 기도생활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재소자 선교회의 평회원으로서 봉사와 간증활동도 벌였다. 그는 신우회도 이 시기에 병상에 있으면서 “심장병어린이동기 등에 후배들 몇 명과 뜻을 같이 하기로 하고 결성한 것”이라고 당시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었다.

  이 교회관계자는 석달 전쯤 김씨가 조목사를 찾아온 적이 있는데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이때는 조목사도 얘기를 들어 김씨에게 관심을 갖고 있던 중이어서 “요즘 신앙생활은 잘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그는 “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라며 눈물을 글썽이더라는 것이다. 그는 “오래 못살 것 같습니다. 목사님이 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얼마 안되는 재산이지만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쓸 계획입니다”라며 절망적으로 말하기도 했는데 얼굴이 백짓장처럼 창백해 병색이 완연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서울에서 더 유명한 ‘서방’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광주시 서구 우산동에서 월세를 얻어 간판집을 하고 있는 김태촌씨의 맏형 泰秀(52)씨는 “태촌이가 몸이 나빠지면서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한 것 같다”며 “얼마 전에 집에 왔을 때 이제 제발 손씻으라고 했더니 ‘예 알겠습니다 개척교회라도 하나 세우고 전도사가 되렵니다’라고 대답하더라”고 말했다.

  김태촌씨는 48년 전남 담양에서 산판사업(숯장사)을 하는 부모 밑에서 9남매 중 다섯 째로 태어났는데, 형 태수씨에 따르면 전가족이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업이 망해 이곳 ‘서방’으로 이사오면서 자식들이 모두 학업을 그만두어야 할 형편에 이르렀다. 김태촌씨는 이때 국민학교를 겨우 마치고 월사금도 없는 동네 고등공민학교에 들어갔으나 이마저 1학년 때 중퇴, ‘아이스께끼통’을 짊어졌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교회는 잊어버리고 불량소년들과 어울려 비행에 빠지면서 소년원에 들락거리게 됐다. “완전히 버려서” 소년원을 나와 서방의 건달패 속으로 들어간 것이 영영 ‘서방파’사람으로 굳어진 배경이었다고 형은 한숨짓고 있다. 그러던 그가 마침내 교회를 다시 찾게 돼 한시름 놓게 됐었다고 한다.

  오산리 기도원에서의 김태촌씨 행적은 자세히 확인되지 않는다. 이 기도원 관계자에 따르면 나가고 들어오는 게 자유로워 출입자들을 하나하나 살피지 못해 김태촌씨의 기도원내 생활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인데 다만 경찰이 자주 찾아와 그가 드나들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고 한다. 경찰이 그를 계속 따라붙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검찰이 발표한 몇건의 혐의는 모두 수개월 전의 일이다. 왜 이 시기에 그를 잡아야 했는지 관심을 끄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기도원 관계자는 야산에서 5백명이 모였다는 얘기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도하는 장소에 폭력배들이 운집한다는 것은 상상이 불가능한 일이고 그가 참석한 큰 규모의 어떤 기도회가 잘못 전해졌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서방파’ 출신으로 현재는 건축업을 하고 있는 모씨(44)는 “언론이나 수사기관에서 조직폭력의 동원규모를 말할 때 오륙백명이란 숫자를 쉽게 쓰는데 그것은 터무니없는 과장”이라며 야산집회의 가능성에 회의를 표시했다. “조직의 관리능력, 무엇보다 숙식해결의 문제 때문에 적정규모는 항상 20명선”이라는 것이 그가 알고 있는 주먹세계의 상식이다.

