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결국 ‘현실'이었다
  • 김현숙 기자 ()
  • 승인 1990.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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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삶을 선택한 전쟁포로 朱榮福씨와 작가 崔仁勳씨의 만남

이명준이 ‘크레파스보다 진한' 남지나해 바다에 투신한 뒤 작가는 참 많은 항의 받았다. '왜 그토록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로 하여금 세상을 버리게 했느냐'고. 그로부터 꼭 36년, 그리고 6?25가 터진 지 40년만에 작가는 '살아돌아온' 이명준을 만났다. 이런 일도 있는가!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암초에 걸려 다시는 떠오르지 않으리라 여겨졌던 이명준이 ‘남지나해??(자살의 유혹)를 견뎌내고 수십년을 살아낸 것이다. 전 인민군 소좌 朱榮福. 그 스물여섯의 청년 '혁명가'는 이제 백발이 성성한 노인으로 《광장》의 작가와 마주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나는 '사람이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떠올린다. 이제 다시 《광장》을 쓴다면 이명준을 투신시키지 않을 것이다.'

 주영복씨는 이명준의 분신과도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인민군으로 남하해 반공포로가 됐으며, 남과 북 양쪽에 절망하고 중립국 인도를 택해 고국을 떠나는 생애의 큰 줄거리뿐 아니라 그의 ‘전우'이명준의 정신적 생애와 그 '인격'마저도 흡사하다. 무엇보다 그는 지적인 인물이며 절제된 페시미스트이다. 이명준이 타고난 지적 탐험가였으며 독서광이었듯이 그 역시 일어?러시아어?중국어에 능통하며 언어를 다루는 솜씨도 남다르다. 이명준처럼 솔로호프?톨스토이?위고와 같은 금서를 남의 눈을 피해 읽어냈으며 자기 주장을 강하게 드러내지도 않는다. 포로가 된 순간부터 자신의 의지와 어긋나게 무리의 대표격이 되어 더 큰 무게의 갈등과 맞닥뜨려야 했던 일도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마리 갈매기와의 항해, 남과 북의 두 여인에게 찍힌 이 ??각인??의 일치는 주영복과 이명준이 동일시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崔仁勳씨의 불광동 2층 응접실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역사의 주인공과 바로 그 역사의 탐구자라는 인연에다 동향인(함경도)임이 밝혀져 한결 자연스럽게 얘기가 풀려나갔다.

 최 : 제가 분단문제를 많이 다룬 작가라고 해서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신문·잡지사에서 연락이 오곤 합니다.

 주 : 북한으로 송환되는 것도 싫다, 남한도 싫다 해서 제3국으로 갈 때는 ‘타국에다 뼈를 묻는다??는 비장한 각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물이 아닌 사람이라서 과거도 고향도 다시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80년에 한국에 왔는데 누가 ??당신네들처럼 중립국에 간 사람 얘기가 있다??고 해요. 그 사람이 자살을 했다고도 하고,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어요. (이때 최인훈씨가 자신의 저서 《광장》에 저자 서명을 해서 건네주었다.)

 최 : 지금부터 30년 전에 쓴 것입니다. 그때만큼 그 당시를 생생하게 느낄 수는 없을 거예요. 대학생이었는데 학년이 막 끝나 방학을 했을 때 신문에서 처음 포로문제를 읽었어요. 전쟁이 끝나면 으레 고향에 간다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북한송환도 거부하고 남한에 남기도 원치 않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그 숫자가 76명이든 7명이든 왜 이런 경우가 발생했는가? 여기에 한국의 역사가 집약되어 있다 하는 충격이 오더군요. 그런데 선생님을 만나 양해의 말씀을 드리자면 이 소설은 인도행 포로 76명 중 아무하고도 관련이 없이 제 상상의 공방에서 지어낸 얘기라는 것입니다. 물론 소설이라는 형식이 사실대로 쓰는 기록도 아니고, 단지 그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한 한국인 청년의 운명을 지어낸다면 이런 청년을 그려내겠다 한 것입니다. 국가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소속'을, 죽음을 담보로 하고 선택해야 했던 현대한국인의 정치적 초상화로서 말입니다. 다른 독자들에게는 이런 설명이 의미도 없고 필요도 없겠으나 선생님께만은 말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는 것입니다.

 주 : 이 소설을 쓴 목적이 우리가 인간 찌꺼기였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게 아니라 선의로 출발했다면 감사할 것이고 존경할 것입니다.

