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거꾸로 흐르는가
  • 강만길 (고려대 사학과 교수) ()
  • 승인 200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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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정기 방황, 순국선열 앞에 무참… “입이 백개라도 할 말 없다”



 한국 근현대사가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로 이어지면서 역사적으로 청산되지 못한 부분이 허다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이완용의 재산을 어찌할 것인가 논의하는 일은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옛 일본군의 종군위안부 문제나, 굶주림만이 아닌 적개심을 키우기 위해 사람을 잡아 먹었다는 일들과는 상관없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더욱 빨라지고, 한편 국내의 한 귀퉁이에서는 이완용의 후손들이 그 재산을 도로 찾으려고 암약하고 있다는 말이 들리고 있다. 도대체 역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암담하기 그지없다.

 한일 합방을 획책하던 일본의 ‘병합준비위원회’는 그것에 필요한 총경비로서 공채 3천만원을 마련하여 ‘합방’ 당시의 총리대신에게는 백작 작위와 세습재산으로 공채 15만원, 일반대신들에게는 자작 작위와 10만원을 지불하기로 했다.

 

“이완용의 臥席終身은 한국인의 수치”

 따라서 이완용은 나라와 민족을 팔아 넘긴 대가로 백작 작위를 받아 일본의 귀족이 되는 한편, 공채 15만원과 총리대신을 그만두는 대가로 퇴관급 1천4백여원을 받았고, 다시 후작으로 승진되어 온갖 ‘영화’를 누리다가 제명에 죽었다. 일본인들까지 이완용이 조선 땅에서 와석종신(제 명을 다 살고 편안히 죽음)한 것은 조선인들에게 두고두고 수치그러운 일이 될 것이라 말했다지만, 이재명의 칼을 맞고도 질긴 목숨을 부지하다가 제 명에 죽었으니 할 말이 없다.

 이완용이 나라와 민족을 판 대가로 받은 재산을 그가 죽은 뒤 후손들에게 상속되었다. 그러나 그가 팔아먹은 뒤 후손들에게 상속되었다. 그러나 그가 팔아먹은 나라를 목숨바쳐 찾으려던 우리 민족해방운동전선을, 좌익전선은 말할 것도 없고 우익전선까지도, 해방이 되면 매국적의 재산 일체를 압수하여 국가 소유로 할 것을 확실히 했다. 조선민족혁명당이나 조선독립동맹, 조국광복회는 물론, 가장 우익정당이었던 한국독립당도 매국적의 재산 일체를 몰수하여 국유로 할 것을 정강 정책으로 내세웠고, 임시정부도 토지국유화 정책을 채택했었다.

 8·15 후에는 남북한을 막론하고 토지를 개혁하여 지주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었으나 그 방법에는 좌익의 ‘무상몰수 무상분배론’과 우익의 ‘유상몰수 유상분배론’, 중도파의 ‘유상몰수 무상분배론’이 대립되었다. 북한에서는 무상몰수 무상분배 ‘토지개혁’이 실시되었으나, 남한에서는 임시정부를 비롯한 민족해방운동세력이 정권을 잡지 못하고 이승만과 지주세력 한민당이 정부를 수립하여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농지개혁’을 했을 뿐이다.

 이승만 정권이 겉으로는 임시정부 법통을 잇는다고 했지만 중요한 토지국유화 정책을 계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토지국유화 정책을 계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농지개혁 과정에서 민족해방운동전선 전체의 동일한 정책이던 ‘매국적의 일체 재산몰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완용 송병준과 같은 매국적이라 해도 논밭의 경우 제가 경작하면 3정보는 가질 수 있었고 그 이상의 땅은 지가증권으로 보상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농지개혁 대상에서 제의된 임야나 산지는 고스란히 사유할 수 있었다.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후 처음 수립된 정권이면서도 이승만 정권은 한사람의 민족반역자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재산까지 고스란히 지켜준 것이다.

 듣건데, 그동안 숨어 살던 이완용의 후손들이 나타나는 지금에는 논밭보다 더 버려진 임야나 산지를, 아직도 온존해 있는 소유권을 근거로 역사에 눈감은 일부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다시 찾으려 한단다. 세상사람들이야 당장 소급법이라도 만들어 몰수해야 한다 주장할 수도 있겠고, 이승만정권의 농지개혁이 잘못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 하고 팔짱끼고 있을 수도 있겠고, 민족반역자의 재산일지라도 사유권이 고이고이 보장되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 노래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민족해방운동전선에 목숨 바친 영령들 앞에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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