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물색 … 똠방 활용 … 연막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0.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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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개발 봉평 땅 매입 전략 … 현지 주민은 “투기인지 모르지만 개발은 환영”

 “장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주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 거기서 난데없는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가는 일색이지.??

 이효석의 단편소설〈메밀꽃 필 무렵〉 중 허생원이 동료 장꾼 조선달에게 평생 단 한번이었던 여자와의 인연을 들려주는 얘기 대목이다.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이 소설의 무대 봉평은 지금의 강원도 平昌군 蓬坪면을 말한다. 이 봉평이 최근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면서 ‘메밀밭??이 아닌 ??재벌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삼성그룹의 계열회사인 中央開發(주)이 역시 삼성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주)普光과 용역계약을 맺고 종합레저단지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임직원 명의로 매입한 땅 2백12만평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현지 주민들의 얘기와 양쪽 회사 주변에서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한 결과 밝혀진 ‘중앙개발 태스크포스(기동타격대)??의 치밀하고도 조직적인 활동은 여타 재벌기업의 땅 매입 사례와 거의 비슷하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대규모 땅이 필요한 개발사업을 추진하려면 그같은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회사관계자의 말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알짜배기 회사로 알려진 보광
 중앙개발이 1차용역비 3억원에 보광으로부터 종합레저단지 건설사업 추진을 의뢰받은 것은 지난 88년 9월30일. 올림픽붐을 타고 여가생활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를 보일 때이다. 보광은 스키장과 골프장에다 스포츠센터, 연수센터, 청소년캠프, 노인들을 위한 의료·휴양시설인 실버타운 등을 갖춘 대단위 리조트 단지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중앙개발에 그 추진 일체를 맡긴 것이다.

 보광은 일반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이지만 李健熙회장의 장인이자 중앙매스컴 회장을 지낸 洪璡基씨의 유족이 참여하고 있는 회사로, 삼성그룹과는 인척관계에 있다. 지난 83년에 설립됐고 자본금은 76억, 작년 매출액은 1백7억으로 업계에서는 알짜배기 회사로 통한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보광빌딩 등을 갖고 있는 이 회사의 주요 업종은 부동산 매매·임대업이지만 브라운관 전자총조립용 유리봉도 제조·판매하고 있으며 곧 연쇄편의점 유통업에 진출할 계획이다.

 보광이 레저산업을 계획하게 된 것은 홍씨의 장남 석현씨(삼성코닝 전무)의 구상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일본 등의 레저시설을 수시로 견학할 만큼 이 부문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다고 한다. 이 용역을 맞은 곳은 중앙개발의 개발사업부 신규사업팀(회사내부에서는 ‘태스크포스(TF)?? 또는 ??마스터플랜팀??으로 불린다). 중앙개발은 이같은 새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개발사업부와 기존의 유기장, 즉 용인자연농원 안양골프장 동래골프장을 운영하는 3개 사업부, 그룹의 건물을 맡고 있는 빌딩관리사업부 등으로 구성돼 있다.

 레저산업의 핵심은 부지 선정과 그 매입, 중앙개발 신규사업팀은 봉평을 비롯, 추풍령 동해안 등을 포함하여 후보지를 복수로 추천, 보광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즈음 홍석현씨와 중앙개발팀이 탄 삼성항공 헬기가 공중답사차 ‘봉평리조트??의 예정지인 태기산 능선위를 선회하기도 했다.

 그 후 보광의 임원회의에서 개발지가 봉평으로 최종 결정됐다. 검토 결과 겨울철에는 눈이 장기간에 걸쳐 가장 많이 쌓이는 지역이어서 천연스키장이 가능하고, 여름엔 모기가 없는 시원한 기후 탓에 골프장용지로도 적합하고, 1시간30분이면 동해안 해수욕장에 다다를 수 있어 사계절 가동이 가능한 종합레저타운의 최적지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이때가 바로 88년말.

현지 지주 한사람을 협력자로 점 찍어
 부지가 결정되자 태스크포스의 일이 바빠졌다. 3백70만~3백80만평에 달하는 땅매입을 극비리에 계약기간인 1년반 이내, 즉 90년 초까지 완료해야 했던 것이다. 한 지역의 땅을 일괄 구입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지주가 누구이며 누가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 팀장인 ㅅ전무와 기획실의 ㅇ실장, ㅇ차장, ㅈ대리, ㅇ대리 등 5명은 우선 예정지인 봉평면 면온2리와 무이2리의 지적도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다. 축척 1천2백분의1인 전답지적도에 맞추기 위해 6천분의1인 임야지적도를 5분의1로 줄여 2개의 지도를 합성, 땅소유주를 일일이 확인한 결과 대지주는 3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다음 수순은 이중에서 ‘확실한?? 1명을 협력자로 만드는 일. 중앙개발팀은 ㅊ씨를 적격자로 찍었다. 그는 리조트 예정지에 포함된 땅 외에도 주위에 수백만평의 땅을 가진 벌목업자. 개발이 될 경우 남은 땅에서 큰 부가가치를 얻게 되므로 그는 중앙개발의 땅매입에 적극 나서기로 쉽게 동의했다. 그가 당시 봉평의 버려진 땅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쌍용, 신동아, 쌍방울 등의 기업과 부지런히 접촉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일부 주민들 사이에 알려져 있었다.

