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經 포위망에 갇힌 관료 소신
  • 빙 (서울경제신문 기자) ()
  • 승인 1990.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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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자금·정략 결혼으로 얽힌 재벌과 정치권 로비에 속수무책

공무상 비밀누설혐의로 구속기소된 李文玉감사관이 자신에 대한 구속적부심 심리 때 “三星,現代,鮮京 등 특정재벌기업의 로비를 재벌의 경영비리에 메스를 가하고 있던 감사원 감사가 이유없이 중단됐다"고 폭로한 이른바 "이문옥게이트"가 관가에 큰 파문을 던지고 있다.

 재벌기업이 관료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심지어 재벌기업이 장관을 갈아치우는 일도 없지 않았다. 감사원에 사정권이 집중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감사원인들 외부의 거센 압력에 어찌 대항할 방법이 있겠는가.
 이감사관의 주장은 여권의 애매모호한 변명성 대응과는 달리 곳곳에서 사실로 드러나 여권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 4월 뒤늦게 삼성그룹의 중앙개발이 보유하고 있는 안양골프장을 비업무용으로 판정한 다음 법인세 등 5억원 상당의 세금을 징수했었다. 그런데도 감사원은 지난 25일 각 언론사에 배포한 해명자료에서 “안양골프장은 수입이 연간 21억원으로 이 골프장의 장부상가액 56억원의 37.5%에 달하므로 법인세법상 업무용 토지에 해당된다"고 밝혀 오히려 탈세를 비호해온 게 아니냐하는 의혹을 샀다.

 현대그룹을 봐주었다는 대목도 어느정도 밝혀지고 있다. “현대그룹이 우량회사를 비우량회사에 합병하면서 합병전의 비우량회사 주식을 낮은 가격으로 사들여 2천5백억원 상당의 거래차익을 올린 사실을 밝혀냈으나 그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이유로 처리를 보류했었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그러나 감사원이 지난 88년 11월에 이같은 사실을 막혀 내고도 지금까지 1년6개월 동안'신중검토'만 해오고 있는 대목은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준다. 우무래도 재벌기업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감사관의 폴로성 발언을 통해 드러난 재벌로비사레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나마 감사원이 사정권을 쥐고 있는 곳이니까 그렇지, 힘없는 부처는 재벌기업과 관련된 일을 다룰라치면 ‘공손한?? 자세부터 갖추고 본다는 비아냥까지 나올 정도다.

 재벌기업이 관료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은 크게 보아 세가지로 나뉜다. 그 하나는 관료사회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에 정치자금을 대주고 그 반대급부로 정치권을 통해 관료사회에 압력을 넣는 방법이다.

 재벌기업이 이런 저런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까지 재벌기업은 여당에 체제유지비명목과 이권청탁용으로 뒷돈을 대왔고 야당에는 최소한의 보험료를 지급해왔다. 60년대와 70년대에 걸친 舊공화당 시절에는 청와대·중앙정보부·당수뇌부라는 트라이앵글시스팀을 거쳐 정치자금을 제공했었다. 특히 차관업체의 경우 차관액의 3~5%를 정치자금으로 내어놓는 것이 관례화 돼 있었다.

3공 때는 JP가 가장 인기있는 사돈감
 두번째로 재벌기업들은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것보다도 더욱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정치권과 혼맥을 대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金種泌 민자당최고위원의 혼맥이다. 3공화국시절 재계의 고위층과 가까웠던 金최고위원은 재벌들의 주요 혼맥 타깃이었다. 외동딸 예리씨는 정치사돈이 많기로 유명한 코오롱 李源萬회장의 2남 동보씨와 결혼했다.  이들이 결혼할 당시 코오롱그룹은 장남 李東煥씨와 그의 삼촌 李源千씨의 경영권 다툼이 치열했던 때여서 이들의 분쟁종식에 당시 공화당총재였던 김최고위원의 정치적 후광이 작용했으리란 소문이 무성했었다. 김최고위원과 끈끈한 혼맥을 유지하고 있는 코오롱그룹은 금융계 거물인 東南갈포벽지  稙사장, 李孝鮮 전국회의장, 新和그룹 高洪明회장, 申  전부총리 등과 직간접적인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김최고위원과도 간접적인 혼맥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김최고위원의 처제인 박설자씨는 벽산그룹 金仁得회장의 2남인 金熙 씨의 부인이다. 벽산그룹은 三洋通    九회장과 그린파크호텔사장 李健 씨, 金  元 전대통령 비서실장 등과도 혼맥을 이루고 있다. 특히 三洋通  의 허정구씨는 럭키금성 및 曉星그룹, 그리고 金東 전외무장관 등과도 혼맥을 맺었다. 정치권과 재벌기업의 혼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인 셈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全斗煥 전대통령과 盧泰遇대통령도 재계와 혼맥을 맺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다 李承聖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이 盧대통령과 사돈관계인 崔種賢 鮮京그룹회장과 美유학동창이란 대목도 묘한 느낌을 준다. 李부총리가 입각할 당시 崔회장과의 관계가 크게 부각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물론 재벌기업들은 정치권에 정치자금을 대거나 정치권과 혼맥을 형성한 다음엔 자신들의 사업향배를 좌우하는 관료사회에 압력을 가하도록 원격조정한다. 5공비리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全敬煥사건은 재벌기업·정치권·관료사회라는 트라이앵글 시스팀에 의해 부정이 저질러진 전형적인 사례다. 전씨에게 로비자금을 대준 기업은 전씨를 통해 건설부와 서울시 등 관계부서에 영향력을 행사, 공사를 따내거나 잇속을 챙겼다.