 최 : 제 나름의 동정과 이해를 충분히 표현했다고 믿습니다. 6·25는 어느 한쪽도 정의를 가지지 않은 전쟁이었어요.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실력을 겨룬 것뿐이지요. 그런 전재에서 절대절명의 명분도 없이 죽은 영혼을 위무할 목적으로 쓴 것입니다. 중립국을 택한 사람들은 죽음과도 같을 골짜기를 걸은 것이지요.

 주 : 사실 저는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중립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민군 소령까지 한 데다 POW(전쟁포로)라는 글자가 평생 따라다닐테니 조금만 삐걱하면 요주의 인물이 됐을 거예요. 물론 북에도 여기 안기부 같은 것이 있지만, 날개를 쭉 펴고 노래하며 밭갈이하는 것을 동경한 나를 그렇게 두들겨 팼어요. 맞고보니 적개심이 생기더군요. 두 주권에 봉사했으나 패가망신했고 두 주권에 반대했더니 ‘요놈의 회색분자??해요. 김일성이는 회색분자를 이승만보다 더 증오해요. 하여간 엎드린 김에 뭐한다고 살다보니깐 이젠 중립국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최 : 저는 일제하에서도 살았고 김일성 찬가도 불러보았습니다. 장교로 국군에도 복무했고 지금은 서울시민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모두 나를 속였다고 생각해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일본)이 나를 자기나라 사람이라고 속였고 김일성이라는 사람은 청산리전투 같은 큰 전과를 올린 독립선배도 있는데 감히 그들을 제치고 공을 독차지했어요. 김일성 정도의 애국자와 항일운동자는 그 위패를 모시자면 큰 수레 여러 대에 차고 넘쳐요. 그러나 그는 어떤 경위에 의해 뽑혀나왔을 뿐이고, 그 전과가 그저 그만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권위를 주장했어요. 남한에 와서 보니까 이승만은 독립운동 과정에서도 동지들에게 폐를 끼친 사람이예요. 4·19까지 그가 나라를 다스린 태도는 조선시대에서 튀어나온 노인이 했던 것 이상이 못됐어요. 미국에서 그만한 문명을 보았던 사람이 말입니다.

 주 : 저는 일본·러시아·북한·남한·인도·브라질·미국 등 7개 나라의 국가를 부르며 살았어요. 지금도 무국적으로 남아 있고 통일된 조국의 국가를 한번 더 불러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국제주의라는 게 있는지 모르지만 국경이 없이 모든 사람이 화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무국적으로 40년간을 떠돈 그가 내린 결론인 ‘국제주의??는 최인훈씨가 또 다른 작품 《태풍》에서 제시한 미래관이기도 하다. 한사람은 광장에서, 또 한사람은 밀실에 칩거해서 집요하게 매달려 얻은 이 결론의 일치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최 : 그런데 인도행을 결정했던 분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살고 계십니까?

 주 : 인도·브라질·아르헨티나·멕시코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어요. 이미 사망한 사람이 서너명되고…. 그후 이북으로 다시 돌아간 사람이 서너명되는데 남한으로 온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최 :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인천으로 옮겨와 대기했다가 인도로 가셨던 거지요?

 주 : 도트 준장 납치사건으로 수용소 내의 처절한 실상이 알려지자 그곳에서 북에 가겠다는 포로와 안가겠다는 포로를 분류해, 가지 않을 사람은 육지로 보냈지요. 그런데 이 가지않을 사람들은 ‘고향에도 못가지만 공산주의를 했던 이력 때문에 남한도 안될 것이다?? 생각하고 인도캠프로 탈출하기 시작했어요. 수용소 내의 반공포로들의 과잉애국심으로 분위기가 살벌했지요. (최인훈씨는 이때의 상황을 이미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주 : 포로가 포로를 체포해 고문하고 죽이는 것이 20세기 한국 포로수용소에서 있었던 겁니다. 나도 위기를 감지했지만 결국 당했어요. 지하실에 한달간 감금 당했는데 고문으로 절뚝거리는 체하고 지내다가 한밤에 철조망을 넘었어요. 공병 출신이라 성공했지요.

 최 : 그럼 그 76명이 그런 식으로 탈출해서 모인 사람들인가요?

