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교포들 ‘우리말 배우기' 열심
  • 북경 박상기 차장 ()
  • 승인 1990.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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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 서툰 젊은이 상당수 … 세대단절 · 문화위기 자각, 조선어학교 · 강습소 붐벼

중국 흑룡강성 자무스(佳木斯) 시에 사는 교포 金昇山(30)씨. 결혼하여 딸 하나를 두고 있는 그는 ‘자무스조선중학??의 한문 선생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중?소국경인 흑룡강변의 한적한 농촌으로 지금도 부모님들이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어린시절, 흑룡강변에서 물장구치며 놀던 일, 영하 30도가 넘는 겨울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썰매를 타던 추억을 얘기하다가 그는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27살 먹은 내 남동생이 있는데, 그애 때문에 지난 1년간 속 많이 썩었다??면서 그 까닭을 말하였다. 지금 고향에 살고 있는 남동생이 중국인 처녀와 눈이 맞아 한사코 결혼하겠다고 우긴 것이다. 부모님과 그가 나서 갖은 설득을 다해보았지만 끝내 고집을 꺽지 않아 집안이 시끌시끌하였다. 마침내 아버지가 ??네 놈이 정 그러겠다면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父子의 인연을 끊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다. 뿐만 아니라 승산씨도 형제의 연을 끊겠다고 했고, 그 마을의 조선족들도 ??그렇게하면 너와 너의 자식들은 조선사람이 아니다. 앞으로 내왕이 끊길테니 그리 알라??고 나섰다. 결국 동생이 졌다. 결혼을 약속했던 중국인 처와 헤어진 다음 집안에서 선보인 교포 처녀와 교제했는데, 올 가을에 결혼하기로 날을 잡았다는 것이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데 너무한 것 아니냐고 묻자 ??조선사람은 마땅히 조선사람하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승산씨네 집안분규와 유사한 이야기를 장춘·하얼빈·연길의 만주지방은 물론 북경에서도 들었다. 2백만 재중교포들은 “다른 민족과 결혼하는 것은 天倫을 어기는 짓??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비단 결혼문제뿐 아니라 그들은 모든 면에서 자신의 正體性을 지키려는 노력이 남다르다. 치마저고리차림의 의복, 김치?고추장?젓갈류 등을 즐기는 식생활, 중국인 가옥과 확연히 다른 초가 및 기와집도 그 예가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말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가 두드러진다. 12억 중국 인구의 약 7%에 달하는 55개 소수민족중에서 현재 고유의 언어를 상용하는 민족은 티베트족, 위그르족, 몽골족, 조선족 등 몇몇에 불과하다. 청나라를 세워 3백년 동안 중국을 지배한 만주족도 그들의 문자는 남아 있으나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사문화하였고, 만주어 역시 그들끼리의 대화에 전혀 쓰이지 않고 있다. 또한 티베트족?위그르족?몽골족 등은 변방의 오지를 벗어나지 않을뿐더러 교육?문화?생활 수준에서도 크게 뒤져 우리 교포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교포사회에도 점차 한글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 불어나고 있다. 모국과의 오랜 단절, 문화혁명 기간 자행된 소수민족 탄압정책 등의 영향으로 30대 이하의 젊은 세대 중 상당수가 우리말에 능하지 못하다. 지난해의 한 통계에 의하면, 연변조선족 자치주의 교포가운데 11%가 중국어를 쓰고 있고, 심양·장춘·하얼빈 등지에서는 교포 자녀 중 45~60%들이 ‘조선어 과목??이 없는 韓族의 소학교?중학교(6년제)에 다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공과 결부되는 멋진 외국어
 평생을 ‘조선사람??으로 살고 당당하게 ??조선족??임을 내세우며 살아온 노인세대들이 크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변화이다. 궁여지책으로 그들은 집안에서나마 아이들에게 반드시 우리말만 쓰게 하고 이를 어길 경우 회초리를 들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입장은 다르다.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모국이 막연하게 느껴질 뿐더러 중국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어울려 자라다보면 아버지나 할아버지와는 그 농도가 다른 ??朝鮮觀??을 갖게 된다.

