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국민을 ‘노름꾼’으로 만드는가
  • 정운영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 승인 1990.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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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복덕방을 4천만개쯤 만들어 국민 각자에게 하나씩 맡기면 어떻게 될까?

공해도 없고, 노동쟁의도 심하지 않으며, 더구나 아파트 주변의 황금같은 터전에 별 박히듯이 들어박혀 그 황금값에 못지 않은 임대료를 내면서도 영업을 계속하는 것을 보면 필시 그 수입도 대단할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경제관리나 어떤 경제전문가도 이 기막힌 제의에 선뜻 응하지 않는 까닭은 우선 그것이 ‘경제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이 경우의 불가능은 예컨대 모든 국민이 석탄만 캐낼 수는 없다거나 혹은 모든 국민이 수주만을 만들 수는 없다는 사정과는 전혀 그 의미를 달리한다. 석탄과 소주는 외국에 팔아서 석유와 커피로 바꾸어올 수 있으나, 집 사고 땅 파는 재주야 어디에도 수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집의 생산이 앞서고 집의 거래가 뒤따라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이 어름에 있다. 다시 말해서 집을 짓거나 집을 팔거나 간에 어느 개인에게는 꼭같이 이득이 될 수 있지만, 국민경제 전체로 살필 때 앞의 경우에는 부가가치가 생산되나 뒤의 경우에는 소유권의 이전만이 발생할 뿐이다. 경제학에서는 생산을 통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행위를 ‘투자’라 부르고 거래에 의해 양도이윤을 챙기는 행위를 ‘투기’라고 부른다.

  놀부가 소주공장에 투자해 2백만원을 벌었다면 그만큼 새로 소득이 늘어난 셈이지만, 반대로 토지 투기에서 2백만원을 벌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그만큼을 잃는 사람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만약 그 상대가 연탄공자의 경영자로서 투기판에 뛰어든 졸부씨라면, 실제로 그 피해는 이 공장에 고용된 흥부의 임금으로 전가되기 일수이다. 요컨대 놀부가 투기로 얻은 2백만원은 이렇게 졸부가 투자로 벌거나 흥부가 임금으로 받아야 할 2백만원을 가로챈 몫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이 바로 우리가 투기라는 이름의 요술에 대해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투기를 가르친 장본인은 6공정부
  투기는 ‘6공 현상’이다. 편안히 앉아서 떼돈 버는 법을 누군들 마다랴마는, 실제로 그런 길을 열어주고 또 실제로 그런짓을 가르친 장본인이 실로 현정부였다. 올림픽을 전후하여 도시재개발이란 명색으로 마구 건물을 지어올렸고, 국제수지 흑자를 감당할 요량이 없어 한껏 증권시장을 불려놓았고, 동서 전철의 건설과 중국과의 교역이란 허황한 구호 아래 해안 지대의 땅값을 왕창 치솟게 만들었던 처사들이 모두 일확천금이란 ‘노다지’ 꿈의 바람잡이 행세를 도맡고 나섰기 때문이다. 몰론 기업의 탐욕이나 일부 부유층의 몰지각이 저지른 추한 행실도 간단히 넘길 수는 없다. 연달아 4년 동안 3백20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내던 그 호시절에 재벌들은 노동쟁의 타령을 늘어놓으며 투기에다 화풀이를 해댔고, 돈푼깨나 지닌 룸팬들 또한 투기로써 인생의 스트레스를 달랬다. 그러나 일부 못된 기업들이 그렇게 약삭빠르게 처신했어도 정부가 여신관리만 철저하게 펴나갔던들 재벌들의 투기 광란은 상당히 단속할 수 있었고, 또한 일부 못난 백성들이 그렇게 어리석게 처세했어도 정부가 토지관계의 입법을 본래대로 밀고 나갔던들 부자들의 투기 질환은 제법 치료할 수 있었을 터이다.

  소 팔고 논 잡혀 주식을 사도록 유혹한 원죄도 사실상 국민주 보급이니 증권인구 저변 확대니 해가며 도박심리를 부추긴 정부의 철딱서니없는 선동에 있었다. 이마에 땀 흘려 일하는 대신 주식시세표 앞에 놓고 전자계산기 두드려가며 돈 버는 기회를 정부가 앞장서서 마련해준 셈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소득을 창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주식투기도 토지투기와 다를 바 없고, 놀부가 증권시장에서 딴 2백만원은 졸부가 잃은 2백만원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또한 노름판의 생리와 다를 게 없다.

증권기사 크게 싣는 언론도 문제
  그런데 정부가 바로 이 미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7백만 농민의 애환이 달린 추곡수매의 문제를 놓고 국회에서 고함과 삿대질로 다섯달을 끌다가 드디어 임시국회까지 열어 결정한 규모가 1조5천억원이었다. 그런데 작년 12월 어느날 아침 느닷없이 재무장관은 증권경기의 부양을 위해 한국은행으로 하여금 무려 2조7천억원을 지원토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주식이라는 그림딱지를 생전 구경조차 못한 국민들도 이 어마지두의 소식을 듣고는 슬슬 돌기(?)시작했다. 밥보다 중요하고 옷보다 중요하고 집보다 중요한 이 증권열차를 행여나 놓칠세라 투전판으로의 행진을 시작한 것이다.

  증권투기의 열풍에는 분별없는 언론의 판단도 단단히 한몫을 기여했다. 불과 16면짜리의 신문에서 매일 한두면을 이 증권기사에 할애하면서 은근히 사행심을 부채질하는 데에 실제로 일익을 담당해왔기 때문이다. 도대체 제호와 일기예보를 빼고 나서 증권시세표 이상으로 신문의 지면을 확고하게 점령한 난이 어디 있으며, 도대체 종합주가지수 몇 포인트 떨어지는 일에 온통 난리라도 터진 듯이 야단법석을 떨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4천만개의 복덕방으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진리를 정녕 깨달았다면, 전 경제를 도박판으로 만들고 전국민을 노름꾼으로 모는 투기 행위는 이제 그만 끝을 내야 한다. 정직한 노동의대가로 국민경제를 건설하는 일에 국민도, 기업도, 정부도, 언론도 새삼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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