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할수록 효과 큰 시위
  • 안재훈 (객원편집위원) ()
  • 승인 1990.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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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병, 투석전, 각목전, 태권도식 구듯발질, 그리고 방독면과 최루탄…. 이와 같은 장면이 연출되는 한국의 시위 모습은 사진기자에게 더 할 수 없이 좋은 소재다. 따라서 이런 장면들은 지난 10여년간 전세계 신문, 텔레비전에 자주 보도되었고 한국의 이미지는 ‘시위의 나라’로 굳어가고 있다. 외국인 구경꾼들에게는 20세기에 입수가 가능한 멋있는 전쟁·전투의 실전장면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위의 효과와 정책의 반영이란 면에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워싱턴이 으뜸이다. 워싱턴에서는 공공정책이나 이슈가 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찬반 시위가 따른다. 핵무기 민권 인종차별 환경오염 노동 낙태 교육 등 이슈가 생기면 시위가 뒤따르는 데 이와 같은 여론형성 민주주의 전통이 미국인들로 하여금 세련되고 조용한 ‘데모기술’을 익히게 했다.

  최초의 도시계획 설계자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엔지니어 출신 피에르 랑팡이 위임을 받아 1791년에 설계한 도시가 워싱턴 D.C다. 당시 랑팡이 1백여년 후에 각종 데모가 끊임없이 있을 것을 예견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우연인지는 몰라도 크고 작은 공원과 공공건물을 섞어놓고 넓은 광장으로 연결시킨 랑팡의 설계는 데모대나 이와 무관한 일반시민 양측에 대단히 편리하도록 되어 있다.

  워싱턴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데모대가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다. 주최측은 사전에 참가예상자를 경찰에 알린다. 경찰은 이 자료를 토대로 시민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사전준비를 철저히 한다. 집회의 자유는 헌법상의 권리일 뿐 아니라 미국 정치사와 맞붙어 다니는 것이므로 경찰은 질서유지와 시민의 안녕보호에 책임이 있다. 데모대측은 장소·시간·인원 등을 경찰에 보고함으로써 이동변소 식수공급 의료구급반 긴급대책 쓰레기수거 등의 준비가 가능한 것이다.

어렵게 이룩된 평화적 시위의 전통
  규모가 큰 데모일 경우에는 주최측이 질서유지요원(marshall)을 배치한다. 두 개의 반대 그룹이 동시에 데모를 할 때에는 경찰이 가운데에 끼어서 폭력대결을 막기 위한 중간벽 노릇을 한다.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잘 계획된 시위일수록 여론의 호응을 받는다.

  이러한 평화적 시위의 전통은 쉽게 쌓아진 것이 아니다. 반세기 전 과격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가 동원되었을 때 말을 타고 진두지휘한 군인은 당시 초급장교였던 맥아더 원수였다. 60년대의 민권운동, 反戰데모는 여러 대학에서 유혈사태를 낳기도 했다. 필자는 70년대초 <워싱턴포스트>紙 수도권부 견습기자로서 ‘모라토리움 반전데모’라는 것을 처음 취재할 때 수백명이 운동장에서 집단 체포되는 것을 보고 놀랐던 일이 있다. 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직후에는 워싱턴 경찰력이 모자라 주방위군이 진압에 동원되기까지 했다.

과격한 행동으론 시민들의 호응 못얻어
  그러나 이제는 조용할수록 효과가 있다. 백악관 앞이나 대법원 청사 앞에는 피킷을 들고 묵묵히 데모하는 사람이 늘 눈에 띈다. 이들은 관광객과 사진도 찍고 도보 순찰경관과 담소도 한다.

  워싱턴에서 가장 데모가 많이 일어나는 곳은 소련대사관 앞이다. 리투아니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에스토니아 소련망명인들 폴란드계 유대인망명단체 등 데모는 끊임이 없다. 그러나 시끄럽게 떠든다고 주목을 받는 것은 아니다. 침묵데모나 비폭력데모가 결국에는 여론 동원에 이기게 되어 있다. 데모를 보면 인종, 역사배경, 문화권에 따라 모습과 방법이 다르다. 데모의 전통과 문화가 특수성을 띠는 것이다. 이들 망명객들의 반정부데모는 워싱턴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으레 확성기를 들고 시내로 들어와서 떠들어대기 때문이다. 전두환 前대통령의 방미 땐 워싱턴에서 환영시위와 항의시위가 동시에 있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반면에 국무부 앞에서 한국의 인권개선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나 침묵시위를 벌이는 반정부인사들이 있었다. 이런 방법이 외국 언론인들에게는 크게 먹혀든다.

  反마르코스 데모도 많은 편이었고 최근 10여년은 엘살바도르·니카라과를 둘러싼 미국정책의 찬반 데모도 많았다. 문제가 있는 나라의 귀빈이 워싱턴을 방문하면 으레 데모가 있게 마련이다.

  건국 후 2백14년간 정치체제가 크게 뒤바뀐 적이 없기 때문에 미국의 데모는 과격할 필요가 없었다. 불만은 선거로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시위 민권운동 법원판결불만 인종차별 등 사회문제성 데모는 늘 충돌의 위험을 안고 있다.

  10여년 전에 전국에서 농경업자들이 트랙터를 몰로 올라와서 교통을 막고 공원을 파손시킨 시위가 있었다. 이때 격분한 시민·텔레비전 시청자·국회의원·행정부 관리들은 결국 이들에게 불리한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또 소비자 불매운동으로까지 확대되었다.

혼이 난 농경업자들은 이런 식의 시위는 피하는 것이 좋다는 교훈을 얻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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