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내일은 ‘맑음’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0.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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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경기팽창, 환율· 원자재 가격 안정세…인플레 압력이 위협요인

 몇 달 전 90년대가 열리면서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앞으로 10년간의 세계경제 전망은 부정적인 시각 일색이었다. 그후 5개월이 지난 지금, 국제통화기금(IMF)은 <半期 보고서>를 통해 올해 세계성장률을 당초 2.9%에서 2.3%로 하향 조정했다. 올해 2.3%의 성장은 82년 이래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우리의 관심은 과연 이같은 성장둔화가 심각한 경기침체로 떨어질 것이냐 하는 것에 모아진다. 이렇게 보면 세계경제의 앞날은 매우 어두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82년 세계평균 GNP성장률은 전년비 마이너스 0.3%인데, 90년에는 2% 이상의 성장을 기록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선진공업국은 2차대전 종전 이후 가장 긴 8년 동안의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IMF가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 이유는 미국의 수출증가와 내수확대가 예상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삼성경제연구소의 金滎東이사는 분석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미국의 잠재 성장률이 약 2% 수준이라는 점을 들어 올해 미국경제가 이 정도 성장한다면 견실한 성장이라고 판단한다.

  그 영향력이 떨어지고는 있지만 미국의 경제상황은 아직까지도 세계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얼마전 미국의 대표적 경제예측가 68명 가운데 80%이상이 미국경제가 올해 2%로 다소 둔화되었다가 내년에는 2.4%로 다시 높아질 것이라는 낙관론을 편 바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으로서는 지난 60년대 이후 가장 오랜 기간인 8년10개월 동안 지속적인 경기팽창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

  IMF는 중기적으로 세계경제가 침체국면에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세계성장률이 91년에 가서는 3%, 92~95년 사이에는 3%를 상회하는 수준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낙관적 성장전망마저 새로운 경제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지나치게 보수적인 예측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게 대두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뒷받침할만한 몇가지 근거를 들고 있다. 최근 세계경제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10년 전에 비해 세계경제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10년 전에 비해 세계경제의 동조화 현상이 퇴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고 있는 서방 7개국(G-7)의 경기순환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캐나다나 영국은 연 성장률 2%를 밑도는 하강국면을 맞고 있는 반면 일본과 서독을 포함한 대륙 유럽은 4% 이상의 활기 성장을 타나내고 있다. 세계경제가 한꺼번에 무너질 위험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통독 영향 등 지역적 요인이 변수
  뿐만 아니라 유럽의 성장세가 IMF의 예측을 상회할 가능성도 높다. IMF의 예상치는 서독경제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統獨의 영향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독의 영향에 힘입어 올해와 내년 서독의 성장률은 76년 이후 처음으로 일본의 성장률을 상회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독일경제의 고도성장은 무역확대 등을 통해 인근 국가에 파급될 것이다.
  또다른 특징은 원자재 가격의 안정 된 움직임이다. 71~74년, 75~79년 두차례 경기상승 국면은 원유가와 원자재 가격상승으로 공업국들의 교역 조건이 크게 나빠지면서 갑자기 침체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와서 원유가 하락 등으로 교역조건은 꾸준히 개선되었다. 현재 제3차 오일쇼크에 대한 경고는 호소력을 잃고 있다. 올해 원유가 움직임도 배럴당 1~2달러 안팎의 등락을 보이면서 안정되리라는 전망이다. 일부 품목을 제외한 대부분의 원자재 값도 마찬가지이다.

  “90년도 세계경제의 가장 큰 변수는 통독과 동유럽 개혁을 포함한 국제정치적 요인, 그리고 EC통합이나 아·태협력기구 활성화 등 지역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고 한국은행의 해외조사담당자 林虎烈씨는 전망한다. 통독 하나만 놓고도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경제적 분석이 나온다.

  한가지 예로 독일통일은 엄청난 돈을 필요로 한다. 서독정부는 이를 위해 연간 3백언달러 규모의 자금이 필요한데, 헬무트 콜 총리는 유권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세금은 올리지 않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조세를 줄임으로써 생산을 늘리고 이에 따라 세수증대를 꾀하는 레이건이나 부시의 공급 중시 논리를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성장만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80년대 美 중앙은행은 성장에 따른 인플레 압력을 해소하기 위해 긴축정책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서독 중앙은행 칼 푈 총재도 머지않아 80년대초 美 연방준비위원회 칼 볼커 의장과 똑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를 빗대어 “헬무트 레이건과 칼 볼커의 대결”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올 선진국 인플레 3.6%에서 억제될 듯
  IMF는 또 현재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것이 있다면 인플레지 경기침체는 아니라고 본다. 인플레를 잡지 않고 경제성장을 계속 기대할 수는 없다. 과거의 경기상승 국면은 경기가 과열되고 임금과 물가가 오르면서 뒷걸음질쳤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는 부랴부랴 이자율을 올리면서 지나친 경기부양에 브레이크를 걸었던 것이다. 71~74년까지 그리고 75~79년까지 이어진 호황기와 비교적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세계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원자재 값 등의 정세가 80년대초에 비해 덜 불안하다”는 것이 한국은행 해외조사부의 진단이다. 그러나 지금 세계경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부담은 높아지는 인플레 압력이다. 82년 이후 지속된 경제팽창으로 구매력 증가와 임금상승에 의한 구조적인 인플레 위협이 88년 이후로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IMF는 현재 각국의 긴축기조가 유지되면 선진국의 올해 인플레는 3.6% 정도에서 억재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인플레 만큼은 모든 국가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항상 꿈틀거리는 휴화산 같은 존재이므로 언제 다시 세계경제를 죄어올지 모른다.