 이러한 ‘문화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자각이 높아지면서 북경?장춘?하얼빈?훈춘 등지에 私設 조선어학교와 강습소가 설립되고 있다. 88년 서울올림픽, 중국을 방문한 한국 여행객들을 통해서 젊은 세대들은 ??대단히 잘사는 나라, 남조선??을 보고 또 느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한?중 경제협력의 싹이 트기 시작하자 영어?일어에 못지 않게 한국어가 자신의 성공과도 결부될 수 있는 ??멋진 외국어??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하얼빈의 한 방직공장에 다니는 金春愛(29?주부)씨는 ??지난해 한국어 관광가이드 자격시험을 볼까 망설였는데, 아무래도 실력이 모자랄 것 같아 그만두었다??며 열심히 공부해 1~2년 안에 꼭 자격증을 따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그녀의 월급은 1백20원이나 관광가이드로 전업하면 그 몇배의 수입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私設 ‘북경조선어학교??를 설립한 黃有福교장(42?중앙민족대학 교수)은 ??북경에는 북경대학과 민족대학에 우리말 과목이 개설되어 있을 뿐이어서 대부분의 한인 2, 3세들이 우리말을 배울 길이 막혀 있다. 그래서 일요일에만 문을 여는 조선어학교를 세우게 되었다??라고 설립취지를 밝혔다. 현재 학생수는 4백여명에 달하고, 여섯살짜리 코흘리개부터 50대의 중국 주요기관 간부에 이르기까지 나이?직업이 다양하다. 소학생반?중등반?성년반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총11학급이 운영되고 있으나 자체 건물이 없어 민족대학?중앙방송국?민족출판사 등의 건물을 빌려 쓰고 있다.

 중국 교육부에 등록된 유일한 사립 소수민족 언어교육기관이기도 한 이 학교는 일체의 수업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퍽 어려운 형편이다. 교실임대료·교재제작·교사사례비 등으로 지난 1년 동안 중국돈 5만원(약 1만달러) 가량이 쓰였다. 중국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이 월 1백~2백원인 점을 감안하면 그쪽에선 쉬 마련하기 힘든 액수다. 지금까지의 재정은 黃교장이 1987년 미국 하버드대 엔칭연구소 연구원으로 초빙되어 있는 동안 받은 강의료와 일부 교포의 후원금으로 충당했으나 갈수록 재원이 바닥나 몹시 안타까운 실정이다. 또 한가지 어려움은 우리말 교과서와 한국의 산업·역사·문화·풍습 등을 알릴 수 있는 서적이 태부족한 점이다.

중국인들도 ‘조선어 배우자
 지난 2월 단체로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 학생들 30여명은 이 학교를 도울 목적으로 ‘長征會??(회장 裵祐成?고려대 철학과 4년, 전화 923-4871)를 결성, 이미 《국어대사전》의 1백여권의 서적과 우리말 회화테이프 등을 모아 보낸 바 있다. 배우성군은 ??12억 속에 묻혀 있는 2백만 교포들이 민족의 얼과 문화를 지키려고 있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학생입장이라 금전적인 지원은 힘들지만 순수한 학생활동으로서 조선어학교 돕기 운동을 벌여 나가고 싶다??며 동료 대학생들의 호흥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들 외에도 학술교류상 중국에 다녀온 몇몇 국내 교수들도 나름대로 도울 방안을 강구중이다.

 조선어학교의 중등반 교사인 金蘭(29·북경언어대 도서관 근무)씨는 “우리 교포들만 받기도 벅찬데, 중국인들도 우리말을 배우겠다고 찾아와 참으로 딱한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학교 이사회에서는 토의 끝에 ??조선족과 결혼한 배우자, 시부모 가운데 어는 한쪽이 조선족인 가정의 며느리??까지는 입학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올 9월에 개최될 ??북경 아시안게임??을 전후로 중국내에 ??우리말 붐??이 더 한층 고조될 기미여서 이 학교의 입학창구는 더욱 붐빌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단지 일방적인 도움만 받고 싶지 않다. 중국을 전공하는 한국의 학자?대학생들에게 도움을 준다든가, 중국 방문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든가, 우리도 모국인들을 도울 적절한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黃교장은 민간차원에서의 상호교류를 매우 뜻있게 받아들였다. 북경의 조선어학교를 중심으로 東北3省 의 각 도시에 설립되기 시작한 강습소?사립학교들을 체계적으로 조직화한다면, 우리말 교육뿐 아니라 민족 동질감 고취에도 보다 큰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黃교장도 이 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아직은 자금?시설?교재 등 모든 것이 어설프지만, 우리 조선족은 항상 어려움과 싸워서 이겨왔지 않느냐??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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