 ㅊ씨의 활약으로 ㅈ, ㅇ씨 대지주의 임야와 전답 약 1백만평이 수월하게 매입됐다. 이제 남은 일은 소규모로 갖고 있는 주민과 외지인들의 땅을 사는 작업. ㅊ씨 등이 맨투맨으로 설득작업을 벌이게 되는 단계였다. 이 과정에 비밀이 새나가거나 주위의 의심을 살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 따라서 보안을 위한 ‘위장??이 필요했다.

실무담당자 주민등록 현지로 옮기기도
 먼저 상주특파원격인 ㅇ차장(37)의 주민등록을 지난해 4월8일 아예 현지로 옮겼다. 하는 일이 낮에는 땅주인 만나러 다니고 밤에는 주민들과 술마시며 돈쓰는 것인데 주소지가 서울이어서는 곤란했던 것이다. 멧돼지농장의 사업자등록도 받아 면온리의 두 곳에 ‘명양저농장??이란 간판도 걸었다. ??대규모 멧돼지농장을 하기 위해 땅을 사는 것??이라고 땅 소유자들에게 매입이유를 대기 위해서였다.

 ㅇ차장은 ㅅ대 지질학과 출신으로 중앙개발 도쿄주재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으며 용인자연농원의 눈썰매장을 개발하는 등 신규레저사업에 관한 한 국내 1인자로 사내에서 알아주는 사람. 신분을 명양저농장 사장으로 철저하게 감춘 채 “값은 잘 쳐줄테니 이 땅은 우리에게 팔고 그 돈으로 다른 지역에 더 많은 땅을 사두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는 등의 설득으로 주민들이 땅을 팔도록 했다. 그래서 ㅇ씨는 지금까지도 주민들 사이에서 ㅇ사장으로 불리고 있는데 최근에는 가족들까지 이사를 시켜 면온리 영동고속도로변의 한 양옥집에 살고 있다.

 이들이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던 까닭은 개발계획이 알려질 경우 땅값이 크게 뛰면서 주민들이 땅을 내놓지 않고 버티게 되면 사업추진에 막대한 차질을 빚기 때문. 따라서 추진팀이 서울에서 현지에 내려올 때는 반드시 ㅇ차장의 강원도 넘버 짚차를 이용했으며 심지어 교란작전용 부동산소개업소까지 운영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봉평면사무소앞 ㅂ부동산 주인 ㄱ씨가 중앙측으로부터 매월 수십만원의 활동비를 받으면서 이 역할을 담당한 것이 확인됐는데, 개발계획 소문을 듣고 왔는지 땅 나온게 있느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잘못 짚은 것 같습니다. 저쪽으로 가보십시오??라며 바람을 잡아 돌려보내는 한편 팔겠다고 오는 사람들의 땅을 얼른 잡아서 중앙개발쪽으로 넘겼다는 것이다.

“빚만 느는 농사 지어봐야??
 이렇게 해서 중앙개발팀은 올해초까지 당초 계획보다는 축소됐으나 2백12만평(신고가격 82억5천여만원, 평당 약 4천원)을 매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중 임야를 우선 지난 4월3일 계약에 따라 보광에 명의이전하고 이전이 불가능한 전답은 ㅇ차장 등 10명의 중앙개발 임직원 명의로 가등기한 상태에서 당국에 국토이용계획변경을 신청, 위락단지조성 허가를 얻어 내년 5~6월쯤 공사에 들어갈 계획이었던 것이다.

 중앙개발의 이같은 토지 매입 과정을 추적하면서 취재팀은 가는 곳마다 현지 주민들로부터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들은 나름대로 알고 있는 사실을 취재팀에게 전해주면서도 다음과 같은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우리야 그것이 투기인지 개발인지 구별할 수는 없지만 하여튼 이 동네에 뭐가 들어서든 들어와야 합니다. 빚만 느는 농사 지어봐야 애들 학교나 보내겠습니까??? 〈메밀꽃 필 무렵〉처럼 봉평장터가 다시 번성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임직원 명의?? 운운의 얘기가 전혀 현실과 맞지 않는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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