 따라서 재벌기업은 여러 채널을 통해 정치권과의 유착을 시도하고 정치권은 재벌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재무부와 건설부·국세청 등 부처에 심복을 투입, 재벌기업을 관리하는 방식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재벌기업들은 이처럼 정치권과 서로 끌고 당기는 밀월관계를 향유하고 있으니 은연중에 중견관료는 물론, 고위관료들까지도 경시하게 된다.

 한 에로 5공시절 건설부 관리들 사이에서 현대건설은 “한번 손봐야 한다??는 문제성 기업으로 낙인찍혔었다. 왜냐하면 건설부가 도로다, 댐이다, 공단이다하여 대형공사를 발주하고 있는 데도 鄭周永명에회장이나 李明 현대건설회장은 건설부에 전혀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청와대를 통해 공사 수주 압력만 가해온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그룹은 건설부장관 정도는 안중에도 없다??는 自 어린 비아냥이 건설부 하위공직자들 사이에서 나돌았었다. 뿐만 아니라 건설부에서 발주하는 공사 1백건 중 장관 ??마음대로?? 발주할 수 있는 공사는 다섯손가락 안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소문이 아닌 사실이었다.

 재벌기업의 영향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경제부처장관의 임명 때마다 풍문으로 그 실체를 드러낸다. 이부총리의 경제팀이 새로 출범한 시기를 전후해 ㅎ그룹이 모장관을 밀고 있고 ㅅ그룹은 모씨를 장관후보로 점찍고 있다는 소문이 증권가에서 꼬리를 물었다.

 재벌기업이 관료사회를 가볍게 보는 사례는 멀리갈 것도 없이 지난 12월 상공부장관과의 간담회 때 30대 재벌 그룹총수들이 발언한 내용에서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정치문제와 노사문제의 원인이 정치불만에 있는데 상공부장관이 이번 간담회를 열어 무얼 어쩌겠다는 것인가??"거의 매일 신문지상에 재벌비난기사가 실려 기업인이 죄인취급을 받고 있는데 정부가 한술 더 떠 재벌규제 정책만 내놓아 인기에 영합하려 했다????적어도 국무총리가 부총리, 재무, 상공, 노동 등 관계장관들을 모두 불러모은 다음 이런 간담회를 주재해야 한다.??

 임금인상 자제 권유를 하기 위해 간담회를 마련했던 韓  상공부장관이 재계총수들의 기습공격에 혼비백산했음은 물론이다.

 장관이 재벌기업에게 이처럼 맥을 못추니 차관 이하 고위관료들도 일부 소신파를 제외하고는 업체들과의 조찬간담회나, 세미나를 빙자해 고위관료들과의 접촉을 시도한다. 간혹 이 자리에서 건의형식으로 자신들의 현안·해결을 주문하기도 한다. 토지공개념법안이 재벌기업의 완강한 저지에도 불구하고 신문지상에 연일 그 모습을 드러낼 시기엔 주무부처인 건설부의 토지국장을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얘기가 재계의 일각에서 흘러나오기도 했다.

제2 · 제3의 이문옥게이트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재벌기업들이 관료사회에 힘을 미치는 방식으로 뇌물공세를 들 수 잇다. 최근 일련의 특명사정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부처 고위공무원들의 뇌물수수비리도 기업의 뇌물유혹에 길들여진 관료사회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재벌기업들은 비단 정치권이나 업무관련 부처뿐 아니라 사정기관과 검찰, 경찰 등 이른바 힘깨나 쓰는 곳과도 물심양면으로 유대관계를 가지려고 한다. 그래야만 무언가 일이 발생했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사회에서 재벌기업이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정치권이 관료사회에 압력을 넣는 트라이앵글시스팀을 무조건 매도할 수만은 없다. 트라이앵글 중 어느 하나도 절대적인 힘을 행사할 수 없고 상호견제를 통해 우리사회의 다양한 이익을 취합, 정책에 반영시킬 수 있다는 긍정적인 해석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이러한 긍정적 측면이 과연 가시화될 수 있을까, 직업공무원 제도의 마비, 열악한 공무원의 처우, 타성에 젖은 행정관행 등에 비추어 볼 때 선뜻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여기다 일본의 경우와는 달리 검찰과 경찰의 독립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것은 오히려 트라이앵글시스팀의 부정적 측면을 크게 만든다.

 말하자면 정치권과 재벌기업의 투톱시스팀에 관료사회가 종속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투톱시스팀이 지속된다면 제2, 제3의 이문옥게이트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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