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술 제자리걸음 경쟁에선 뒷걸음질
  • 조윤증 기자 ()
  • 승인 1990.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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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기술개발 꾸준, 따라잡기는커녕 격차 벌어져

노동집약 산업마저 열세 … 업종전환 · 구조조정 시급
 산값을 무기 삼아 세계시장에 진출했던 ‘메이드 인 코리아'상품이 외국 백화점 진열장에서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최근 몇년 사이 저임을 바탕으로 한 가격경쟁력이 효력을 잃었고, 이를 메울 만한 품질개선이 뒤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품질개선은 향상된 기술로부터 나오지만 우리나라의 기술은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생산개발연구원이 실시한 한 조사는 우리 기술수준이 아직 아파트 열쇠를 만드는 설계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결론짓고 있다. 또 거리의 도로표시 페인트가 쉽게 벗겨지는 이유도 특수페인트 생산기술이 취약하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됐다. 페인트에 섞는 형광물질을 생산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가전제품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에어컨을 에로 들면 외국의 경우 조립자와 부품의수를 대폭 줄여 높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저가품을 내놓고 있다. 반면 우리는 에어컨의 핵심부품인 로타식 압축기를 비싼 값으로 수입해 쓰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전략 수출상품이면서 구미사장에서 수입규제 품목이 되어버린 VTR의 경우도 기술의 한계는 여실히 드러난다. VTR에 있어선 테이프에서 영상을 읽는 헤드와 테이프를 돌아가게 하는 드럼이 품질을 결정하는 주요부품이다. 헤드는 가로 2mm, 세로 1mm, 두께0.5mm 크기의 작고 섬세한 부품이다. 우리나라 가전제품 생산업체들은 아직까지 이를 자유자재로 설계하고 가공할 실력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선명한 영상을 재생할 수 있으려면 드럼의 표면이 거울같이 정교해야 하고, 돌아갈 때 미동도 있어서는 안된다. 여기에 필요한 부품이 진동을 막는 직경 4mm 크기의 미니 베어링인데 전량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수출용 자동차의 주요부품 가운데 30% 가량이 ‘메이드 인 재팬??이다.

 매년 10여명 안팎의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상공부 평가단이 얼마전 조사한 내용도 결코 희망적인 결과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전반적인 우리나라 기술수준이 산술적으로 선진외국 기술의 약 40~6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각종 전자 기게나 자동차 등 주요 생산품도 국산화율이 90% 이상이라고는 하지만 설계도를 비싼 값에 수입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그 비율은 50~60%로 떨어진다.

 기업들은 핵심 설계기술이 선진국의 40~60% 수준에 불과하므로 주요 부품을 사오거나 막대한 기술료를 지불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실정이다. 컴퓨터를 보면 중소기업에서 주로 생산되는 대만제보다도 뒤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개발투자에 너무 인색
 우리 기술이 이같이 뒤지게 된 원인은 연구개발(R&D) 투자규모를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인구 1만명당 연구원 수가 12.5명인 데 비해 미국은 33명, 일본은 34명, 서독은 22명이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에서도 연구개발투자가 꾸준히 늘어나 현재는 국민총생산의 약 2%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에 의하면 선진국 역시 기술 선도국의 위치를 고수하기 위하여 연구개발투자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반도체 분야를 제외하고는 7~8년정도의 기술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87년 현재 기술이 산업생산에 기여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기술규모지수는 7.3으로 미국의 14분의1, 일본의 11분의1, 서독의 7분의1 수준에 불과하며, 신제품과 신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기술개발력지수는 4.1로 미국의 25분의1, 일본의 13분의1, 서독의 9분의1 수준으로 기술규모지수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정밀화학 분야에서 신물질 하나를 개발하는 데는 착수에서 실용화까지 평균 9~12년이 걸리며 재원도 5천만달러가 필요하다. 이는 3~4년간 6백만달러 정도를 들이면 새로운 기술개발이 가능했던 지난 60년대에 비해 기간으로는 2배, 금액으로는 10배 정도 늘어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신물질을 하나 개발하려면 기업의 연간 매출액이 3억달러(약2천억원)는 되어야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내 기업들의 영세성을 감안하면 기술개발이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설계기술 부족이 첨단산업 성장 장애요인
 우리나라 산업제품은 기술단계별로 다음의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반도체 컴퓨터 고아섬유 신소재 로보틱스 등 첨단기술제품 △석유화학 조선 가전 자동차 건설중장비 등 기존 주요기술제품 △섬유 신발 등 의류산업과 잡화 등 노동집약적인 후진국형 산업제품이 그것이다.

 첨단산업의 분야의 경우 기본 설계기술 부족이 결정적인 성장 장애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소형화 추세를 보이는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의 경우 개발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모방하기조차 불가능하다.

 기존 산업에서도 생산공정과 제품 생산의 애로점이 쉽게 발견된다. 자동차를 만들거나 전자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선진공업국에서는 FMS(flexible manufacturing system)나 CAM(computer aided manufacturing)등 생산공정 자동화가 추진되고 있어 노동비 절감과 생산효율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실정은 이같은 자동화 기술 측면에서 아직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고 그런 만큼 제품경쟁력 상실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불량률이 높아지고 품질 균등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각종 소재의 개발도 뒤쳐진 상태이다. 자동차의 경우 경량화를 위해 특수 플라스틱 개발이 필요하나 그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일본은 자동차의 엔지니어링 부문에서 특수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비율이 20%를 훨씬 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소재기술의 낙후는 필연적으로 품질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 뿐만 아니라 이제껏 상대적 우위를 보였던 기계산업 분야에서도 첨단 생산기술이 취약해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는 형편이다. 지금가지 우리나라 기계공업에 첨단기술이 사용된 에는 드물다. 석유화학의 경우도 최종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촉매·첨가제·중간화합물의 개발, 생산이 부족한 상태이다.


수출부진 주원인은 빈약한 기술
 金泳철 박사(한국과학기술연구원 부설 과학기술행정 정책연구 평가센터)는 “우리가 우위를 가졌던 노동집약적 산업조차 일본과 유럽국가들이 후발 개도국에 현지투자를 함에따라 그들의 앞선 기술이 값싼 노동력과 결합됨으로써 우리의 경쟁력에 치명상을 입히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또 ‘새로운 별들??이라고 불리는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태국 등의 추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한다. 신발산업의 경우 인건비가 총생산비의 18~20%를 넘으면 수익성이 없어지는데, 한국기업의 경우 인건비 비중이 이 비율을 넘어서버린 지 오래라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업종전환과 구조조정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우리의 기술개발 속도와 선진공업국의 기술개발 속도의 간격이 점차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성급하게 일본이나 미국의 기술을 따라잡겠다는 무모한 발상을 하기보다는 선진공업국 가운데 영국이나 프랑스 등 하위 그룹을 앞으로 5~6년 동안 따라잡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접근일 수도 있다??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특성은 선진공업국과 경쟁적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대만은 선진국과 보완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가전제품 조선 건설중장비 발전설비 철강 비철금속 등의 생산수준은 대만에 비해 앞서 있지만 이같은 산업구조 때문에 선진공업국과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수출부진 원인으로 환율이나 임금인상·노사분규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수출부진의 핵심원인이 빈약한 기술 때문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산업기술 향상은 경쟁력을 되찾기 위한 필수과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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