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TV '화면 쟁탈전‘치열
  • 우정제 기자 ()
  • 승인 1990.06.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2년 허용 방침에 현대 등 대기업 ‘황금시장’노려… 시설업체도 숨가쁜 경주

정부는 오는 92년부터 민간업체에 종합유선방송을 허용하고 이에 대한 준비사업으로 늦어도 내년 7월부터 시범방송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같이 유선텔레비전의 신설 움직임이 가시화됨에 따라 사업참여를 희망하는 업체들이 열띤 경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슈선텔레비전 방송은 사업적 측면에서 크게 세 분야로 구분된다. 네트워크사업을 맡는 전송망사업자, 방송국의 편선 및 송출을 담당하는 지역 유선방송운영자, 그리고 프로그램 공급자가 그것이다. 그런데 첫 시행단계에서는 위의 세가지 사업이 모두 정부 주도로 이뤄지지만 일정 기간 이후에는 망사업권만 한국전기통신공사(KTA)에서 갖고 유선방송 운영권과 프로그램 제작권은 민간업체에 넘기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다.

기존 군소업체 ‘허가권’ 2억원설
  최근 유선방송업계에는 현재 영업중인 영세 유선방송업체의 허가권이 막대한 프리미엄이 붙은 채 억대에 거래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유선텔레비전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모 재벌, 혹은 ‘돈 있는 사람들’이 2년 후로 예상되는 종합유선방송 ‘운영권을 따내기 경쟁’에서 확실한 보장을 얻어두기 위해 철거민들의 ‘딱지’ 사들이듯 허가권을 사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팔라는 권유를 직접 받은 바는 없지만 벌서 얼마전부터 자본있는 사람들이 우리 같은 군소업체의 허가권을 사러다닌다는 얘기는 듣고 있습니다. 가입 훗수에 따라 허가권의 가격에도 차이가 있지만 대략 1천 가구 가입시 1억5천~2억원을 준다고 하더군요.“ ㅅ중계유선방송 총무 金榮水(45)씨는 대기업의 업계 잠식에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지금의 식구들을 흡수해주고 응분의 보상만 해준다면 경쟁력이 없는 군소업체들에게 그리 나쁠 게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생존권이 걸린 업계 종사자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대기업의 ‘예정된 독식’을 목전에 두고 몹시 착잡하고 불쾌하다는 의견들이 지배적이다. 한편 유선방송허가권을 둘러싼 이같은 이야기들에 대해 유선방송 추진위 위원 金萬龍교수(한국외국어대·방송학)는 소문 일체를 일축하면서 종합유선방송 허용시 기존 업자들의 기득권은 전혀 인정 될 수 없다고 못박는다.

  “물론 생존권 차원에서 영세 유선방송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연구하고는 있습니다. 영업허가신청을 할 때 일정 지분을 준다든가 지역 유선방송업자와의 사전협의를 거쳐 마찰없이 흡수되도록 유도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지요.”

  90년 5월 현재 유선방송협회(회장 金吉賢)에 가입된 업체 수는 1천6백개. 무허가업체까지 합하면 전국에 7천~8천개가 난립해 있다. 이 가운데 정식 허가된 중계용 유선텔레비전업체는 7백38개(음악유선 78개 포함)로 약1백50만 가입자를 갖고 있으나 시설미비와 규모의 영세성으로 발전이 정체된 상태이다.

  유선텔레비전 사업에 바짝 구미가 당긴 대기업들은 지금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갖추고 있을까. 현대그룹은 이미 종합유선방송사 구상의 일환으로 법인체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홍보실측에서는 부인하고 있으나 “1천3백억원대의 투자 규모로 유선텔레비전 사업의 세 분야 모두를 총괄하는 대회사로 확장시키려는 의도”라는 게 업계의 추측이다. 럭키금성그룹의 경우는 금성반도체 네트워크사업부에서 쌍둥이빌딩내에 사내방송국인 ‘엘지커뮤니케이션센터’를 운영하며 유선텔레비전 사업의 확장을 꾀하고 있는데 한전과 인터콘티넨탈호텔 등에 이미 유선텔레비전방송국 및 시스템 설비를 지원한 바 있다. 삼성도 지난해 본관 빌딩내에 국내 최고 수준의 사내 유선방송국을 개국, 계열사 유선방송국들과 더불어 요일별로 자체 제작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등 단단한 기술적 기반을 쌓고 있다.
  한편 <경향신문> 인수과정에서 정부로부터 유선텔레비전 운영권 내락을 받았다는 설이 무성했던 한국화약의 경우도 경영기획실내에 유선텔레비전 사업을 위한 조사팀을 결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선텔레비전의 선로 및 시설설비, 기자재 납품을 희망하는 업계의 관심 또한 뜨겁다. 한국전기통신공사에 따르면 90년2월 현재 유선텔레비전의 설계 및 시공, 부품 납품 가능 업체로서 사업참여를 희망하는 기업은 57개로 나타났다. 이 업체들을 비롯해 군소업체들까지도 지금 저마다 ‘10조~15조’의 하드웨어 황금시장을 향해 숨가쁜 경주를 시작한 것이다. 종합유선방송을 겨냥해 88년 창립되어 현재 쌍방향기자재의 생산준비를 완료해놓고 있다는 ㅅ전자의 한 관계자는 최근의 경쟁열기를 “숟가락 가진 업체들은 다 상 보고 달려드는 추세”라고 설명한다.

독립프로덕션에 새 활로
  유선텔레비전은 지난 몇 년간 침체기에 빠져 있던 독립프로덕션에게도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고 있다. 몇 안되는 방송전문 프로덕션 분 아니라 비디오프로덕션 및 문화영화 제작 업체까지도 부쩍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유선텔레비전 92년 허용발표가 방송국의 외주개방과 맞물려 프로그램의 획기적 수요증대를 가져오리라는 확신 때문이다.

  “스튜디오를 증설하고 프로듀서를 스카우트하는 등 시설 및 시스템 보강을 위해 선투자를 할 계획입니다. 유선텔레비전 사업에 참여를 희망하는 군소업체는 많지만 실제로 노하우를 쥔 업체는 대여섯군데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그나마 정부의 지원이 따르지 않는다면 독립프로덕션의 경기 활성화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고 시네텔서울 상무 黃在睦씨는 신중론을 편다. 지난해 3월 본격 방송전문 프로덕션으로 발족된 서울텔레콤은 후발업체이면서도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얼마전 스포츠 전문 유선텔레비전 네트워크인 미국의 ESPN과 독점공급계약을 맺은 데 이어 현재 미국의 뉴스 전문 유선텔레비전 네트워크인 CNN과 유선방송용 뉴스 공급계약 체결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전문가들은 독점적이고 폐쇄적인 방송구조 속에서 그간의 프로그램 제작이 비능률적·비창의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이제 본격 유선방송이 시작되면 다체로운 프로그램들의 질적 경쟁이 야기돼 방송사들은 자연 문호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내다본다. 유선텔레비전의 해악으로 흥행에 치우친 저질 프로그램, 특히 비윤리적인 수입 프로그램의 범람이 우려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영상과련산업의 진흥을 위한 발판으로 큰 기대를 모으로 있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