 주 : 아니예요. 그러니까 54년 1월20일, 이날이 중립국관리위원단의 포로억류기간인 6개월이 되는 마지막 날인데 인도가 마지막 선택의 기회를 줬어요. 포로수용소 마당에 삼거리를 만들어놓고 똑바로 가면 남한, 왼쪽으로 가면 북한, 오른쪽으로 가면 제3국으로 가는 거예요. 이 삼거리에서 운명의 선택을 하는 거지요. 여기서 인도행을 선택한 사람이 40명이나 나왔어요. 이렇게 해서 인도캠프에 모인 숫자가 약 1백명되었는데 여기서 또다시 탈출자가 생기더군요. 하여간 포로들은 수없이 저울질했던 거지요. (《광장》의 이명준은 그 ‘저울질'의 순간을 이렇게 남겨놓고 있다. '북조선 같은 데서, 적에게 잡혔다가 돌아온 사람의 처지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생각하고, 이명준은 자기한테 돌아온 운명을 한탄했다. 제국주의자들의 균을 묻혀가지고 온 자로서, 일이 있을적마다 끌려나와 참회해야 할 것이었다. (…) 그렇다면? 남녘을 택할 것인가? 명준의 눈에는, 남한이라 키에르케고르 선생식으로 말하면, 실존하지 않는 사람들의 광장 아닌 광장이었다. 미친 믿음이 무섭다면, 숫제 믿음조차 없는 것은 허망하다.??)

 주 : 결국 배에 올라서야 저울질이 끝나는 거지요.

 최 : 인도까지는 며칠 걸렸습니까?

 주 : 16일 걸렸어요. 인천에서 홍콩까지 4일, 홍콩에서 싱가포르까지 4일, 싱가포르에서 마드라스까지 8일해서 16일이지요.

 최 : 그동안 한번도 상륙하지 않았나요?

 주 : 요청했으나 거부당했지요. (최인훈씨는 이 부분을 몹시 궁금해했다. 《광장》에서 이명준은 홍콩에서 상륙하고 싶어하는 포로의 대표격으로 양자간에 끼어 갈등의 순간을 겪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배 안에서의 이명준의 심정을 자살로 몰아가는 한 배경이 된다.)

 최 : 배는 얼마만한 크기였습니까?

 주 : 2만2천톤짜리였지요. 2차대전 당시의 군대 수송선인데 시설이 아주 잘돼 있었어요.

 최 : 배에는 포로들 말고 인도군도 있었나요?

 주 : 그렇지요. 당시 한국전에 참가한 5개 대대 약 5천명 중 일부와 함께 철수했어요. 선장은 영국인이었고 선원도 영국인이었어요. 선실이 넓고 이층침대로 되어 있었지요.

 최 : 선내활동을 자유로웠나요?

 주 : 예, 트럼프도 치고….

 최 : 문은 한쩍으로 나 있었나요?

 주 : 예, 복도로 통하는 문이 한쪽에 있었고 다른 쪽에 바다가 보이는 창이 있었지요. (《광장》의 ‘타고르호??와 이 배가 아주 흡사해 배 위 아래의 정경묘사에 무기가 없었다는 것이 확인되자 작가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 듯했다. 그런데 이 미소는 다음 순간 주영복씨가 인천항을 떠날 때의 광경과 심정을 이야기하자 놀라움으로 변했다.)

 주 : 인천에서 배가 움직이던 순간을 나는 평생 못잊습니다. 아직도 나는 그때 갈매기를 못잊어요. “야, 인천 떠난다'하며 모두들, 인도군들까지 배 위로 올라왔어요. 아, 그런데 갈매기 50여마리가 일제히 따라오는 거예요. '아, 고향 갈매기가 따라오는구나??'갈매기여, 우리와 함께 갑시다'마음속으로 부르짖었어요. 그런데 무정하게도 한 마리씩 이탈하고 마지막 두 마리가 마스트에 앉아 있어요. '가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는 두 마리가 배를 빙돌더니 북쪽으로 휙 날아가 버립니다. 그리고 갈매기가 없어진 하늘에 여자둘의 얼굴이 나타나는 거예요. 야 이거 내가 미친 게 아닌가 했어요. (이 대목은 이번 대담의 압권이었다. 《광장》의 독자라면 다 알겠지만 두 마리 갈매기는 이 책의 가장 주요한 '오브제'이다. 포로 이명준이 인천항을 떠날 때부터 남지나해에 투신할 때까지 줄기차게 배를 따라오며 주인공으로 하여금 과거를 반추하게 하는 것도 이 두 마리 갈매기이다. 이명준에게 이 두 마리 갈매기는 두 여성을 사랑했던 여인 윤애와 은혜, 한명은 이명준의 첫사랑이요. 또 하나는 이명준을 따라 인민군에 자원, 간호병으로 출격해 결국 폭격에 죽고마는 여인이다. 그런데 주영복, 그가 인천항에서부터 갈매기를 그의 가슴에 포착하고 그의 여인들로 의인화하여 함께 항해하는 것이다. 마치 이명준과 갈매기처럼.