  美 MIT대학의 레스터 더로 교수는 90년대 중반 또 한차례 유가급등이 예상됨에 따라 인플레 압력이 고조되나, 선진국은 내부 사정으로 본격적인 反인플레정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물가상승률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선진국들은 불황을 피래가기 위해 어느 정도 인플레를 감수하는 정책 선택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지난 5월초 워싱턴에서 열렸던 G-7 재무장관회담에서 IMF 기금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통에 인플레 예방책이 뒷전으로 밀렸다는 점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관측자들이 적지 않다.

  환율은 우리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중요한 경제변수이다. 현재 서독 마르크 등 유럽통화가 안정적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본다면 남은 문제는 역시 엔화와 미 달러화의 공방이라 할 수 있다. 금년초 엔화의 대미 달러 약세가 한국수출에 상당한 장애요소로 등장했지만 그 약세기조는 최근 다소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엔화와 달러의 환율은 지난 70년초 1달러 당 3백엔에서 78년에는 1백70엔까지 절상되었다. 석유파동 이후 82년말 한때 3백엔 수준으로 되돌아갔으나 부시정부가 들어선 후 88년에는 1백20엔까지 절상되는 등 큰 진폭으로 움직여왔다. 단기적으로 보면 다음달 미국 휴스턴에서 열릴 G-8 정상회담과 가을에 열릴 IMF총회의 영향으로 9월 이후에는 달러당 1백45~1백50엔 수준에서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노무라증권 등 각종 연구기관에서는 중장기적으로는 달러당 1백엔까지 절상돼야 한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경제적 초강대국 일본이 자기 나라 통화를 계속 평가절하된 상태로 놓아두어서는 안된다는 논리다.

  무역과 투자 등 실물경제에서 미국이 일본에게 이미 주도권을 내주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국제금리의 움직임은 아직까지 미국이 그 진원지 역할을 한다. 현재 미국 기업의 부채비율은 날로 높아지고 있고 이에 따라 기업의 적응능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다. 따라서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로 기업들은 금리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올해로 4년째 연방준비위원회(FRB) 의장직을 맡고 있는 그린스펜은 행정부의 금리인하 압력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은 레이건 행정부 시절 쌍둥이 적자 아래서도 경기팽창을 누렸고, 부시 행정부로서도 이같은 호황국면을 마다할 리가 없다. 따라서 행정부로서는 이자율을 낮춤으로써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지만, 금융당국은 물가를 다스리기 위해 금리인하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급격한 금리인하가 어려운 상황에서 금리는 당분간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들이 대부분이다. 내린다 해도 내년에나 가능한 일로 금융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국 증권업계의 대표적 이코노미스트로 꼽히는 헨리 카우프만은 뉴욕 증권가 모든 사람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거물이다. 87년 ‘블랙 먼데이’ 이후 그의 경제전망에 대한 평판이 많이 퇴색하긴 했지만 그 영향력은 아직 살아 있다. 그러나 그의 소문난 경기예측도 결국 ‘49%의 확률’밖에 갖고 있지 못하다고 꼬집는 비평가가 있다. 미래의 상황을 정확히 예측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10년 전보다 개선된 국제경제 환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 세계경제는 10년 전 80년대보다 훨씬 나은 모습으로 출발하고 있다.

  경제여건이 개선된 것은 지난 8년간 이어졌던 경제성장 덕분이기도 하다. 또한 87년 10월 주식시장 붕괴에서 벗어난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가간 협조가 비교적 잘 되었다는 점도 무시 할 수 없다. 당시 가열될 기미를 보이던 미국경제를 진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서 블랙 먼데이는 시작되었다. 결국 미국 정부는 다시 금리를 인하할 수밖에 없었다. 높은 금리를 쫓아 해외로 유출되는 달러를 막기 위해서는 서독과 일본 등 주요 금융시장의 금리를 같이 내려야만 했다. 이에 일본과 서독의 중앙은행은금리인하 공동작전을 폈고 전세계 증권시장의 파동을 멈추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직접적인 관심사는 새로운 국제무역질서라고 할 수 있다. 우루과이라운드의 타결이 바로 그중의 하나이다. 올해 말까지는 돌파구 마련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다수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 세계무역질서에 상당한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金이사는 “지난 3~4년간 우리 기업들이 지나친 자신감에 빠져 세계 경제 환경변화를 등한히 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선진제국의 도약, 후발개도국의 추격으로 샌드위치격이 돼버린 우리 기업들이 살 수 있는 길은 품질·기술 경쟁력 제고밖에 없다”고 밝힌다.

  한국경제의 해외의존도는 날로 커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경제의 변화에 잠시나마 한눈을 팔게 되면 최근 겪고 있는 것과 같은 난국은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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