병원에선 “허위진단은 있을 수 없는 일”
  세브란스병원에 그가 입원하고 있을 때 “검은색 정장의 어깨들이 수십명씩 찾아와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문병하고 병원주차장에는 이들이 타고온 고급승용차들로 항상 붐볐다”는 등의 일부 보도 내용 또한 병원측으로부터 확인이 되지 않고 있는 사실이다. 이 병원의 한 직원은 “‘그런 사람들’ 같은 문병객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주차장이야 붐비지 않을 때가 있읍니까?”라며 “요즘 신문을 보면 참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이번 김태촌씨의 범죄사실 중 공갈협박협의와 관련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사건이 있다. 조용기목사의 아들(26)이 지난 86년 결혼한 이후 불화로 오랫동안 별거상태에 있는 MBC탤런트 출신 부인 나모(25)씨에게 이혼을 요구했으나 나씨집에서 거액의 위자료를 요구하며 불응하자 그가 부하들을 동원해 나씨의 아버지를 협박, 강제이혼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검찰의 발표내용에는 조목사의 개입사실이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는 조목사가 마치 김태촌씨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의 조직을 동원, 집안일에 이용한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순복음교회측은 이들 언론을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할 방침이라면서 교회와 조목사의 명예회손에 대한 ‘응징’을 천명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 교회의 한 관계자는 “김태촌씨가 나씨와 그녀의 부친을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협박이 아닌 설득이었을 것”이라며 “그가 기질이 있는 만큼 후배들과 함께 ‘어깨시위’정도는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나씨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돼 이혼하려 했지만 조목사의 사회적 위치를 생각해 나씨집에서 엄청난 금액을 요구하는 바람에 이혼은 이뤄지지 않고 교회에 소문만 퍼지게 돼 조목사가 그동안 몹시 어려운 입장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즈음 교회에 다니던 김씨가 어느날 찾아와 “목사님을 돕고 싶다. 나씨 아버지가 전라도사람이라고 하니 얘기가 통할 것 같다”며 자신이 나서볼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이 일로 그가 조목사를 만난 일은 없으며 자신과 그의 후배들이 “은혜를 갚아 보려는 그쪽 사람 나름대로의 의리 같은 것에 의해” 나씨측을 만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큰 사건일수록 수사기관에서는 “관련제보가 잇따라 들어와 내사에 착수했다”고 수사의 배경을 발표할 때가 많다. 이번에도 검찰(서울지검 강력부)은 “김씨가 폭력배 경영의 일류 살롱을 출입하며 평상인처럼 음주행각을 했다” “수술과 치료를 맡았던 병원관계자들과 수시로 접촉하며 제주도까지 가서 향응을 베풀었다” 등과 같이 환자의 활동으로 볼 수 없는 “왕성한 개인활동에 관한 제보가 많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김씨의 폐암을 진단한 병원측에도 협박사실이 있었는지에 대해 수사를 벌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안동병원과 세브란스병원측은 이에 대해 “허위진단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인하면서 “당국의 수사가 일정 범위를 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음주사실에 대해서는 김씨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그는 젊었을 때부터 술 담배를 모르고 지낸 사람”이라며 한결같이 ‘제보’에 대해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그와 꽤 오래 생활해온 교회 관계자들도 그가 음주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의 과거의 죄를 몇번씩이고 나무랄 수는 있으나 이번에 또다시 걸려들게 된 혐의는 어쩐지 명확치 않다”는 것이 가족의 주장이다.

  김씨의 주변사람들은 빠찡코 영업권의 경우에 대해서도 ‘새삼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쪽 세계에서는 강제인수란 말보다는 합법적인 양도로 통한다. 영업의 특성상 나이트클럽 오락실 등의 영업을 주먹들이 거의 모두 임대해 같고 있으며 영향력의 변화에 따라 주인이 자주 바뀌는 것은 천하가 아는 현실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들은 “우리들끼리는 태촌이 구속이 모 실력자의 구상에 들어 있는 몇가지 일 중 하나라는 등의 사회분위기 혁신 차원에서 일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도 많이 한다”고 전했다. 김씨를 구속한 서울지검 강력부의 한 검사는 이에 대해 “그를 계속 예의주시해오던 중 혐의가 드러나자 상징성도 있고 해서 지체하지 않고 검거·구속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최근 “쓸데가 있으니 돈을 보내달라”며 자신이 빠찡코 지분을 갖고 있는 광주신양파크호텔측에 송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가 잡힐 당시 가지고 있던 2억여원 상당의 당좌수표와 현금은 아마 그 돈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주변사람들은 추측하고 있다. “얼마 못 살것이라고 보고 신변정리를 하려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라고 형은 생각하지만 폭력조직을 재건하는 데 쓸 자금이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나눠줄 ‘남은 재산’”이었는지는 수사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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