 물론 항구의 갈매기는 개연성을 갖는 것이고 치밀한 작가라면 이를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갈매기가 이처럼 큰 의미를 부여받은 채 함께 항해하고 더구나 그것이 남과 북의, 그리고 과거의 두 여인으로 의인화된다는 것은 기막힌 우연의 일치였다. 대담의 자리는 묘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여기서 잠깐 주영복의 ‘갈매기'를 소개해야 할 것 같다. 그의 갈매기 하나는 이인숙, 북에 두고 온 약혼녀이다. 둘다 남쪽으로 넘어간 반동가족을 가진 처지인 이 한쌍의 연인은 당으로부터 결혼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는다. 당시 인민군 장교 신분이었던 주영복은 ??정 결혼하려거든 군복을 벗고 하라??는 명령을 받고 고뇌한다.

 그러나 그는 출전했으며 곧 약혼녀가 자신도 함께 참전하면 당의 ‘충성도 시험'에 합격해 결혼이 성사될 것으로 생각하고 간호병으로 뒤따라 나갔다가 대동강전선에서 폭격에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또 하나의 갈매기는 경옥이라는 여인. 인숙이 죽은 후 주영복씨가 수원에서 인연을 맺은 여자다. 그녀는 결혼 후 2년만에 남편이 여순반란사건으로 죽고 오빠가 남로당원이었으며 부친이 월북한 ‘혁명가족'의 딸이었다. 그러나 경옥 역시 부역자로 몰려 총살형을 당하는 것으로 최후를 맞았다.)

 최 : 그 겨울의 추운 기후가 어느 바다쯤 가니까 더워졌습니까?

 주 : 홍콩에 가니까 목선에서 아이들이 다이빙을 하며 놀고 있더군요. 어떤 목선에서는 바나나와 귤을 싣고 팔더군요. (이명준이 남지나해 어디쯤에서 투신했다면 이 지점이 아니었을까).

 최 : 그때만 해도 내가 젊어서 격한 마음으로 내 심정을 다 드러낸 느낌이에요. 지금의 나 같으면 자살시키지 않았을 거예요. 제2편을 위한 작가적 포석으로라도 이명준으로 하여금 그 아픔을 거쳐서 살아가게 했을 거예요. 얼마나 아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실지로 살아 남았다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죽음과 마찬가지의 고독과 공포와 절망의 단계를 거쳤겠지요. 민족공동체를 버리면서 거쳤을 영혼의 죽음에 대한 통과의례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작품 속에서는 주인공에게 그런 최후를 맡겼습니다. 그러나 아쉬움은 남았기 때문에 현행본에서는 갈매기 중 한 마리를 두 사람의 따로 바꾸어서 생명에 대한 그들의 희망을 적어놓았습니다.

 주 : 아직도 ‘포로문학??에 관심이 있습니까?

 최 : 그렇습니다. 저는 한국전쟁에 관한 것 이외에는 작가로서 열정이 별로 없어요. 전쟁이나 사랑이 자기 영혼에 한번 낙인 찍히면 일생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조그만 목소리도 수용해야 하는 것이 자유의 본질이라면 제3국을 택했던 사람들, 당시에는 환영받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으나 그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인훈씨의 말처럼, 오늘날 한반도는 그 기본적 구조가 그때와 똑같이 결박당한 채 존재하기 때문이고, 또 그 때문에 오늘과 같은 두 사람의 후일담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불광동을 나와 임진각을 다녀오는 차 안에서 주영복씨는 자꾸 목이 메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조국을 위하여'등의 표어가 세워진 통일로를 달리며 내내 침묵을 지키다가 단 한번 말문을 열었다.

 “최선생, 임진각에서 그 다리를 건너 장단역을 지나고 개성쯤 가다 어느 지점에 서면 통곡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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