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아쉬움 남긴 보·혁 논의
  • 우정제 기자 ()
  • 승인 1990.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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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 전국역사학대회

지난 5월25~26일 한양대에서 열린 제33회 전국역사학대회는 ‘역사에서의 보수와 진보??를 공동주제로 내걸어 관심을 모았으나 주제에 걸맞는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폐막돼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대회에서는 서양사상사에 나타난 보수주의 개념의 변천과정과 19세기말 20세기초 韓?中?日 3국에서 보수?진보세력이 담당했던 역사적 역할 등을 논의했으나 집중탐색이 미흡했다는 것이 일반적이 평가였다.

 車河 교수(서강대·서양사)는 〈근대사에서의 혁신과 보수의 대립〉이라는 제발표를 통해 유럽 근대사는 프랑스혁명을 기점으로 혁신과 보수 두 진영간의 부단한 대립을 거듭했으며 19세가의 혁신주의적 대세 속에서 보수주의가 사상적 힘을 발휘하게 된 시대적 배경으로 ‘대중??의 위협적인 존재와 ??개인의 소외??문제 등을 지적했다. 그는 또 미국의 신보수주의를 에로 들면서 20세기 서구 보수주의의 현격한 특성으로 더 이상 전통에 호소하거나 곽에 대한 숭상을 표방하지 않는다는 점, 재산소유 및 그 소유의 대소분포를 허용하는 有産的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또 1917년의 볼셰비키혁명으로 시작된 혁신주의 역시 최근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따른 체제변화로 일단 막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면서 혁신이든 보수든 새로운 도전을 기피하는 사회는 진정한 발전을 기약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중국 근·현대사 초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성격〉에 대해 주제발표에 나선 李炳柱교수9영남대·동양사)는 19세기말 20세기초 중국의 보수·진보주의는 사회의 내재력 보다는 외적 압력에 의해 촉발됐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방어적 성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교수는 중국 보수주의의 특성을 정치·사회적 보수주의가 아닌 문화적 보수주의와 민족주의로 요약했다.

 趙東 교수는(국민대·한국사)는 〈3·1운동 전후 한국지성의 성격〉이라는 발표에서 1920년의 지성은 인도주의·민주주의·민족주의가 실현된 세계개조 및 사회개조를 지향한데 그 특징이 있었다고 분석하고 이는 3·1운동 전 사회진화론·공산주의·  的 민족의식이 잔존해 잇던 구시대의 민족논리를 청산한 진보적 성격을 띠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지성이 ‘3?1운동의 광장??을 통해 생성, 1920년에 체계화되었다고 보았다.

 이밖에더 金속 德교수(서울대·동양사)는 〈明六社와 明治 의 보수·진보〉라는 주제로 일본 명치시대 지식인들의 모인인 ‘明治社??의 설립과 구성원, 확동과 입장 등에 관해 발표했다.

 이어 토론에 나선 李仁 (서울대), 白永 (한림대), 朴英 (연세대), 李萬烈교수9숙명여대)는 각 10분씩 간략하게 발표내용을 평가한 뒤 질문에 들어갔으나 2시간3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안에 ‘보수와 진보??라는 포괄적인 주제로 쟁점을 끌어모으기에는 무리였다.

 朴英 교수는 이번 대회를 마치고 “한?중?일 각 나라마다 각기 고유한 시대성과 특수성이 있는데 서양사에서의 ??보수?진보??라는 준거를 가지고 각 지역과 시대를 보았기 때문에 명확한 개별성을 드러내기가 힘들었다. 각 나라와 시대별로 ??보수?진보??의 개념규정이 앞섰어야 했다??고 평했다. ??시의적절한 주제에 대해 공감대 형성이 부족했다??는 대회평에 대해 대회장인 崔文 교수(한양대)는 ??공허한 개념적 논란을 지양하고 구체적 사실에 입각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보수?진보??의 갈등구조를 밝히려는 것이 이번 대회의 목적이었다??면서 성과에 대한 구체적 논평을 유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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